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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문학비평의 쇄신 위해 필요한 질문, ‘자기’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페미니즘과 문학비평의 쇄신 위해 필요한 질문, ‘자기’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 박재익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 연구보조원
  • 승인 2018.03.12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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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참관기_ 연세대 국학연구원 「비평 현장의 쇄신을 위하여」

연세대 HK사업단(단장 김도형) 은 지난달 9일 「비평 현장의 쇄신을 위하여: 페미니즘과 한국문학문화를 논하다」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첫 세션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문학담론의 전개를 포괄적으로 다뤘다. 첫 발표를 맡은 소영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국어국문학)는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으로 대표되는 ‘비평 시대’로 규정하고, 이 시기에 “창작에 대한 비평의 우위”가 확립됨과 동시에 “비평이 ‘문학’ 비평이자 ‘한국문학’ 비평이라는 인식이 점차 강고하게 안착”되었다고 지적한다. 즉, ‘비평 시대’는 단지 ‘문학’과 ‘비평’의 위상에 관련한 문제뿐 아니라 사회/역사를 ‘문학’이 ‘재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소 교수는 비평을 통한 (역사적)의미의 생산이 「분례기」와 「객지」를 가로질러 어떠한 식으로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비평 담론장에서 「분례기」와 「객지」를 읽어낸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평’이 이들 텍스트에서 ‘재현’되는 것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는가, 그리고 비평에 의한 이러한 의미부여가 어떻게 이 시기 문학장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백낙청은 「분례기」에서 재현되는 ‘너절하고 불결한 삶’을 ‘도시’와의 대비 속에서 ‘건강한 것’으로 재규정하고 있으나, 여기서의 ‘건강성’ 내지 ‘외설성’은 분명 「분례기」 텍스트 자체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판단은 백낙청을 필두로 한 당대 비평담론의 ‘세계관’, 정확히는 ‘민중관’과 맞닿아 있다. 즉, 「분례기」에서 “적확하고 밀도 있는 언어로” 재현되는 똥례의 삶은 “미달태이거나 타락한 ‘시민’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민중’”의 삶이기도 한 것이다. 「분례기」의 ‘외설성’이 ‘민중’에 대한 특정한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소 교수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 교수가 제기하는 질문, “..비평에 의해 상정된 독자는 누구이며, 그 독자의 젠더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중요하다. 「분례기」의 ‘외설성’을 ‘건강성’으로 전치하는 독해에서는 젠더 문제가 누락되기 때문이다. 소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객지」가 70년대 후반 비평 담론에 의해 해석되는 과정에서 남-녀의 분할, ‘여성성’의 제거 및 은폐, 공적 공간에서의 ‘투쟁’과 사적 공간에서의 ‘삶’의 분할이 심화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객지」에 이르러 요구된 바, ‘노동운동’을 ‘리얼하게 재현’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고해지는 과정을 추적한 것이기도 하다. 

이어서 김미정 성균관대 강사(국어국문)는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이후 「꽃잎」으로 표기)에 대해 논의했다. 최윤의 「꽃잎」은 오랫동안 ‘여성’의 ‘수난사’로서 읽혀왔다. 이러한 해석적 틀 안에서 ‘소녀’는 ‘수동성-여성-피해자-광주’로 연결되는 의미망 안에 자리 잡게 되고, 나아가 “사회적 제 관계의 결들이 지워진 순수한 혹은 신비한 실체”로 간주되기 쉬웠다. 김 강사는 이를 다시 검토하기 위해, 소설을 구성하는 세 시점 중 남성 화자의 시점에 주목한다. 「꽃잎」에서 남자가 초점화자로 등장하는 1, 5, 8절의 대부분은 소녀의 ‘기괴함’을 묘사하는 데에 할애된다. 김 강사에 의하면, “소녀의 기괴함, 섬뜩함”, 그녀의 “무반응”, “알 수 없는 웃음과 몸짓, 그리고 침묵” 앞에서 남성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김 강사는 이 ‘공포’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간단히 말해 남성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로서 소녀는 단순히 ‘수동적 대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강사에 의하면, 여기서 소녀는 “수동적 피해자의 자리에 있기를 몸으로 거부하는 존재”로 해석될 수 있다. 

