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폭식 사이 ⋯ 염치없는 인간 식욕의 역사
단식과 폭식 사이 ⋯ 염치없는 인간 식욕의 역사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 영어학
  • 승인 2018.05.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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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음식의 문화사 _ 20. 폭식과 대식, 그리고 단식

“개동부터 어두울 때까지 그들은 밥을 다섯 끼를 먹는다. 다시 말하면, 조반, 점심겨누리, 점심, 저녁겨누리, 저녁 이렇게 여러 번 먹는다. 게다가 참참이 먹이는 막걸리까지 친다면 하루에 무려 여덟 번을 식사를 하는 셈이다. 그것도 감투밥으로 올려 담은 큰 그릇의 밥 한 사발을 그들은 주는 대로 어렵지 않게 다 치고 치고 하는 것이다.”              (김유정, 『오월의 산골짜기』 중에서) 

단식부처 vs. 비만 스모 선수

단식부처상(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사진출처=https://en.wikipedia.org/wiki/Lahore_Museum
단식부처상(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사진출처=https://en.wikipedia.org/wiki/Lahore_Museum
사진2. 일본 스모선수. 사진출처=https://www.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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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古都 라호르 박물관에서 만난 「단식하는 부처상」(Fasting Buddha)은 단숨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내가 20대 초반에 채식주의자가 되고 그 후 마음의 물결 따라 간간이 단식을 하는 게 잘 한 선택임을 거듭 확인했다. 단식 부처상은 오랜 단식과 수행으로 피골이 상접한 부처의 모습을 조형한 것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어깨와 핏줄 하나하나까지 드러난 고행하는 부처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거룩해보였다. 도처에서 보는 불상과는 차원이 다른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단식 부처상. 사람들은 먹기 위해 애를 쓰는데, 부처는 왜 기를 쓰고 굶은 것일까?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인데, 알맞게 먹는 일을 누구라고 비난하지 않을 것인데, 부처께서는 왜 섭생을 마다하고 단식을 택한 것일까? 단식은 굉장히 불편하고 부자연스런 일이다. 의지가 있지 않고서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행위 예술이다. 

아침 식사를 영어로 breakfast라고 한다. 그 말뜻은 전날 저녁 먹고 밤새 단식 즉 굶었다가(fasting), 새 날이 밝자 기다렸다는 듯 마지못한 단식을 타파하고(break)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즐기는 것이다. 몸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필요한 음식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단식 또는 금식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가능하면 굶지 말고 때 맞춰 몸에 영양을 공급해줘야 몸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하며, 그래야 적절히 건강을 유지한다. 몸이 없는 영혼은 없다. 영혼의 집이라는 인체가 건강해야만 영혼도 머물 수 있다.

단식 부처처럼 부러 굶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죽기로 먹는 유형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씨름 쓰모 선수가 그렇다. 그들에게 체중은 중요하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야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엄청나게 먹는다. 먹고 게우고, 쉬었다 또 먹고 다시 토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한다. 이들을 과연 대식가로 분류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프란츠 카프카를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로 둘째 여동생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괴상한 책을 즐겨 읽던 누이가 카프카의 변신 얘기를 꺼내는데, 오라비인 나는 당시 그 작품을 읽지 못했던 터라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어린 동생의 독서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서였을 것이다.
자학적이라고도 할 단식 행위에 대해 광대 자신은 ‘입에 맞는 음식이 없어서’라고 이유를 댄다. 나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입에 맞는 음식이 없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생은 사람 간에 공감과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진수성찬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행복감도 갖지 못한다. 입에 맞는 음식이란 게 비싸고 희귀해야 만은 아니다. 살아갈 명분이나 의미가 쌀밥 한 그릇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단식광대가 필요로 한 입에 맞는 음식은 결국 살아갈 원동력 같은 게 아니었을까?

