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티콘·블록체인 같은 시민기술이 좋은 민주주의 牽引
시놉티콘·블록체인 같은 시민기술이 좋은 민주주의 牽引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6.11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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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류석진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매체의 발전과 민주주의, 그 가능성과 위험」

네이버문화재단 ‘열린연단_ 문화의 안과 밖’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매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올해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류석진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매체의 발전과 민주주의, 그 가능성과 위험」 강연 중 주요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매체의 변화는 기존 정치의 작동 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매체의 변화가 자동적으로 보다 좋은 정치와 원활히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가능성의 공간과 영역을 확장시켜주었다는 필요조건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매체는 항상 양날의 칼로 작동한다. ‘끼리끼리’ 모이는 우매한 군중과 포퓰리즘의 등장, 손쉬운 여론 조작, 국가와 기업에 의한 감시 사회의 가능성 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한계 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

참여의 정도와 깊이를 확대시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시도에서도 핵심적인 가치는 책임성, 반응성, 투명성이 돼야할 것이다. 시민기술은 이러한 ART를, 시민이 주체가 돼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다 성숙된 민주주의가 매체의 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류석진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

하지만 이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전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영리한 군중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우매한 군중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쉽게 조작당하거나 동원돼 중우 정치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물론 2018년 제기된 드루킹 사건과 박근혜 정부 시절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들은 ‘어떻게’의 문제에 새로운 매체의 방식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갖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평가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는 矯角殺牛의 함정에 쉽게 빠지는 논의가 될 수도 있다. 시민 참여를 촉진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공간과, 정치 공작의 수단과 대상의 공간으로서의 새로운 미디어 공간은 구분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정치 공작 차원에서의 위험성은 기존의 선거 공간에서 무수히 존재하였던 정치 브로커들이 활동 무대를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 공간으로 장소를 이동한 것으로, 대의제와 선거 그리고 여론에 따르는 정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속성을 지니나, 그 속도와 범위라는 양적인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위험성 때문에 시민 참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enabling technology)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의 시민기술의 도입이 위축돼서는 안 될 것이다.

감시 사회의 가능성 또한 매체 변화의 역기능으로 나타날 수 있다. 벤담(Jeremy Bentham)이효율적인 형무소 관리 형태로 고안한 감시 시스템과 푸코(Michel Foucault)가 이를 발전시켜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감시 형태로 제시한 파놉티콘(Panopticon)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더욱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각종 첩보 영화에 등장하는 감시 기술과 빅데이터의 증대된 활용, 인공지능(AI), 생체(안면) 인식 기술, 사물인터넷(IoT) 등을 통해 집적된 자료와 정보는 국가와 거대 기업에 의한 시민 감시와 통제 기제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다수의 시민이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할 수 있는 시놉티콘(Synopticon, 역파놉티콘)의 가능성과 등장에 주목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다양한 시민기술이 바로 시놉티콘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작 가능성에 따른 여론의 왜곡 현상, 가짜 뉴스, 우매한 군중, 정보의 중앙 집중 관리에 따른 감시 사회 등의 위험성에 대한 해결책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블록체인은 인간이 경제 및 사회 생활에서 생성하는 거래 정보를 하나의 ‘블록(Block)’으로 묶고, 그 블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로 ‘연결(Chain)’되는 것을 말한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통상 ‘무결성’과 ‘보안성’이 꼽힌다. 블록체인에 저장된 정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 이전 블록들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에 변경이 거의 불가능하다. 더불어 블록체인 기술에서 거래 정보의 전달은 네트워크에 참여한 주체들 간에 개인 간 거래(P2P)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중앙 집중형 관리 체계에 비해 민주적이고도 효율적인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중앙의 관리자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가능하고, 삭제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콘텐츠 생산자와 이용자가 자기 책임 하에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의견을 개진하게 되기 때문에, 가짜 뉴스는 사라지고 양질의 정보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블록체인 기술이 바람직한 소셜 미디어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게임(Crypto Kitties, 크립토 키티), 보험 산업(다이아몬드 인증), 부정 선거 방지를 위한 블록체인 전자 투표(에스토니아), 해운/물류, 의료(환자 결정권 하에 의료 정보 공유), 에너지 거래, 공인 전자 문서 유통 등의 분야에 이미 활용되고 있거나 새로운 플랫폼과 앱들이 개발되고 있다. 

인류는 예부터 ‘개인 대 개인’으로서 ‘관계(chain)’를 맺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특정 기업 또는 서비스를 통해 ‘관리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2009년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전통적인 ‘폐쇄형 중앙 집중’ 방식에서 ‘개방형 중앙 집중’ 방식으로 변화했고, 블록체인을 통해 ‘개방형 분산식’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블록체인 기술로 투명성의 증대를 통한 사회 혁신과 이를 통하여 반응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모든 매체의 변화가 그러하듯,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정치의 작동 방식, 더 나아가서는 정치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게 된다는 점 또한 고금의 진리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기술 결정론의 함정을 넘어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더 좋은 정치와 민주주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어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성찰적 모색과 더불어 기술 사회 구성론적 차원에서 각 정치 행위 주체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매체의 변화는 필요조건에 불과하고, 시민들의 실천적 개입이라는 충분조건이 구비돼야 보다 좋은 민주주의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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