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내재적 발전론…"기원은 3·1운동”
한국 민주주의 내재적 발전론…"기원은 3·1운동”
  • 양도웅
  • 승인 2018.06.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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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 학술토론회 「한국 민주주의, 세계적 물음에 답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언제 시작됐을까? 이런 ‘기원’에 대한 문제가 지난 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 스님, 이하 사업회) 주최 학술토론회 「한국 민주주의, 세계적 물음에 답하다」에서 다뤄졌다. 토론회의 부제는 “3·1에서 촛불까지, 100년의 실천과 미래 100년”으로, 사업회는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으로 삼았다.

한국 민주주의를 사건 중심으로 말할 때, 1960년의 ‘4·19혁명’과 1987년의 ‘6월항쟁’은 항상 거론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의 앞과 뒤에 1919년의 ‘3·1운동’과 2016년의 ‘촛불시위(항쟁)’을 위치시켜 ‘100년 동안의 4번의 민주혁명’으로 범주화한 것, 이것이 이번 토론회의 입장이었다. 즉 토론회는 ‘3·1운동(1919)→4·19혁명(1960)→6월항쟁(1987)→촛불시위(2016)’라는 흐름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내재적’ 발전으로 설명하려 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를 좌장으로 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정근식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100년 역사를 말하며 3·1운동을 그 역사의 기원으로 삼았는데, 이 명제가 갖는 과감성과 문제가 토론에서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를 좌장으로 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정근식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100년 역사를 말하며 3·1운동을 그 역사의 기원으로 삼았는데, 이 명제가 갖는 과감성과 문제가 토론에서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 100년의 역사, 4번의 민주혁명」를 발표한 김동택 서강대 교수(국제한국학과)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국민 혹은 민족이 주체가 돼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양상이 반복됐고, 그 자체가 하나의 경로의존적 양상을 보여준다”며 “이런 경로의 시작점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일어났던 3·1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3·1운동 이후 본격화된 식민지 상황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국민국가’의 자리를 ‘민족’이 대신했다”고 덧붙였다. 나라를 잃은 일제 식민지 시기 한반도 사람들에게 ‘민족’은 되찾아야 할 ‘나라’였다는 말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진보적인 입장’인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민주주의, 어디서 왔는가?」를 발표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는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를 언급하며 ‘민주주의 외삽론’을 비판했다. 외삽론은 해방 직후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의 제도와 이념이 한국에 이식됐다는 주장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내재적인 발전 단계로 설명할 때 부딪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김정인 교수는 “제도와 이념의 실현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시각에 근거하는 것이 민주주의 외삽론”이라며 “하지만 외삽론은 산업화처럼 민주주의도 급속하게 발전했다는 논리 외에 다른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4·19혁명 때 등장했던 ‘민주주의 사수하자’라는 구호는 해방 이후의 미국으로부터 학습한 결과물이 아니라, 공노비가 해방된 1801년 이래 인민 주도의 저항운동 문화가 축적해 민주주의로 발현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시각에선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100년이 아니라 200년으로 확장된다. 

네 가지 사건의 시작, 즉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한 논의와 함께 네 가지 사건의 끝인 '2016년 촛불시위 이후'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있었다. 토론자로 나선 이관후 서강대 교수(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는 “촛불이 그 이전 사건인 87년 6월항쟁의 복원과 연장에만 그칠 것인가, 아니면 87년 체제를 극복한 새로운 ‘17 체제’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물음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의 내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그 이후의 개혁이었지만, 촛불 이후 우리가 적폐청산에만 그친다면 ‘17 체제’라고 새롭게 이름을 붙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어 “87년 체제 이후 극심해진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종로5가에서 전경들에게 꽃을 건네주는 여성시위대. 사진 출처=6·10 민주항쟁 홈페이지

‘종언’에 이르렀을 때 보이는 ‘기원’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로 정의하고, 그리고 그 투쟁의 역사의 ‘기원’을 탐색한 이번 학술토론회의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기원은 종언에 다다랐을 때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조영일 문학평론가는 이 말을 비틀어 ‘보람은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뒤를 돌아봤을 때 갖게 되는 감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이 토론회의 화기애애한(보람에 가득찬) 분위기는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자신감(안심)의 발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목표'가 민주주의의 '정착'에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토론회에 참석한 한 청중은 피부에 와닿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토론회 마지막에 짧게 거론됐을 뿐이다. 한국과 한국의 민주주의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여전히 존재한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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