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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는 자본주의 최종 말기 현상의 일환”… "일본은 ‘냉전 갈라파고스’ 의식 벗어나야"
“북한 문제는 자본주의 최종 말기 현상의 일환”… "일본은 ‘냉전 갈라파고스’ 의식 벗어나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8.2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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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100호 발간 특별 좌담회 지상중계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급전환된 남북관계는 6·12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을 전 세계에 알렸다. 계간지 <황해문화>가 지난달 1일 100호 발간을 기념해 기획한 특별좌담회에서는 이지원 한림대 교수(일본학과), 정영신 제주대 전임연구원(정치사회학), 가와미쓰 신이치 <신오키나와문학> 전 편집장, 이시하라 슌 메이지가쿠인대 교수가 모여 2018년 현재, 서해 5도를 비롯해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제도 등 섬들이 가지는 의미를 따져보고 역할을 모색해봤다. 좌담 가운데 주요한 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 제도 이야기들이 한반도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 또한 오키나와 입장에서 오가사와라 제도 문제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가? 
가와미쓰 신이치 <신오키나와문학> 전 편집장: 오가사와라는 일부는 도쿄 속의 외딴 섬, 그러니까 오가사와라도 도쿄 중의 하나라는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오가사와라 제도 내에는 이오지마(硫黃島)가 있는데 태평양전쟁에서 전멸한 곳이고 막대한 희생을 입었습니다. 그 이오지마의 2차대전 시기 큰 희생과 오키나와전 희생이 마찬가지였다는 공통된 역사 체험이 있고, 그리고 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오지마는 오키나와에서도 유황을 캐기 위해 노동자들이 파견됐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유황 자원을 중심으로 오가사와라를 생각해보면 인류가 유황을 필요로 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시기까지 거슬러가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겨요. 그러고 보면 중국이 유황을 쓰는 문화라는 건 꽤 오랜 세월을 거슬러 가더라고요. 오키나와와 중국의 책봉, 교역 관계를 조사해보면 중국의 황제에게 교역품으로 제공했다. 그 당시 유황은 교역선의 적화였다고 나오거든요. 오키나와 주변에서 유황을 얻을 수 있는 건 이오지마밖에 없어요. 류큐·중국·이오지마의 라인은 근현대에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먼 옛날에 눈길을 돌려야 할 축적이 있다는 이야기죠.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서도 그래요. 물론 정치 표어로서는 약간 나오지만 일반 대중 속에서 북방영토나 오가사와라 반환에 대해 자신들의 문제처럼 열심히 생각하는 분위기는 없었어요.

또한 일본이 섬에 대하여 의식하는 방식, 이것은 흥미롭게도 거꾸로 돼 있어요. 뭐냐면 오키나와도 오가사와라 제도도 그렇습니다만 변두리 섬이라는 곳은 항상 주변에 바다를 두고 있고 밖으로 나가려면 바다에 나가야 합니다. 바다는 무한한 퍼짐을 갖고 있습니다. 섬이란 폐쇄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바다를 통해서 탈경계적 감각을 어딘가 갖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섬의 크기가 꼭 섬도 아니고 대륙도 아닌 면적이 돼요. 그러니까 쇄국 정책으로 자신들의 오랜 역사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하고. 그래서 일본 본토의 사상은 매우 쇄국적, 폐쇄적, 방어적, 보수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주변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폐쇄성을 풀어주지 않으면 아시아에 대한 열림, 세계에 대한 열림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고 항상 본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전후 정치에서는 미국에는 좋은 얼굴을 보이지만 중국 및 아시아에는 강압적인 인상이죠. 지금 오가사와라에서 본 일본의 보수 반동성도 대체로 비슷한 구도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제주도도 조선시대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류큐와 관계성을 갖고 있었어요. 어부들이 바다로 나가 표류했는데 미야코 섬에 도착해서 어망 문화를 전달했다는 자료가 있어요. 그리고 류큐 선원들이 표류해서 한국에 도착했는데 구해준 어부들과 친족들에게 후히 대접받았다는 설화가 계속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 실록에는 더 자세한 교류가 있었음이 조사 보고되고 있고요.

사토 총리는 비핵3원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오가사와라 반환 50주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나?
