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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긍심을 가져도 돼요. 우리 문학에는 김수영이 있어요.”
“자긍심을 가져도 돼요. 우리 문학에는 김수영이 있어요.”
  • 양도웅
  • 승인 2018.03.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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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 사후 50주년 기념 결정판 편집·출간한 이영준 교수 인터뷰

그야말로 봄이었다. 지난 12일, 『김수영 전집』(민음사, 이하 『전집』)을 새롭게 출간한 이영준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 칼리지ㆍ사진)를 만나기 위해 찾은 경희대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두꺼운 겨울 외투가 아닌 간절기 외투를 걸친 체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다. 벗어놓은 옷의 무게만큼이라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 좋으련만, 세상은 여전히 청춘들의 마음을 애타게만 하는 것 같았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1957년, 김수영이 쓴 시 「봄밤」의 한 구절이다. 이 시기 그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농사는 흉내에 불과했다. 봄의 기운이 몰려오는 강가와 채마밭에서 그는 전쟁과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서둘지 말라고, 당황하지 말라고, 그리고 업적 따위 바라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그해 12월, 김수영은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연극을 하다 시로 전향해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자신의 시와 삶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는 기뻤을까. 물론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실로 바라던 것은 업적 같은 것이 아니었다. 1년보다 조금 더 지난 1959년, 그는 「死靈」에서 자신을 질책했다.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다른 이들에게 박수를 받은 이후, 안주해 가는 자신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더욱 엄혹해져 가는 시대 상황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부자유에 고통스러워했다. 김수영의 모습이 점차 선명해져 갈 때쯤, 이영준 교수의 연구실이 눈에 들어왔다.

“오리지널한 목소리를 살리려고 했어요.”

먼저 2003년에 개정 출간된 『전집』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 교수는 “오리지널한 목소리를 살리려고 했어요”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이어서 “제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김수영은 2년 동안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행의 모양까지도 굉장히 신경을 썼다고 해요. 근데 어떻게 편집을 할 수 있겠어요. 『달나라의 장난』에 실린 시들은 100% 그대로 『전집』에 실려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김수영에 대한 애정과 그를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 교수의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전집』은 2003년 개정판 출간 이후 발굴된 산문 22편, 일기 21편, 편지 1편, 시 4편, 미발표 시 3편, 미완성 초고 시 15편을 추가로 실었다. 김수영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한국전쟁과 포로수용소 시절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실린 점, 그리고 김수영의 사유의 최초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실린 점은 향후 김수영 연구에 새로운 지향점을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의 말미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던 김수영의 창작습관을 반영해 잘못 들어간 구두점을 모두 삭제하고 시의 행갈이를 새롭게 했다. “김수영은 일본어, 영어에도 능통했어요. 원고에 표기된 동그라미 형태의 마침표는 한국어의 마침표라기보다 시가 끝났다는 뜻의 일본식 표현이에요”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김수영은 그 당시의 출판·인쇄 문화의 특성도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는 세로쓰기였어요. 세로쓰기를 고려해서 시의 행갈이나 형태를 구성한 시들이 더러 있어요. ‘눈’과 관련된 시들이 그런데, 보다 오리지널한 김수영의 모습은 나중에 출간될 ‘김수영 영인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최근 김소월, 윤동주 등의 영인본 출간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김수영 영인본 출간은 그의 최초 모습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늘 최대치를 상정했던 시인, 김수영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전집』에서 김수영으로 넘어갔다. “김수영은 위대한 존재가 되길 바랐어요. 그러니 정치적 압제로부터의 자유만으로 그의 자유를 해석해서는 곤란해요. 그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자유’도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했어요. 김수영에게 자유의 적은 바깥에 있는 외세라든지, 독재정권이라든지, 자본이기도 했지만, 그가 생각한 진정한 자유의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끊임없는 자기갱생을 말한 거예요.” 그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참여로 대변되는 정치적 자유 이미지이다.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언론과 학계에서도 여전히 그 이미지를 중심으로 김수영은 다뤄지고 있다. 이 교수는 그 점을 아쉬워했다.

“김수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시인이에요. 신성한 것, 위대한 것, 초월적인 것, 이런 것들에 대한 탐구를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추구한 자유를 정치적인 자유로만 보아선 곤란하다는 거예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삶의 최대치로서의 자유, 바로 그걸 추구한 사람이니까. 이건 우리 386세대의 관점과 꿈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해요.” 그러면서 이 교수는 김수영과 관련된 일화 중에 ‘이만하면’이라는 일화를 들려줬다. 

“김수영 산문(「창작 자유의 조건」)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외국을 다녀온 시인들의 귀국 환영 파티에 김수영이 참석해요.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는 어떠냐고 그 시인들에게 물어봐요. 근데 한 시인이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라고 답한 거죠. 그걸 듣고 김수영이 분개하고 어쩔 줄 몰라 해요. 시를 쓰는 사람에게,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는 있을 수 없는데 그런 말을 했다고 말이죠. 그자는 시인이 아니라고까지 말해요.” 