사진3.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광대」의 장면. 사진출처=https://www.google.co.kr/search?q=%EC%B9%B4%ED%94%84%EC%B9%B4+%EB%8B%A8%EC%8B%9D%EA%B4%91%EB%8C%80&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j6642coI7bAhVKVrwKHeBaBsYQ_AUICigB&biw=1015&bih=494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광대」의 장면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단식의 즐거움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 교리와 전통에 따라 금기가 많았다. 성금요일과 재의 수요일은 단식을 해야 했다. 늘 굶는 사람에게는 일상이 단식이지만,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던 사람은 제 때 못 먹으면 신경질적이 된다. 평소의 유순하고 다정한 얼굴이 굳어지며 쉽게 짜증을 낸다. 교직과 성직에 있는 분들이 별 것 아닌 먹는 문제를 가지고 인상을 구긴다. 아니, 그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아니면 자신들이 한 끼 못 먹거나 제 때 못 먹어 표정과 말투가 달라지는 걸 전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상 이건 공부나 수도의 깊이, 덕망의 정도와 무관한 것 같다. 음식은 생존과 직결된 것이라 배고픔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이성은 무익하고 일상의 침착함은 뒤로 숨는다. 오직 모든 신경이 내 몸 안에 맛있는 음식이 언제 들어올 것이냐에 맞춰진다. 인간은 이 정도다. 인간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인간은 더 이상 고급스럽지도 않고 기품이 있지도 않다.

그런데 배고픔도 익숙해지면 친구가 된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도 곧 사라지고 빈 위장의 아우성과 뒤틀림도 견딜만하다. 먹을 수 없을 때 조급해하면 할수록 괴로움만 커진다. 잠시 배고픔을 받아들이면 이내 공복의 즐거움이 찾아든다. 오늘 한 끼 못 먹으면 내일 그걸 찾아먹는 게 아니니, 어떻게든 끼니를 충당하려 말 일이다. 그렇게 결사적일 게 뭐 있는가? 어차피 매일 먹는 밥인데 한 끼 쯤 굶는다고 대수일 거 없다. 점심을 못 먹으면 못 먹는다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점심을 좀 늦게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물론 먹는 즐거움은 공복의 즐거움과 다르다. 그리고 먹을 것 앞에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그렇다고 한 끼 굶어 영양실조 걸리거나 질병으로 앓아눕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에 몇 끼를 먹어야 하나?

얼마 전 친구 한 명이 세상을 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어처구니없다. 원래 먹는 걸 즐기던 친구다. 요즘 우리 사회는 마치 온 국민이 먹는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맛집과 별미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열기가 정상을 넘어선 상태로 보인다. 고인의 남동생이 안타까워하며 형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체중이 100kg을 훌쩍 넘었고, 몸 움직이는 게 힘들고 귀찮다보니 운동은 꾀가 나 사양하고, 당뇨에 혈압 등 합병증에 늘 시달렸다. 몸집이 커서 많이 또 자주 먹는다지만, 먹는 재미로 사는 것 같아 보였다. 먹고 또 먹고 하루에 대여섯 끼는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식간에 먹는 새참을 합치면 여덟 끼 그 이상을 먹는 셈이었다. 그 정도 먹어야 만족감에 네 활개 활짝 펴고 비로소 잠을 창했다고 했다. 미련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친구 세상 버리려고 했는지 의사 딸에게 신장 투석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긴 시간이 소요되는 투석을 못 견디고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며 풍운의 세상살이와 하직했다니. 과연 먹는다는 건 무엇인가? 살기 위해 먹기는 하되 얼마나 먹어야 하나? 어리석은 음식 사랑의 사례를 살펴보려는 이유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고대 로마의 서민들은 검소한 식사를 했다. 빵과 죽, 치즈, 올리브, 채소, 과일 등을 적당량 먹었다.  부유한 상인들, 귀족들은 아침과 점심은 간단히 먹고, 기다렸던 저녁이 되면 베이컨과 와인을 먹고 마시며 밤새 주연을 즐겼다. 로마의 귀족들은 먹는 즐거움, 맛을 느끼려고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를 되풀이 했다. 맛있는 것을 먹고는 싶은데 몸에서 받아주지를 않으니 먹은 걸 토하고, 토한 만큼 생긴 뱃속 빈자리를 또 음식으로 채웠다. 토하는 것도 손가락을 집어넣어 왝왝거리는 게 아니라, 깃털을 이용해 목구멍을 간질여 기술적으로 토했다.

