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2:05 (금)
산업화가 쏘아올린 계몽의 작은 공-샘터의 문화사회학
산업화가 쏘아올린 계몽의 작은 공-샘터의 문화사회학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5.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신시대에 핀 서민의 산문정신…岐路에서 되물어

 

전통 있는 교양월간지 '샘터'가 6월호로 지령 4백호를 맞았다. 1970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서른 네살이다. 국내 최장수 월간지라고 한다. 몇몇 언론이 이 사실을 크고 작게 보도했다. 발행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과의 인터뷰, 최인호, 강은교, 법정 등 샘터를 거쳐간 인기작가들과의 인연, 대를 이어서 사장직을 물려받은 언론인 출신 김성구 씨, 터줏대감 동화작가 故 정채봉 씨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샘터 직원으로 취직한 동화작가 정리태 씨 등 샘터의 특이한 에피소드들도 세상에 전해졌다.

품격 높은 수필과 생활 속의 이야기로 교양지 시대를 연 샘터가 잡지사적이고 문화사적인 맥락보다는,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고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아마 이 잡지의 정체성이 우리사회의 우량 가치인 가족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샘터는 온 가족이 돌려보며 행복을 숨은그림찾기 하던 국민잡지였다. 연말에 기관이나 회사에서 보내주는 각종 위문품이나 선물세트 속에는 이 잡지가 과자, 사탕과 함께 감초처럼 꽂혀있었고, 고향으로 가는 버스터미널 가판대에는 외설잡지들 사이에서 어머니나 형제사촌의 얼굴을 하고 환하게 피어 있었다.

그런 질긴 인연 탓인지 우리 사회에 샘터가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는 매우 큰 것 같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 게 '좋은생각'이나 '낮은울타리' 같은 류의 쌍방향성 대중지의 大母로 샘터를 바라보는 것이다. 샘터가 글쓰기 면허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글을 활자화해준 최초의 잡지로서 대중필자의 시대를 연 건 분명하다. 그래서 샘터에 글이 한번 실리면 무한한 자기확장을 느끼고, 공동체 소속감도 느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샘터의 수많은 역할들을 너무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요즘처럼 센티멘털리즘의 상품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시류 속에서 생겨난 상업지들과 샘터를 동일선상에 놓는다면 샘터의 다른 역사적 의미가 묻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샘터를 내는 뜻입니다. 샘터는 차내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공장에서도, 그리고 일선의 참호 속에서도 읽혀질 것입니다."

창간호에 실린 발간사의 일부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차내', '사무실', '공장'이라는 단어들이다. 당시는 농촌이 도시로 빨려 들어갔던 시기다. 앞의 단어들이 의미하는 건 바로 그 도시적, 시민적 삶이었다. 샘터는 시민사회로 급속도로 편입된 블루 칼라들이 성공적으로 도시민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한 각종 정보와 에티켓을 가르쳐주던 교양의 교과서였다. 오늘날의 '교양'이 의미하는 바와는 다르게 매우 절실한 차원에서의 앎에 대한 욕구였다.

산업화가 쏘아올린 '계몽'의 작은 공

그런 의미에서 샘터는 산업사회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개발시대에 무참하게 짓밟힌 힘없는 개인들의 다치고 상한 마음을 치유해주고, 성장시대로 접어들기 위한 사회적 교양을 제공하고 육성한다는 다분히 계몽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샘터의 계몽은 낮은 데서 올라오는 계몽이었다. 당시 잡지 시장은 사상지나 각종 청소년지, 여성지 등 계몽성과 오락성으로 양분돼 있었다. 사상지는 대중에게 너무 멀었고 오락지는 또 너무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학원' 같은 청소년지가 교양지로 많이 읽혔다. 평범한 성인을 향한 샘터의 쌍방향 편집정신은 이를 간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맞아떨어짐 덕분에 광고도 없는 사륙판 사이즈의 미니잡지는 군대, 관공서, 가판대를 빠르게 점령하며 1978년에는 50만부 발행이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샘터 이전에도 '동서문화', '새마을', '자유교양' 같은 잡지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지속되지 못했던 이유는 대중문화 정보, 명사들이 권하는 인간상, 역경 극복기 등 하향식의 교양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샘터에 실리는 글의 장르가 거의 대부분 '수필'이라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얼마 전 김우창 고려대 교수(영문학)는 경향신문에 실은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철학)의 수필집 '초대'(샘터 刊)에 대한 서평에서 수필론을 펼친 바 있는데 여기서 샘터가 지향한 수필정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수필의 특징은 감정을 피하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절제에 있다. 그러한 절제는 필자의 철학자로서의 기율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필자의 품성에 관계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윤리적 생존에 대한 관심, 중용과 형평을 지키는 온화한 옛 정신이 김태길 교수와 같은 분의 수필에 가까스로 남아 있는 것은 자못 섭섭한 일이다."

