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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가속기'와 '춤'을 함께 말하는 물리학자
'입자가속기'와 '춤'을 함께 말하는 물리학자
  • 양도웅
  • 승인 2018.07.09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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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루스 국제세미나 2018: 지평넓히기’ 개최 

댄서이자 수학의 여왕이었던, 현 ‘충돌의 여왕’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는 켈리그래피(서예)를 즐기셨다. 아버지께서 남긴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작품(사진)이다. 아버지는 여기에 敬天愛人, ‘하늘(세계)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글귀를 적어 넣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현재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지난 3일 ‘이화-루스 국제세미나 2018: 지평 넓히기’의 특별강연자로 나선 김영기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강연 말미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켈리그래피 작품을 선보이며 위와 같이 말했다. 한국인 과학자 가운데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현재 평가받는 김영기 교수는 「My Way to become a scientist」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에서, 자신의 가족사에서부터 현재 관심 연구 분야, 연구소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기조강연 뒤에는 자유로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특히 가족사를 얘기하며 김영기 교수는 청중을 웃게 만들었는데, ‘그러한 자유분방함과 탐구정신이 어디서 기인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영기 교수는 “나는 밑에 동생이 하나 있는 다섯째 딸이다. 부모님께서는 막내를 신경 쓰느라 어린 나를 일일이 신경 쓰지 못하셨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마음껏 도전해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자신의 학창시절을 소개하며 김 교수는 “어렸을 때는 그 누구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다”며 “자신이 재밌어 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여러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를 그저 즐겨보는 게(simply enjoy) 좋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학창시절, 춤과 노래, 오르간 연주, 수학 등에 깊이 매료됐었다. 그녀는 출중한 수학 실력 때문에 ‘수학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00년 저명한 과학잡지 <Discover>가 ‘주목해야 할 20명의 젊은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김 교수를 선정하며 ‘충돌의 여왕(Collision Queen)’이라는 별칭을 붙여준 바 있다는 점이다. ‘충돌의 여왕’은 물리학자들이 물질의 미세구조를 밝히기 위해 원자핵 또는 기본 입자를 가속, 충돌시키는 것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어린 시절, 수학보다는 춤과 노래 공연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그녀는 여전히 춤을 춘다며 “다들 여행을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그곳의 ‘전통춤’을 꼭 배우려고 한다”고 자신만의 여행 노하우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다양한 국적과 성격을 가진 여러 명의 연구원들을 이끄는 노하우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영기 교수는 “솔직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그리고 조직에 다소 불만이 있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연구원과 한 번 대화를 해 풀었다면, 그 이후에는 절대 얼굴이나 몸짓에 그런 대화가 있었다는 것을 표나게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영기 교수는 오는 10일 「An Atom as an Onion」을 주제로 우주의 가장 심오한 존재인 입자에 대해 공개 강연을 한 번 더 진행한다.  

김영기 교수는 강연 마지막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캘리그래피를 소개하며 자신의 좌우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아버지가 적은 ‘敬天愛人’은 ‘하늘(세계)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이지만, 좀 더 풀면 ‘자연의 이치를 공경하고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수단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진 제공=이화여대 홍보팀 
김영기 교수는 강연 마지막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캘리그래피를 소개하며 자신의 좌우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아버지가 적은 ‘敬天愛人’은 ‘하늘(세계)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이지만, 좀 더 풀면 ‘자연의 이치를 공경하고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수단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진 제공=이화여대 홍보팀 

과학적 상식을 뒤집은 장하석 교수도 강연 예정

한편, 이화여대(총장 김혜숙)가 지난달 26일 미국 헨리 루스 재단과 공동으로 개최한 ‘이화-루스 국제세미나’는 오는 13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화-루스 국제세미나는 미국과 아시아 이공계 여성 대학원생의 경력 개발과 상호 교류를 촉진하고, 차세대 과학계 여성 리더 양성을 목적으로 이화여대와 헨리 루스 재단이 2015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헨리 루스 재단은 미국 <TIME>지와 <LIFE>지 공동 설립자인 헨리 R. 루스(Henry R. Luce)가 1936년 창립한 비영리 재단으로, 미국 내 이공계 여성 지원 단일재원으로는 최대 규모의 장학기금을 조성해 지급하고 있다. 이 재단은 이화여대의 여성 차세대 리더 양성 역량 및 기여도가 높다고 판단해 아시아 최초로 이화여대를 파트너 기관으로 선정, 2015년부터 4년간 167만 5천달러(한화로 약 19억원)를 지원해왔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세미나에는 이화여대뿐 아니라 미국, 인도, 중국, 필리핀 등 국내외 대학의 STEM(Sciences,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 여성 대학원생 총 22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특강, 토론, 워크숍, 문화역사탐방 등의 프로그램에서 리더십 역량을 키우고, 참가자 및 전문가와의 교류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김영기 교수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세미나에는 유명 인사들이 대거 초청됐다. 지난 28일에는 아시아 여성학의 선구자인 장필화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여성 리더십을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또한 Instrumental의 CEO겸 창업자인 애나 카트리나 쉐드레츠키(Anna Katrina Shedletsky)가 「STEM 여성들의 멘토링과 네트워킹-Building a Network of Allies, Mentors, and Advisors」를 주제로 강연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오는 11일에는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과학적 상식을 뒤엎은 학자’라 불리며 일반 대중들이 과학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 활동 중인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가 「휴머니즘과 과학」을 주제로 공개 강연을 한다. 강연에서는 과학이 인간을 초월해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연을 탐구해가는 문화적 과정임을 펼쳐 보일 예정이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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