식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고, 따라서 생존을 위해 먹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다른 말로 신분에 따라 먹고 사는 게 천양지차다. 돈보다도 권력이 개인이 섭취하는 음식의 양과 질은 물론 문화와 관련이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는 먹는 일이 국가와 백성을 위한 일종의 통치행위이기도 하다.조선 왕의 아침식사가 10시경이듯, 중국의 황제는 매일 아침 독서를 하고나서 황제를 상징하는 용의 시간인 辰時(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 아침식사를 했다. 황제의 식사를 ‘進膳’ 혹은 ‘用膳’이라고 하는데 만주족의 나라 淸國 황제들의 식단은 주로 만주족의 전통 음식과 북경 음식으로 이뤄졌다. 그런 중에 중원대륙 각지의 풍미가 있는 특산물로 만든 갖가지 미식을 바탕으로 궁중 요리가 발전됐다.황제는 무엇이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었다. 오늘날은 독재자가 원하는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북한 정권의 김정일이 살아생전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그의 요리사였던 사람이 양복 안주머니에 몰래 숨겨가지고 나온 아래 식단표는 권력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일반인은 생전에 단 한 번도 먹어볼 수 없는 요리가 독재자의 식탁에서는 일상이다. 상어지느러미, 자라, 깡빠치 등은 어디서 찾을 수도 없다

3/26: 감자 쌀라드, 야자상어날개탕, 물고기목이버섯술찜, 염소고기샤슬리크, 자라함찜, 게장즙서란화볶음, 백미밥, 콩나물국, 통배추볶음, 풋고추장, 홍차
3/27(스시): 다랑어 도로, 쏘가리, 깡빠치, 뱀장어카비아, 네기도로, 도비꼬 새우뎀뿌라, 이나리, 나메꼬버섯된장국
3/29: 왕새우회, 남새생채, 대군상어날개홍쏘, 물고기룡정차철판볶음, 비둘기 간장찜, 동과참나무버섯찜, 카레밥, 맑은국, 홍차

위의 식단을 보면 김정일이 대식가였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중국 황제와 황실은 얼마나 먹었을까? 중국 역대 황제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에 들어간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근검절약한 편이었다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崇禎帝와 황후의 경우 매년 일상적인 식비만 白銀 1만6천872량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를 당시의 곡식 가격으로 환산하면 대략 52만 달러 상당. 그렇다면 중국 황제들은 대식가였을까?청나라 황제들은 아침 식사인 ‘早膳’과 저녁 식사인 ‘晩膳’,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했다. 이것이 공식 식사인 ‘正膳’이다. ‘早膳’은 오전 7시부터 9시 사이, ‘晩膳’은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에 느긋하게 먹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한차례 ‘晩點’인 간식을 먹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황제

황제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가짓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수발을 드는 태감이 계속 황제에게 접시를 대령한다. 황제로 하여금 준비된 모든 요리를 맛보게 함이다. 문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가 올라왔을 때 맘껏 먹을 수 없다는 것. 황제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규정상 한 차례만 먹도록 돼 있다. 황제가 특별히 좋아할 경우 한 번 더 먹을 수는 있지만 그러면 그 요리는 한 달 동안 더 이상 상차림에 들지 않는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 황제가 세 번을 먹으면 그 요리는 황제의 식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황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노출돼 요리에 독을 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식사가 통치행위라는 거창한 명분과 연결돼 있는 황제의 신분으로 태어나지 않고 치맥 따위 맛있는 먹거리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가? 입에 맞는 음식이 없어서 굶는다는 까탈 맞은 단식광대가 될 생각은 절대 하지말 일이다.

송대(960~1279년)에 황제가 신하들에게 베풀었던 소규모의 야외연회. ⓒwikimedia.org

사실 사람은 누구나 산해진미를 즐기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도 인간의 욕구는 염치가 없다. 중국 남송 초기는 아직 전운이 걷히지 않아 나라가 어지럽고 힘든 때 임에도 불구하고 휘종 시대의 사치스러운 맛을 잊지 못하고 특히 일부 장군들은 오랑캐 금나라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남아도는 군자금을 유용해 편리하고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사례로 소흥 21년(1151) 10월 송의 10대 황제이자 남송의 1대 황제인 고종(휘: 構, 자: 德基 1107~1187년; 재위: 1127~1162년)이 군벌의 거두 淸河王 張俊의 집에 갔을 때의 식단이다. 천자와 그 수행원들의 계급별로 내놓은 200여 그릇의 내용이 하나하나 친절하고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秦檜를 필두로 群臣의 계급에 따라 요리를 5등급으로 나누기도 했다. 사람은 참 희안하게 사는 동물이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 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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