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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호 새로 나온 책
933호 새로 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8.08.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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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가부장제 깨부수기

한국은 사회가 져야 할 비용과 책임을 모두 가족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압축 성장을 해온 나라인지라, “믿을 건 오직 가족뿐”이라는 신앙이 한국인의 일상적 삶을 지배한다. 여성 혐오는 엄밀히 말하자면, ‘가족 밖 여성’과 사회에 대한 혐오다. 나의 어머니는 숭배 대상이지만, 너의 어머니는 혐오 대상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맘충’이다. 극단적 가족 이기주의와 결합한 가부장제는 내외의 방어벽을 갖고 있는 셈인지라, 난공불락의 요새다. 남성들 중 일부가 그 어떤 깨달음에 의해 가부장제를 넘어서려고 해도 그건 그가 살아야 할 무대요 환경이라는 현실이 가로막는다. 그들이 세상과 충돌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지라 그 체제에 영합하는 것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주고 더 나아가 삶의 경쟁력을 키워주는데, 그걸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기득권자들의 극렬한 저항과 탄압에도 노예제와 신분제를 깨부순 역사의 수혜자들이 아닌가. 인권 투쟁은 우리 인류의 사명이요 숙명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가부장제는 산산조각 난 채로 부서져 허공으로 사라지게 돼 있다. 다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페미니즘 혁명은 상층부만 갈아 치우면 모든 게 달라지는 일반적인 혁명과는 달리 ‘장구한 혁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구한 혁명’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여성들은 그 어떤 인간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타자’로 규정됐으며, 그 어떤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박탈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부터 되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인물과사상사, 2018.8) 중에서

새로 나온 책

강의실에서 읽은 동화(평론집) | 권혁준 지음 | 문학동네 | 288쪽

아동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아동문학과 문학교육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평론집을 펴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아동문학 서사 장르 용어의 의미와 범주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아동문학에서 비평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2부에서는 주목해 봐야 할 아동문학작품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한국 아동문학에서 어린이의 본성과 욕망, 그들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작품이 왜 중요한지 말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무거운 사회문제나 현실 속 불행한 아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전달하고 그려내야 하며 서술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핀다. 17년간 아동문학에 대해 강의하고, 작품을 읽은 저자가 정의하는 좋은 아동문학은, 어린이가 주인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본성과 욕망을 긍정하고 그들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작품이어야 한다.

 

<근대서지>17호 | 근대서지학회 엮음 | 소명출판 | 682쪽

지난해 우수콘텐츠 잡지로 선정된 <근대서지>는 한국 근대문화 일차 자료를 보존하고 그 해석을 축적함으로써 문화 연구의 토대를 다지고 있는 잡지다. 이번호에서는 임화, 김환기, 변동림 등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해제를 덧붙인 풍부한 지면이 눈길이 가는데,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카르멘」 해제에서는 요절 작가 나도향의 번역 활동을 정리하며 나도향에게 있어 「카르멘」이 가지는 의의를 살펴봤다. 특히 3년을 두고 그가 다시 번역했던 박문서관 『카르멘』)(1925)과 『연애소설 칼멘』의 비교를 통해 3년 동안 일어난 나도향의 작가적 역량의 성숙을 확인하면서, 1920년대 활동 문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들의 번역 문학을 검토해야 함을 제안한다. <월세계여행> 해제와 <노동야학> 해제를 기다리던 연구자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을 자료로 <노동야학>의 경우 전체 원문을 수록해 독자들이 직접 자료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관중 | 한국미술연구소 한국근대시각문화연구팀 지음 | 한국미술연구소 CAS | 304쪽

일제강점기 경성의 시각문화가 관람, 매체, 전시 시설 등을 통해 공공화하고 대중화하는 양상과 이를 소비하는 관중의 출현을 다룬 한국근대미술 시각이미지 총서 제1권이다. 그동안 역사 및 정치사를 중심으로 행해진 일제강점기에 대한 연구에서 문화사 분야로 확장된 연구의 일환으로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의 시각문화가 어떻게 ‘모던’과 만나는지 실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공진회, 박람회 등 공람제도의 탄생부터 간판, 쇼윈도, 영화관 등 상업공간의 발달까지 근대적 관중의 탄생과 대중문화 및 소비문화가 형성돼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한국근대미술 시각이미지 총서는 일제강점기 형성된 시각문화의 근대적 성격을 조명한 책으로 전 3권으로 구성되며 각각 관중, 창작, 일상의 세 가지 테마를 갖고 사회, 예술, 일상 생활 전반에 걸친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를 제시한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 오드리 로드 지음 | 주해연, 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365쪽