이시하라 슌 메이지가쿠인대 교수: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신문, 라디오 등 일본 각 언론에서 오가사와라 제도 반환 50년에 대해 발언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마냥 경사스럽다고만 하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거듭 말해 왔습니다. 5월에 도쿄도 주최 반환 기념 심포지엄이 있어서 저도 그 자리에서 강연을 했는데, 이오지마 주민들을 포함한 오가사와라 섬 주민들이 제국, 총력전, 냉전 등 역사적 상황에서 어떤 고난을 겪어 왔는지 일본인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가사와라 반환의 역사적 위치를 일본에서 연구자들도 잊고 있는데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967년에 반환이 확정되는데 이 시점은 아직 미국이 존슨 정권 하에 베트남 전쟁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죠. 존슨 정권은 베트남전쟁 출격 기지로 오키나와를 보유하고 싶었던 겁니다. 1968년 오가사와라 반환 후에 존슨에서 닉슨으로 정권이 바뀌어 베트남전쟁 철수, 나아가 오키나와 반환이 결정되는데 1967년 단계에서는 아직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오키나와에서는 기지 문제와 관련해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운동이 커지고 있었고, 일본 본토에서도 미국에 반대하는 감정이 매우 커지고 있었습니다. 미국 입장으로선 일본 본토에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기를 경계했고 일본 본토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일단 오가사와라를 반환하고 사람들을 달래려고 했던 거예요. 그 결과 1968년 6월 오가사와라 반환이 이뤄지는데 반환 배후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는 오가사와라를 반환하면서 오가사와라 제도 내 특히 이오지마에 미군이 자유롭게 핵무기를 반입할 수 있는 밀약을 맺은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1972년 오키나와 반환 때 역시 마찬가지로 전환 이후에도 핵무기를 반입할 수 있는 밀약이 맺어진 것으로 알려졌고 오가사와라 반환 때 밀약은 그 원형이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 반환 후 동아시아 및 서태평양 군사체제의 원형을 만든 것은 오가사와라 제도의 반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가사와라 반환과 관련해서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이오지마 도민의 처우입니다. 1968년 오가사와라 반환 때 밀약이 있었기 때문에 반환 후에도 일본은 이오지마를 미국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이오지마를 포함한 오가사와라 제도 전역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에 주민들 약 90%를 본토로 강제적으로 소개시켰습니다. 그 후 미군이 오가사와라 제도를 점령하고 강제 소개된 주민들의 대다수는 25년 가까이 섬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오가사와라를 반환하고 이 비인간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일본의 민심을 수습하는 대책이 됨을 미국은 알고 있었던 거예요. 1968년 반환 이후 오가사와라 제도의 주민 가운데 치치지마(父島)와 하하지마(母島)의 주민들은 귀향이 허용됐습니다. 그런데 이오지마는 미국에 계속 군사 이용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자위대가 섬 전체를 관할하기로 하여 미군의 일부 이용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이오지마는 시정권이 반환됐음에도 불고하고 이오지마 주민들은 귀향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즉 오가사와라 반환은 이오지마 주민들을 완전히 배제한 반환이었다는 셈입니다. 그 후 50년간 이오지마 주민들은 귀향을 허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가사와라 반환 50년은 결코 축하할 일뿐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느 시대인가?
가와미쓰 신이치 <신오키나와문학> 전 편집장: 세계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젊은 시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으니 세계를 볼 때는 자본론적인 하부 구조의 추이와 상부 구조의 추이, 이것이 어떻게 어울리면서 이행하고 있는가 하는 식으로 봅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지 이미 300여년이 지났고요. 근대로 알려진 것이 자본주의의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제도 변화를 보면, 예컨대 왕 제도나 무사의 봉건 제도 등은 대체로 300년~400년, 길어야 그 정도의 지속력을 가집니다. 그리고 300년쯤 되면 그 제도는 반드시 내부 부패가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벌써 300살로 늙어 빠지게 돼 있어요. 그 늙어 빠진 자본주의가 지금 어떻게든 지속하려고 꾸미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셈이죠. 그로 인해 케인즈주의가 나왔고, 국내 실업자들의 무리를 간신히 억제하기 위한 정책을 생각한 거죠. 그리고 루즈벨트가 뉴딜정책을 실시하고, 케인즈주의도 처리하지 못한 모순을 개혁하려고 했어요. 케인즈가 제안한 것은 요컨대 실업자들을 모두 군대로 보내고 국가 예산으로 임금을 주면 실업자는 없어지니 국내 폭동은 억제할 수 있다는 조정 방안이었습니다. 뉴딜이 되면서 국내 산업을 더 잘 통제하면 실업자를 흡수할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그런데 이 뉴딜 정책은 미국이 실시하는 단계에서 이를 뒤집어 거꾸로 했기 때문에 산군복합 군사 제국을 강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건 뉴딜이 아니라 네오 뉴딜입니다. 포퓰리즘은 지성보다 감정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니 정치의 방향을 분노와 증오로 향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역 관세도 세계에 떠넘긴다는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폭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금융 자본주의, 이것이 가장 분명한 늙어빠진 자본주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죠. 자본이란 항상 생산 현장에 환류되고 물건을 생산해 소비 시장에 공급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지금 빌 게이츠와 같은 사람들과 증권사의 화려한 무대에서 돌고 있는 돈이라는 건 돈의 시장에서 돈의 시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공중에서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것과 같은 허세의 자본 회전일 뿐. 머니 게임은 자본의 원칙에서 보크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또 하나는 금본위제도를 없앤 후 각국 지폐 증쇄가 금융 정책에 악용되고, 그것이 경제 파탄을 초래한다는 경향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른바 자본주의 최종 말기 현상을 현저히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제도 피로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북한 문제도 그런 현상의 일환이라고 봐야 할 것이죠. 소비에트 붕괴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는데 주변이 자본주의화하면서 자본주의 흐름을 최종적으로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붕괴했다. 중국도 덩샤오핑의 정책으로 선부론, 즉 부유해지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진다는 정책으로 바뀌고 그 시점에서 공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해 갔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내걸고 열심히 남아 있는 나라는 북한과 쿠바와 같은 작은 나라뿐입니다.

