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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 인도 출신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국내 첫 개인전
예술계풍경 : 인도 출신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국내 첫 개인전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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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이분법 뛰어넘는 인도의 예술정신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5월 21일부터 6월 29일까지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인도 봄베이 출신의 이 작가는 1970년대부터 런던에 거주하면서 브론즈, 사암, 석판 등 재료의 깊이 있는 해석과 안료의 서정적 강렬함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거장이다. 국내에는 지난해 해외작가 공동전에서 작품 한 점이 전시된 것이 전부인지라 이번 개인전은 카푸어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인 셈이다.

"형태와 빛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육체적이며 심리적인 상태에 대한 숭고한 경험을 준다"는 세간의 평이 무색치 않게 안국동 국제갤러리를 채우고 있는 카푸어의 조각들은 신비로운 아우라로 가득했다. 재료에 대한 명해석가답게 이번에도 합성수지의 투명성, 가루의 흡수성, 석고의 반짝임과 스테인레스의 광택효과를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둥글게 휘어잡는 힘이 느껴졌다.

카푸어의 공간적 미학은 '존재와 부재', '유형과 무형', '정신과 물질' 같은 근대적 이분법을 해체하고 넘어서려는 그의 철학적인 시도와 만날 때 완성된다.

'뒤집어진 세상'이라는 작품은 중심을 향해 사라지는 허공을 표현하고 있다. 전시공간의 바닥과 벽으로 결합된 여러 조각들은 이차원, 삼차원의 효과를 나타내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불확실과 혼란스러움에 빠지도록 한다. 카푸어는 중심을 통해 망각의 두려움이나 공허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중심성을 해체하고자 했던 것일까. 사각의 대리석 안에 둥근 홈을 만든 '그 산을 기억하라'는 착시 효과를 극대화했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벽을 움푹 함몰시키며, 球體의 표면을 코발트 가루로 거칠게 덮은 후 다시 스틸로 광택 효과를 냄으로써 어질어질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카푸어의 국내소개가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이영철 계원예술대 교수(매체예술학과)는 카푸어의 작품이 "그 자체로 개별적 완결성을 지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잃지도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다"라고 지적한다. "주변환경과 완벽하게 어울리도록, 즉 작품이 상황을 흡수하면서, 상황에 의해 작품이 만들어지는 점"에 감상의 포인트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카푸어의 오브제는 상황에 흡수되면서 자신을 잃게 되지만, 그만큼 공간과 상황을 자기 내부로 끌어들여 일체화시킨다는 설명이다.

제3세계 출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답게 카푸어는 현대적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이면에는 인도에서의 생활과 그곳의 殘像을 작품 속에 섞어 넣음으로써 서양미술의 '균형 감각' 너머의 어딘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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