여성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흑인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페미니스트이지만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했던 작가의 가장 핵심적인 산문들을 한데 모은 책이 출간됐다. 백인 남성 중심 사회뿐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과 민권운동 내에도 존재하는 모순과 차별, 억압을 사유하며 ‘차이’의 의미와 억압의 ‘교차성’을 선구적으로 이론화했던 작가는 페미니즘이 무엇보다 ‘우리 안의 타자들’을 보듬는 언어가 돼야 하며, 혁명은 그 어떤 차이도 희생하지 않은 온전한 자아들의 연대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또한 망가진 내면을 돌보고 살아남은 자신을 보듬는 일은 고통이 수반되고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지만 여성들에게 절실하다고 주장하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가르친 백인 아버지들의 가르침이 아닌,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롭다’라는 내면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충고한다.

 

일시적 존재론 | 알랭 바디우 지음 |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71쪽

『존재와 사건』이 기초에, 『세계의 논리』가 이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들에 해당한다면, 이번 저작은 이 기초 위에서 건물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워지게 되는지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는 스케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의 사유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 책은, 기존의 두 책을 잇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순수 존재론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탈속성의 세계에서 속성의 세계로의 존재론적 이동 논리를 담은, 존재론적으로 가능한 세계에 대한 논리학인 ‘출현의 논리학’을 소묘하는 이 책은 바디우의 존재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이 바디우 사유에서 핵심적인 개념인 ‘사건’을 다룬다면 기존의 책 『비미학』과 『메타정치론』은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진리를 생산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영역인 정치와 예술을 다룬다. 3부작을 통해 바디우의 순수 존재론에 대한 이해와 구체적 삶의 영역에서의 진리 생산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저작이다.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 | 려도 지음 | 정규식, 연광석, 정성조, 박다짐 옮김 | 나름북스 | 606쪽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지만 농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3억명의 중국 신세대 농민공의 문제를 추적해 온 작가의 두 번째 저작이 출간됐다. 자본이 노동자를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조종하는 상황에서 수년에 걸쳐 ‘신노동자’로 불리는 중국의 새로운 세대를 인터뷰해온 저자는 그들의 문화적 상태가 사회적으로 정확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4부로 다룬 이 책의 제1부에서는 한 노동자의 삶 이야기와 저자의 두 차례 공장 체험이 실렸고, 제2부에는 노동자 네 명의 삶과 여가를 다루면서 주거, 연애와 결혼, 출산과 양육, 소비, 여가 생활에 대한 관념 및 현황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논한다. 제3부에서는 노동자 세명의 삶과 선택을, 제4부에서는 북경 노동자의 집 활동가들을 인터뷰해 문화 분석의 비전과 실천방향을 모색한다.

 

중국의 토지정책과 북한 | 박인성, 조성찬 지음 | 한울엠플러스 | 480쪽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바로 국공유제 위주였던 토지정책의 개혁이다.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분리하고 사용권을 상품화함으로써,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자본주의 요소를 들여와 경제성장을 꾀한 것. 현재의 거대한 중국을 이뤄낸 바탕은 나라 전체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책을 결합한 거대한 실험장이 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 토지정책의 역사와 현황을 통해 중국의 토지 경제 구조와 실태를 파악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토지공유제와 북한 토지정책의 비교방법론적 이해를 도와준다. 1부에서는 중국의 토지정책에 관한 역사에, 2부에서는 개혁, 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이 실시해온 토지개혁 정책과 그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개방정책을 확대하기 시작한 북한도 과열된 부동산 시장 상황과 그에 따른 빈부격차를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은 북한의 토지정책 근황을 분석하고, 중국의 토지정책 경험이라는 일련의 내용을 통해 경제의 근본 중 하나인 토지를 사용하는 데에 국가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부동산 투기 과열 현상을 막고 경제 안정의 길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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