이어서 서영인 충남대 강사(국어국문학)는 종합지의 형태를 벗어나 처음부터 끝까지 ‘문학’에 관한 담론만을 담아낸 『문학동네』의 출현 및 성공은 계간지/작가/비평가 지식인 집단 중심의 ‘문단’을 성립시켰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대두된 ‘여성문학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여성문학이 결국 ‘여성작가의 문학’과 등치되고, 결국 여성문학이라는 ‘이론’은 전체 문학담론을 해석할 수 있는 틀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2부에서는 차미령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와 양윤의 고려대 초빙교수가 각각 박완서, 오정희의 소설 텍스트를 섬세하게 분석했다. 차 교수는 「시민증에서 패스포트까지: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권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차 교수의 논의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 한국 사회에서 ‘증명서’가 발급되고 효력을 발휘한 상황들을, 박완서의 소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시기 한국에서 ‘주권’은 일제, 미군정, 한국전쟁시기 미군과 국군, 소련군과 인민군 등을 통해 혼란스럽게 작동했으며, 따라서 인민의 ‘생존’을 보장하는 ‘증명서’는 주권이 비상사태에 인민들의 삶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흐르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권의 행사자가 매순간 바뀌는 상황에서 인민들의 일상적 삶은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민족과 이념을 주체로 상정한 거대서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장면들을 ‘여성 인민’과 ‘증명서’의 서사가 제시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따라서 박완서의 소설을 ‘증명서’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주권과 인민의 삶, 그리고 여성 문제를 함께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 교수는 오정희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장소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양 교수는 「옛 우물」과 「유년의 뜰」에 대한 정치한 독해를 바탕으로 오정희 소설에서 ‘여성성’과 ‘장소성’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양 교수의 논의가 여성을 장소로 비유하는 익숙한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여성-장소성’을 새로이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을 장소로 비유하는 독법에서 ‘옛 우물’은 자궁, 생산, 죽음, 유년, 유폐 등의 의미가 “가라앉는” 장소이지만, 양 교수의 독법에서 우물은 오히려 이러한 의미의 정착을 거부하는 장소로 다시 해석된다. 요컨대 여기서 양 교수가 오정희의 소설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은 ‘나’의 현재를 채우는 일상적 삶에 계속해서 침투하는 것,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성”으로서의 ‘여성성-옛 우물’이라는 장소다. 이 장소는 「옛 우물」에서는 ‘연당집’이라는 공간으로, 「유년의 뜰」에서는 ‘부네’라는 인물로 형상화된다. 이들을 보존하려는 행위는 곧 ‘연당집’과 ‘부네’라는 ‘비가시적인 것’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행위로 재독해되며, 따라서 오정희의 소설에서 이들을 보존하려는 행위가 곧 대상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연당집’과 ‘부네’는 의미화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으로, 통상의 언어가 아닌 어떤 것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양 교수는 이러한 ‘여성성’이야말로 “대립물의 토포스 위에 축조되지 않고, 이 이분법을 논파하고 넘어서고 새롭게 구축하는 자리”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지는 세션에서는 2000년대 이후의 문학 담론장을 조망했다. 강지희 대학원생(이화여대 국어국문학)는 2000년대 여성소설 비평담론을 ‘신성화’와 ‘세속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분석했다. 2000년대 문학장에서 주목받은 소설들을 묶어내는, 다소 추상적이고 희박한 ‘일관성’은 주로 ‘개별 주체의 강조’, ‘타자성’과 ‘윤리’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되었다. 개별적 주체가 발견하거나 수행해야 할 ‘타자’에 대한 ‘윤리’를 강조하는 이 흐름에서 역설적으로 ‘여성 자체’를 위한 자리는 마련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문제는, 2000년대 이후 대두된 ‘보편적 윤리’에 대한 요구 속에서 여성에 대한, 혹은 여성성에 대한 문학담론을 어떻게 정초할 것인가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배수아와 정이현의 소설에 대한 당대의 비평들은 흥미롭다. 배수아에 대한 당대 비평가들의 사려 깊은 독서는 역설적으로 배수아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을 ‘탈젠더적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강지희가 지적하듯 이 ‘탈젠더적 존재’라는 규정에는 기만적인 구석이 있다. ‘주체화’는 “주체가 떠맡은 여러 정체성의 표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의 화자에게서 ‘가난한’ ‘여성’ ‘동양인’,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표식들을 지워야만 발견될 ‘초월적’이고 ‘탈젠더적 주체’는 주체화의 조건을 망각함으로써 주체가 되는, 일종의 아포리아를 구성한다. 강지희는 이러한 담론을 배수아 텍스트에 대한 ‘신성화’로 규정한다. 