이러한 결벽 때문이었을까. 김수영의 삶은 평온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상상력이, 자신의 이상이 오히려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괴롭히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매순간 자신을 최대의 기준으로 가늠해보는 것, 그걸 감행한다는 게, 그리고 버틴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김수영을 수십 년 동안 읽고 있는 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김수영을 안 하고 다른 시인을 했으면 지금보다는 편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하지만 김수영을 읽으면서 나를 점검하게 돼요. 나이가 들다 보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되는데, 김수영은 정신의 긴장을 끊임없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요.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거고…”

이영준 교수는 김수영을 평론한 글에서 "그에게 시는 일상에서 벗어난 고상한 예술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는 양심의 산물이었다"고 적은 바 있다. 자료 출처=김수영문학관 홈페이지

우리가 모르던 김수영의 유머와 초월성

익숙한 장소를 벗어난다는 것, 여행지에서 친구와 연인에게 보내는 엽서에는 ‘거기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국내의 많은 김수영 연구자들과 달리 이 교수는 미국에서 김수영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김수영을 읽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먼 타국에서 김수영을 읽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수영의 다른 면이 보인다거나. 이 교수의 음성이 전보다 높고 밝아졌다.

“이런 게 있었어요. 거기서는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하니까, 제가 김수영 시를 번역해야 했어요. 그런데 번역한 김수영 시를 미국 시인에게 보여줬더니, 이 시인이 너무나 웃기고, 너무나 재미있다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우리가 너무 엄격하고 진지하게, 무겁게만 김수영을 대하고 있었구나 라고 말이죠.”  

김수영에게 유머가 있다? 이 교수는 지금은 신화가 된 자신의 親友 시인 기형도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게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기형도. 제가 친구로서, 기형도는 살아 있을 때 농담투성이에다가 완전 웃긴 친구였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형도는 우울하고 무거운 시인으로만 알고 있어요. 우리 친구들에게는 너무 웃긴 놈인데 말이죠.” 시에서의 우울과 진중함, 그리고 일상에서의 위트와 농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어울림에 대해 이 교수는 “자기가 진정 추구하고 싶어 했던 가치를 추구하지 못할 때, 조금은 과장해서 그렇게 표현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대화의 화제는 다시 꿈과 이상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시가 곧 꿈과 이상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영의 작품에는 ‘흐린 날’을 묘사하는 말이 자주 등장해요. 「풀」에도 나오고 「장시」, 「적」에도 나오고. 그런데 김수영이 이 흐린 날, 쉬는 날에는 신성한 것을 생각한다고 말해요. 흐린 날에는 마누라의 잔소리가 쉰다든가(웃음), 흐린 시간, 쉬는 시간에는 인간 존재 전체를 생각한다든가, 연극은 없다고 말한다든가. 제가 반복해서 말한 것이지만, 우리는 김수영을 폭넓게 보지 못하고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읽어왔어요. 종교적인 측면, 특히 초월적인 측면에서 김수영을 새로 읽어야 해요.”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를 경험한 유일한 시인이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문총구국대와 같은 종군작가단에 소속돼 있었다. 김수영에 비해 그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보다 안정적인 곳에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김수영은 포로수용소에서 이를 직접 뽑았다고 했다. 고통을 고통으로 견뎌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곳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김수영은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살아 돌아왔다.

“「파밭가에서」라는 시를 보면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가장 비참한 것을 바닥으로 본다면 바닥으로부터 위대한 것, 초월적인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김수영은 새로워질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끊임없이 전력투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김수영이 있어 든든하죠”

혹자는 말한다. 시가 힘을 잃은 시대라고. 시의 시대였다고 일컬어지는 80년대의 목표, 자유와 민주주의가 일정 부분 달성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은 그때, 시의 목표이기도 했다. 이 교수가 이번에 펴낸 김수영 전집은 결정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수많은 기존 김수영 연구를 수정할 ‘정본’의 역할도 수행해야할 것이다. 김수영에 대한 작업은 이것으로 완결된 것일까? 이 교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이 결정판이긴 하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작품들이 있을 거예요. 계속 찾아볼 생각입니다”라고 답했다. 김수영은 여전히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완성은 후학들의 몫일 것이다.  

김수영문학관의 설계에까지 관여했던 이 교수가 펴낸 이번 전집, 감회가 새로울 그지만 인터뷰 말미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함께 문학을 연구하는 동료들과 창조활동을 하는 시인들에게 말이다.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 최상의 상태를 유보하지 말라는 거죠. 김수영 정신이 있다면 그런 거니까. 어렵게 살면 정신이 위축되기 쉬워요. 하지만 어렵게 살면서도 김수영은 조금도 위축되지도 기죽지도 않았어요. 이게 정말 대단한 거죠. 자긍심을 좀 가져도 돼요. 우리에겐 김수영이 있어요. 그가 있어 든든하죠”

시를 읽을 때마다 시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고 간혹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 교수를 만나고 돌아와 펼친 김수영의 「긍지의 날」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띄었다.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 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김수영은 한 번도 거기서 멈춰 있으라고 우리에게 말한 적이 없다. 그가 꿈꿨던 세상은 저만치서 여전히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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