그런 자본주의 근대국가가 많은 민족을 모아서 국민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한국 안에 민족으로 보면 너무도 많은 민족이 있습니다. 그것을 국민이라는 가상의 상을 만들어 국가라는 것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국가라는 것은 허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동시에 국가도 해체돼야 합니다. 국가가 해체된 이후 어떤 사회를 구상하는가. 이것이 현대인이 마주한 이념적 과제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근대 문명이라는 제도의 종말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휩쓸리고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었는가, 그 증거의 단편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것은 무정부적인 심리이지만 아나키즘에 얽힌 정치적인 자포자기의 심리와는 반대가 됩니다. 아나키즘이란 요컨대 모순투성이인 국가에는 희망이 없으니 깨 부셔 버리고 그 뒤는 나 몰라라 한다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근대국가라는 것은 거짓의 개념으로 구성돼 있으니 해체한 후 다시 한 번 진짜 사회를 만들어 그 사회의 이념을 다 함께 생각해보자는 발상인 겁니다.

오키나와, 오가사와라는 섬이지만 분단체제의 한국, 북한은 어떻게 인식되나?
이지원 한림대 교수: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제도는 둘 다 섬이죠.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사실 한국도 분단 체제에서는 섬과 다름없습니다. 한국인이 스스로 말해요. 우리는 섬 환경에 살고 있다, 반도가 아니라고요. 북쪽은 완전히 폐쇄되고 있고요. 북한 자체 또한 대륙에 붙어 있지만 여러 정치적 상황이나 최근 어려운 경제 제재 속에서 섬과 비슷한 상황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등도 보급되고 휴대폰도 400만대부터 600만대가 보급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북한 내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은 국내에서만 연결되는 인트라넷이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도 섬의 상황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열리는 또 새로운 세계와 가능성은 남북 모두가 섬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가와미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섬은 폐쇄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은 바다에 펼쳐진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교류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 모두 한반도 자체의 성격이 바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비핵화가 얼마나 진행되는지에 따라서 아직까지 평화협정 관계도 복잡하지만 비핵화와 평화협정까지 정착하지 않으면 그 뒤는 알 수 없죠. 아직 도중이라서 잘 모르겠지만요. 오늘 좌담회 내용이 출판되는 것은 올해 말 겨울에 나오는 잡지에 실린다고 하니 그 때 상황은 아직 모르겠네요. 그런데도 낙관적으로 흘러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는데 예컨대 남북정상회담은 김영삼 대통령 시기 김일성과 날짜까지 잡혔지만 김일성이 갑자기 숨진 바람에 좌절한 경험이 있고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시기 10년간. 그 때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열렸고 완화된 분위기가 됐지만 그것도 또 도중에 멈춰버렸고 완전히 후퇴해 버렸어요. 이번이 세 번째 기회인데요, 여러 면에서 이번에는 예전보다 조건이 앞서 가고 있습니다. 50% 이상, 또는 70~80% 가까이 이번은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또 일본과 북의 관계를 보면 사실은 일본도 여러 적대관계에 있었음에도 실제로는 교류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손잡고 가면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면은 있어서요. 90년대 ‘양복의 아오야마’라는 기업이 북한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더군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1988년경 가네마루 신이 평양에 가서 협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의 사건이었죠. 두 번째가 고이즈미 총리가 김정일과 만났을 때 정말로 본격적으로 수교를 맺으려고 시도했던 것이죠. 그런데 납치 사건으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납치 문제를 계기로 기회를 잡고 권력의 자리를 얻은 사람이 아베 신조 총리죠. 지금 세 번째 기회지만 아베의 계획에는 없었을 것인데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하면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아베도 최근까지는 설마 했을 텐데 지금처럼 간다면 어쩔 수 없이 이 흐름에 타야 하겠다고 생각했겠죠.

좌담회 진행 중, 브레이크 타임.

특별 자치도, 국제 자유 도시 제주도는 오키나와, 오가사와라와 어떻게 다른가?