수필과 동화는 샘터를 말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수필은 동아시아의 글쓰기 전통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그것은 근대 이후 항상 소설이나 시의 아랫자리에 놓이는 장르였다. 샘터는 이런 수필을 경쟁력 있는 글쓰기 장르로 굳히는 데 일조를 한 잡지다. 법정 스님, 시인 이해인 수녀, 김태길 교수, 김동길 교수, 시인 피천득 등 우리 사회의 유수한 수필가들이 샘터에서 자신의 진수를 펼쳐보였던 것이다. 한때 샘터의 글은 우리말을 가장 정확하고 풍부하게 구사한 문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해, 외국인의 한국어 학습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것은 소설가 선우휘, 손봉호 서울대 교수 등 필자를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원고는 반려할 정도로 글을 엄선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든, 영문학자든 샘터에서는 '삶의 철학'을 얘기해야 했다.

샘터에 연재한 동화작가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는 동화라는 것이 아이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읽을거리라는 것을 알려줘, 성인동화의 새 장을 열었다. 요즘 안도현, 곽재구 등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성인동화 쓰기의 원류도 샘터에서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매호 평균 50명씩 매년 2만명에 가까운 필자들이 거쳐가고,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글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샘터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할 것이 생겨났다. 1978년 샘터의 전성기 때 편집장을 지낸 박옥걸 아주대 교수(역사학)는 편집장 시절 원고를 받을 때 "딱딱한 원고와 미사여구는 철저히 배제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잔잔한 형태의 글쓰기를 의미한다. 사상을 장중하게 녹여내는 무거운 에세이, 주의주장을 담은 글과는 별개의 흐름으로 이런 글쓰기 스타일을 만들고 그것을 지속시켜온 것이야 말로 샘터의 가장 큰 현재성이라고 할 만하다.

에피고넨의 시대, 또 다른 모색을

그러나 삶에 대한 샘터의 강조는 당대 현안과 연결된 전투적 리얼리즘과는 다르게 행복이란 코드로 가공된 것이었다. 그것은 장기지속적인 인생을 소재로 삼는 리얼리즘이었다. 이와 관련해 샘터가 감동과 위로는 돼주더라도 샘터가 보여주는 세계는 지나치게 대동소이하고 보수적이라는 비판도 그 동안 많이 제기돼왔다. 출판평론가 김갑수 씨는 이를 두고 "현실의 정글원리를 비판의식으로 통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을 결국은 한국식 출세지상주의, 제 자식만 위하는 뻔뻔스런 가정교육 풍토, 신토불이류의 몽매 국수주의, 총체적 무질서, 서열의식, 연고주의, 배타적 지역주의 같은 것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샘터 같은 잡지의 광범위한 독자가 연속극에 나오는 결혼담, 고부갈등, 황당한 성공담에 관심 갖는 시청자 층과 일치한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옥걸 교수는 "당시는 인간에 대한 격려가 필요한 시대였다. 그걸 따로 해줄 잡지의 필요성이 절실한 시대였다"고 말한다.

1990년대 들어 잡지의 홍수 시대에 샘터는 살아남기 위해 변신했다. 필자들도 젊게 바꾸고, 콩트도 늘리고, 기행문, 색감 등에서 20대 여성의 취향에 맞게 바꾸었다. 사실 문광부에서 우수잡지로 선정한 제일제당의 사외보 '생활속의 이야기'나 '작은이야기' 같은 잡지와 요즘 나오는 샘터는 큰 차이가 없다. 이들 잡지가 샘터를 모방해서 생겨났기 때문인데, 이렇게 대동소이한 잡지들이 많다보니 샘터의 사세는 예전만 못한 것 같다. IMF 때 급성장한 '좋은생각'이 이 분야에서 50만부로 뛰어올랐고, 샘터는 15만부 내외로 줄어든 것이다.

샘터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샘터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좋은생각'처럼 독자참여를 더욱 늘여서 쌍방향성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샘터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가족적 가치'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기가 아닐까.

1970년대의 샘터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지켜내는 역할을 했다. 지난 1974년부터 현재까지 연재하고 있는 최인호의 소설 '가족'은 그 구심점이었다. 그것은 개발독재라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최소주의의 틀에서 지켜낸 가족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가족이라는 것을 위협하는 존재는 산업화 현상이 아니다. 왜곡돼가고 해체돼가는 이 시대의 가족상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보듬어 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샘터의 진정한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