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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 대학 두 연구소
기자수첩-한 대학 두 연구소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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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덕성여대 홍보실에서 교수신문 편집국으로 보낸 보도자료를 보고 기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19일 문을 연 덕성여대 '차미리사 연구소'에 대한 기사가 본지 267호에 이미 게재된 바 있는데, 5월 30일에 차미리사 연구소가 또다시 문을 연다니.

확인해본 즉 지난달 5월 30일 개소된 '차미리사 연구소'는 4월 10일에 개소된 '차미리사 연구소'와 전혀 다른 새로운 '차미리사 연구소'였다.

한 대학에 '덕성여대를 설립한 독립유공자 차미리사 선생의 민족정신을 계승하겠다'라는 똑같은 설립 취지를 담은 연구소가 왜 두 개나 있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실마리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풀린다. 2001년 10월 네 명의 관선이사가 파견되고 그 해 말 당시 교수협의회장이던 신상전 교수가 총장 직무대리로 이사회의 승인을 받으면서 덕성여대 분규는 한 풀 꺾이고 '대학 민주화'의 한 모델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2001년 당시 신상전 교수협의회장이 설파했던 '구 재단 인사 불씨론'은 현재 어디론가 증발돼 사라지고 없다. 당시 신 교수는 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원택 이사 등 3명이 남아 있는 한 불씨가 남는다. 박씨 일가가 퇴진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학생회, 교수협의회 등 학내 민주화 단체는 구법인 잔류 이사 퇴진을 요구하면서도 신 총장의 취임을 반기며 총장실 점거 농성 및 재단 앞 천막 농성을 일제히 해제했다. 그러나 구 재단 이사들은 현재 건재한 상태다.

현재 이 대학에 남은 '공감대'라곤 차미리사 선생에 대한 애정 뿐이다. 학계에 최초로 차미리사 선생 관련 연구 논문을 발표한 한상권 교수와, "덕성여대 분규 과정에서 설립자를 복원한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꼽았던 신상전 총장은 물론 학생, 민주동문회원 모두 차미리사 선생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박원택 이사를 인정하자는 입장을 가진 이해동 덕성학원 이사장이 축사를 한 '차미리사 연구소(소장 이옥 아동가족학과 교수)'와 덕성여대 학생·교수·민주동문회원들이 꽹과리를 치며 웃고 울던 또다른 '차미리사 연구소(소장 한상권 사학과 교수)'는 폭풍 전 고요 같은 덕성여대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두 모습이다. 마침 지난 1일은 차미리사 선생의 48주기 기일이었다.
설유정 기자 syj@kyos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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