정영신 제주대 전임연구원: 제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제주도의 분위기를 말씀해 드리면 일단은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국면에서 1990년대 제주도가 여러 정상회담의 장소로 쓰였던 것처럼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제주도로 유치해서 과거 평화의 섬으로 각광받았던 이미지를 회복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이 과정을 하나의 이벤트로 받아들이는 첫 반응이고, 또 하나는 지자체 선거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한반도를 철도로 잇는 지도가 나왔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곧바로 철도를 해저터널을 이용해서 제주를 이을 것인가가 후보들의 공약에서 나왔어요. 대륙으로 이어지는 남북관계, 공동의 번영 속에서 제주도가 자칫하면 소외되지 읺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남북관계가 다소 나빠진 과정에서도 제주의 특산물인 감귤을 계속 북한으로 보내는 운동을 해왔는데 그런 맥락 하에서 제주도가 할 수 있는 어떤 고유한 평화사업과 같은 것들을 어떻게 고민할 것인지가 시민사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추가한다면 강정마을에서는 정상회담과 평화체제가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유리한 국면을 줄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제주를 거쳐서 대마도, 규슈로 해저 철도를 연결하자는 이야기는 김대중 정부때부터 있었더라고요. 그러면 일본에서 유럽까지 이어진다고 해서. 철도가 서해안과 동해안이 있는데 서해안은 전라도까지 그림으로 나와 있거든요. 그것을 해저터널을 통해서 제주까지 연결해야 되는건 아니냐는 이야기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제주도는 법률적으로 특별자치도라는 제도 아래 도지사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있어요. 사실은 많은 권한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권한이 배분되는 형태까진 가진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예전에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들이 있었는데 제주 내부에서는 제왕적인 도지사에 대한 비판이 돼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개정이나 지방분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이 자기 결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는 있지만 오키나와처럼 그런 문제들이 정체성 문제와 결부되어 독립이나 자립으로 연결되지는 못한다는 좀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서해5도 등의 섬들이 근대국가로 편입이 되고 식민지배를 받고 전쟁에 동원되고 전후 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직접 동원되기도 하고 아니면 섬 지역 같은 경우는 섬 주민 모두 소개되어서 섬에서 쫓겨나면서 섬이 전후에 군사기지화 되는 과정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난민이 되어버리는, 이런 상황들이 섬 지역들이 전쟁과 폭력에 동원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월미도 주민들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제주도의 경우도 2차 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전쟁을 한다는 명분으로 주민들을 소개했던 경험이 있고 4·3이라는 국가 폭력 이후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이산 디아스포라로 난민화됐던 과정이 있습니다. 최근에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명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난민이라는 것이 중요한 정치 사회적 문제가 되었는데, 사실 이런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난민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일반 국민들도 생활의 불안정한 상태속에서 어느 정도는 난민적 처지가 되어 버린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일처럼, 다른 외국인의 이야기처럼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그리고 월미도에서 전쟁과 폭력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난민화됐다는 이야기들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가 평화로의 이행단계로 접근하면서 동아시아 비무장평화지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적 의식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이시하라 슌 메이지가쿠인대 교수: 일본 본토의 정치적 의식은 상당히 비관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냉전 갈라파고스’라고 하는데 일본 국민의 다수파는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냉담한 의식을 갖고 있는 건 일본 본토 주민이라는 건 틀림없어요. 가능하면 긴장 완화를 방해하고 싶은 아베 정권이 있고, 이 정권은 아무리 부패하더라도 항상 30~40%의 지지를 얻어요. 일본의 정치 의식은 오히려 냉전 시대보다 후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냉전 시대 일본 사회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관심을 나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일본은 북한에 대해서도 냉전 시대 야당인 사회당을 통해서 굵은 파이프를 가지고 있었어요. 더 상징적인 것은 중국에 대한 의식입니다. 일본의 중국에 대한 의식은 여러 조사가 있는데, 냉전 말기의 1980년대 중국에 호감을 가지냐는 설문에 대해서 70~80% 정도 일본인이 호감을 가진다고 대답했습니다. 현재 이것은 20%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중국의 패권주의에도 한 요인이 있지만 일본인의 상황은 참담합니다. 일본 당국과 북한 당국의 파이프는 이제 거의 사라지고 대다수의 일본인이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에 대해서 의식하는 것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실시했을 때 뿐이라는 상태입니다. 세월호 사건과 ‘촛불 혁명’에 대해서도 그것을 한국의 민주화 투쟁 이후 정치 문화로 자리 매기고 생각할 수 있는 일본인은 일부 역사 연구자와 좌익 활동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졌어요. 일본 사회는 냉전 시대보다 교류와 긴장 완화를 희구하는 생각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일본 본토에 사는 인간으로서 이 현상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가지는데 가는 길이 매우 멀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냉전 갈라파고스’에서 어떻게든 일본 본토를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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