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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전통과 자본주의식 경제체제의 불편한 同居
유교적 전통과 자본주의식 경제체제의 불편한 同居
  • 윤상민
  • 승인 2018.05.14 10: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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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한국문화의 탈중국화』(김혜원 지음, 소명출판, 2018.5)

대다수의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현재의 자본주의식 경제체제와 잘 어울리고 있는가? 만약 유교적 전통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서구에서 수입한 자본주의식 경제체제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 유교식 해결책이 과연 현재 양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사회 문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가?

전 세계 2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몇 년 전의 한 국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본주의 역사가 긴 구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더 많은 한국과 중국의 응답자들이 돈을 중요한 성공의 증표로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돈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전쟁과 혁명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어 온 그들에게 미래라는 것은 항상 예측하기 힘들고 불안한 것이었다. 또한 한국과 중국은 아직 구미 선진국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은 돈을 자신과 가족을 지켜주는 유일한 안전장치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경쟁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고방식

조선시대에 명예나 체면 등의 집단주의적 덕목이 중요시됐던 이유는 당시의 경제·사회 구조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폐쇄적인 농경사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족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서로 농사일을 도왔다. 따라서 이들에게 혈연은 곧 지연이었고, 동시에 경제공동체를 의미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남들의 눈치를 살피는 등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제·사회 구조는 지난 세기 후반의 산업화 과정을 통해 크게 바뀌었다. 이와 동시에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서 한국인들은 처음으로 자본주의식 경쟁사회를 경험하게 됐다. 다만 이때는 국가경제가 고속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사회에 나름의 활력을 줬던 덕분에, 당시의 경쟁은 한국인들이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한정된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근에는 ‘수저계급론’이 등장하는 등 계층 간을 잇는 사다리가 사라져 사회발전의 활력도 많이 떨어졌다.

이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에서 이웃은 더 이상 혈연관계도 아니고 또한 동업관계도 아니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서로를 돕기보다는 한교에서나 직장에서나 한정된 수의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해야만 한다. 과거 조선사회는 사람들 간의 협력을 중요시하는 사회공동체였다. 이에 반해 현대 한국 사회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경쟁자인 소위 무한경쟁사회다.

유물론적 시각에서 보면, 사회의 하부구조인 경제체제가 바뀌면 그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사회 규범이 그것에 맞게 변한다. 이와 더불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고방식도 그것에 맞게 변한다. 그런데 이때 경제체제가 너무 급변하게 되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그 변화속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완고한 편이어서 변화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부상조를 강조하던 씨족 중심의 농경사회는 이미 해체됐고, 현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든 효율을 중시하고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많은 한국인들이 전통적 사고방식에 따라 여전히 일체감 등의 집단주의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체감이 강한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 서로 경쟁하라고 강요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구성원들의 행동과 생각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에 구성원들 간의 일체감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존중 받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혼자 뒤처지거나 따돌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해, 다수가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게 된다. 사회적 동조 현상, 즉 쏠림 현상이 한국에서 자주 목격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가 경쟁을 해야 한다면, 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의 한국 사회와 같이 낙오자를 따돌리는 상황에서라면,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고 중간이라도 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자본주의의 발전은 개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주의는 서구의 상공인들이 추구했던 윤리였다.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이 되면서, 이들의 윤리인 개인주의가 서구 사회의 일반적 윤리가 된 것이다. 홉스테더의 개인주의 지수를 살펴보더라도, 자본주의가 발달한 구미 선진국들은 한결같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적 전통을 공유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데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 성공했다. 이를 근거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와의 관계, 즉 상호의존성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그러나 유교적 전통이 국가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이것이 유교문화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본질적으로 유교는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고성원들 간의 화합을 강조하는 사회규범이기 때문에, 내부 경쟁을 통해서 효율을 재고하는 자본주의 철학과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중 한 가지로, 한국인들의 타인에 대한 기대수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은 강한 집단주의 사회인만큼 한국인들은 자기 주위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은 탓에 그만큼 실망도 크다고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자부한다. 실제 한국인들은 지연 및 학연 등과 연관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간관계는 과거 폐쇄적인 농경사회에서 필요했던 것으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측면이 있따.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덕목은 공정함이지 인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이런 괴리가 계속 존재한다면, 한국인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자신들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친다고 계속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교가 추구했던 공동체의 안정과 대동사회라는 이상향이 잘못된 사상이나 정책은 결코 아니다. 조선시대 오백년 동안 사회가 비교적 안정됐다는 사실은, 유교의 가르침과 이를 통해 다져진 집단주의 문화가 그 당시의 사회에는 매우 유효했다는 증거다. 문제는 이런 유교의 실천방법이 현재의 자본주의식 경제체제와는 잘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다. 유교와 자본주의가 서로 상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을 통해서 효율을 제고하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유교가 추구하는 집단주의적 가치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 김혜원은 재홍콩 인문학자로 주요 연구분야는 한·중 양국의 문화비교다. 홍콩대 및 홍콩시티대 어문학부에 각각 한국학과와 한국어학과를 설립해 홍콩 학계에 한국학 발전의 기초를 세웠다. 현재 ‘The Cultural Studies Centre of East Asia’의연구소장으로 한국과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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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 2019-02-25 08:39:15
유물론적 시각에서 보면...(생략)

위에 이런 글을 보고 싹 내렸는데요
와우... 우리나라 강단은 정말 좌익이 꽉 잡고 있나봐요
어서 다 같이 베네주엘라에 식용 고기가 되러 가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