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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교수 확보 ‘갸우뚱’…신분불안만 심화
우수교수 확보 ‘갸우뚱’…신분불안만 심화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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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계약제 이후 교수사회의 명암 쨖 계약제, 과연 목표대로 가고 있는가

“정체된 교수사회에 ‘적자생존’ 자극제”. 2002년도부터 교수계약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은 ‘교육공무원법’ 개정(1999. 1. 29)이 예고되자 한 중앙 언론이 뽑은 기사의 표제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계약임용제는 교수인사에 경쟁원리를 도입, 정체된 교수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

계약제 도입에 대한 보다 그럴듯한 교육부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자질과 업적이 우수한 대학교원을 확보하고, 대학교원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고등교육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해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했다.” 근무기간, 급여, 근무조건, 성과약정 등 계약조건을 정해 교수를 임용하는 계약제는 ‘교수의 대학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등 ‘교수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대학의 우수교원 확보를 돕는다는 것. 교수 계약제를 도입하면, 능력이 뛰어난 교수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무능력한 교수는 대학에서 도태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이면에 깔려 있다.

교육부의 장밋빛 구상…현실은?

◇‘우수교수 확보’의 명분과 맹점 = 교육부의 계산대로라면, 각 대학들은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 차별화된 계약조건을 내거는 게 당연한 수순. 그러나 이 부분은 그리 간단치 않다. 대학들이 재정적 여건이 탄탄하거나 우수 교수 확보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차별화’를 내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방 국립대의 한 교원인사 담당자는 단적으로 “교수 초빙 공고를 내면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20여명이 넘게 지원하는 상황이라 우수 교수를 임용하기 위해 따로 특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교수직 임용을 희망하고 있는 4년제 대학 시간강사는 지난해 5만1천2백25명이었다. 4년제 대학이 해마다 2천여명을 신규로 임용한다고 해도 적어도 평균 25: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희망자’가 넘친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신진학자들과 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시간강사, ‘현직’에서 직장을 옮기려는 교수들까지 추산한다면, 특별한 유치책 없이도 ‘지원자’ 가운데 고를 수 있다.

또한 국립대는 재정운영의 경직성과 열악한 재정 규모 등으로 우수 교수에 대한 지원에 인색할 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사립대는 당장의 실력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들의 위화감을 조성하면서까지 혜택을 부여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연구실적이 뛰어난 우수교원을 ‘특별채용’ 형태로 임용할 수도 없는 노릇. 특별채용 방식은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교수임용비리, 특혜 의혹 등의 구설수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윤제학 경희대 교무처장은 “특별채용은 교육부의 감사대상인데다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많아, 대다수의 대학들이 공개채용 형태를 통해 지원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학자를 임용하는 방식을 취한다”라고 말했다.

◇교수의 대학간 이동, 뚜껑을 열어보니 = 계약제가 가져온 변화 가운데 ‘교수들의 활발한 대학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교수들이 대학을 옮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 그러나 이것이 ‘교수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연화’는 자원의 적재적소 배치를 의미하지만, 근래 나타난 교수 이동 현상을 보면, 외형적 자리바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교수 이동이 신임교수 충원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수도권에 새로 마련된 교수자리에 경력직 교수가 이동하고, 그 빈자리를 초임 교수가 메운다는 것. 모교로, 서울로, 지방거점대학으로 옮기는 최근 교수 이동의 특징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지난해 상반기 대학을 옮긴 교수 2백57명 가운데 61명(23.7%)이 모교로 이동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2백76명 가운데 84명(30.4%)이 모교로 되돌아 갔다. 또한 2002년 상반기에는 대학을 옮긴 교수 가운데 지방에서 서울로 옮긴 교수는 전체의 37.4%였으며, 올 상반기에는 28.5%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 남식용 성균관대 교원인사 담당자는 “이미 검증된 경력교수에게 경력점수를 주고, 연구실적 평가로 교수를 임용하기 때문에 경력교수가 임용에 유리하다”라면서 “우수한 신진학자들이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즉, 대학 서열화와 함께, 수도권은 경력을 뽑고, 지방대는 초임을 뽑는 등 대학사회가 이원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또한 한번 재계약에서 탈락하면 좀처럼 대학사회에 발딛기 어려운 대학구조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근래 교수들의 대학 이동 증가는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만을 더욱 부추길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지방, 교수임용 이원화 불러

◇계약제 도입과 교수 노동시장 유연화, “닭이냐, 달걀이냐” = 교수단체들이 계약제 철폐의 목소리를 높인 지점은 △교육에 있어서 시장경제논리가 중심이 되서는 안 된다는 것과 △계약제는 시장의 성립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었다. 계약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대학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기본적인 풍토가 필수적이고, 그래야 공정한 평가와 협상, 계약이 가능하는 주장이었다. ‘계약’ 문화에 익숙치 않은 사회적 풍토도 중요한 부분이다. 계약제가 시행되기 직전, 2001년 12월 ‘국교협·교수노조 공동토론회’에서 김종서 배재대 교수(법학)가 “계약제 도입을 통해 대학간 교원의 이동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본말전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라며 우려를 나타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교수 계약제는 우수교수 확보와 교수의 지속적인 연구력 향상을 지향하며 시행된 계약제의 취지에 맞지 않게, 교수 신분의 불안정, 지나친 연구지상주의, 교원들간의 위화감 조성, 임용권자의 통제수단화 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단 10여일간의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국회본회의에서 법안 제안 설명을 생략한 채, 표결처리도 없이 15분만에 통과된 교수계약임용제. 합리적이고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이 태생적 결함은 애초 계약제가 교수 신분 불안, 낮은 보수, 불공정 계약 등의 문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리 예고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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