배수아의 텍스트 속 인물이 신성화되고, 배수아의 소설은 ‘성차를 넘어선 영역에서 읽혀야 하는 텍스트’로 의미화 된다면, 정이현의 소설에 대한 비평 담론은 ‘소비’, ‘욕망’, ‘신체’ 등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기획과의 연관성 안에서 소설을 분석했다. 강지희는 이를 통해 생성된 의미의 ‘새로움’이 90년대 내면성, 진정성 테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한편, 바로 그 이유로 정이현의 소설에서 ‘새로움’을 찾는 독법은 ‘신자유주의에 순응하는 주체’를 발견하고 이를 비판하는 길 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즉 정이현의 소설에서 비평 담론이 본 것은 ‘욕망’, ‘쾌락’, ‘감성’의 담지자로서의 ‘여성성’이었으며, 여기서도 여성문학의 ‘보편성’을 확보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2000년대에 이르러 문제가 된 것은, ‘성차’를 철저히 인식하면서 어떻게 ‘보편담론’의 생산으로 이를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다. 사실 이 문제는 김 강사, 양 교수 등의 앞선 발표에서도 반복되었던 바, ‘여성이라는 주체’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백지은 고려대 강사(국어국문학)의 발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흥미로웠다. ‘젠더 패러독스’라는 말로 요약되는 백 강사의 문제의식은 일단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페미니즘이 보편적 윤리, 타자성에 대한 논의, 범박한 휴머니즘의 ‘하위 단위’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한, ‘독립된 영역’을 구축하면서 어떻게 전체를 조망하는 ‘보편 담론’으로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백 강사은 김미현, 심진경, 강계숙 등의 2000년대 비평 텍스트들을 검토하며 2000년대 문학담론이 ‘여성성’을 사유하는 지평을 “부재를 증명하는 부재”,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자기 존재의 근거로 삼는” 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백 강사는 ‘부재를 증명하는 부재’라는 식의 언술은 사실 2000년대 문학 자체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기존의 의미망을 전복함으로써만 성립하는 텍스트로 ‘여성성’과 ‘문학’이 실천된다면 ‘젠더 패러독스’는 불가피하다. ‘젠더를 말하는 행위’가 곧 ‘젠더 정체성의 허위’를 폭로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젠더를 말하는 행위는 ‘말함으로써 대상을 지우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발표를 맡은 정은경 중앙대 부교수(문예창작)는 지금까지의 논의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더했다. 그는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과도하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노동을 문제 삼으며, ‘돌봄’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육아 등으로 대표될 ‘돌봄 노동’이, 맞벌이가 점차 보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필연적이다. 또한 이 문제는 계급 문제와 젠더 문제를 연계시켜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발표자들 각각이 자신이 찾은 나름의 ‘답’을 발표한다기보다는 각자가 안고 있는 고민과 질문을 공유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학술회의는 ‘세미나’처럼 진행되었다. 토론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여성’이라는 ‘타자’, 주체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어떤 것,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토론 중에도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자기를 구성하는 역사적, 사회적 제 조건들을 음미하면서, 자기를 부정함으로써만 이야기될 수 있는 이 ‘자기’는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발견되거나 실천될 수 있을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자기’는 자신의 ‘답’을 타자들에게 ‘가르치는’ 주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타자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자신의 고민과 질문을 공유하는 이 자리야말로 ‘페미니즘’과 ‘문학비평’의 ‘쇄신’을 위해 가장 필요했던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재익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 연구보조원
연세대에서 식민지기 현대소설로 박사과정 중에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이효석 소설에서의 ‘애욕’ 연구」가 있으며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에서 총무간사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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