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들이 노동권을 요구하게 된 까닭은?
대학원생들이 노동권을 요구하게 된 까닭은?
  • 최성희
  • 승인 2018.02.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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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행정부터 개인 심부름까지

지방국립대에서 연구조교를 맡고 있는 A씨(자연계열 석사2차). 새 학기 시작 전, 그의 수첩에는 행정업무 외에도 일정이 빼곡하다. 손님접대부터 교외 심부름, 교수연구실 청소당번, 실습실에서 식사조리 후 배달, 출장 시 숙소와 식당 예약, 공항 픽업, 교수님 생일파티 공지 및 준비, 파트타임 대학원생들의 실험 대리까지.

 

이러한 상황은 전공과 대학원 유형을 불문하고 비일비재하다. 충청도 소재 지방사립대 특수대학원생 B씨(사회계열 석사3차)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몇몇 의식 있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선생님의 세대가 올라갈수록, 국내 대학원 출신일수록 업무 외의 일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신다”고 이야기했다. 지난해 여름 수도권 국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C씨(공학계열 석사졸업)는 “‘학생’이라는 애매한 신분이기에, 무엇보다 졸업과 취업문제가 걸려있기에 이의제기를 할 생각조차 못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실험실 종일대기, 명목상의 장학금 수령 후 반환 등의 실험실 내부 ‘전통’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노조) 출범 소식에 “오랜 기간 대물림돼온 문제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지난 24일 출범한 대학원노조 관계자는 “대학원생과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대학원생들은 대학사회의 약자로 최저임금 규정, 근로계약서 등 기본적인 안전망도 없이, 연구와 행정업무 외 가외노동까지 도맡고 있다. 최근 대학구조조정과 예산부족, 또는 책임회피로 몇몇 대학에서 대학원생 조교를 ‘부당해고’하는 조짐도 있다”면서 “대학원노조는 ‘학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존중받지 못했던 대학원생들의 처우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고자 움직임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몇몇 교수들은 이들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었다. 지방의 한 광역시 소재 국립대 A교수(인문계)는 “대학원노조의 출범으로 교육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우리 교수들부터 자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국내 대부분의 대학들이 대책 없이 우후죽순 대학원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연구와 행정, 기타업무가 대학원생들에게 주어지는 것도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서울 사립대 B교수(이공계)의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연구에 대한 참여와 교육 행정에 대한 대가가 명시되지 않은 채, 교수 개인의 시혜 차원에서 연구비가 집행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며 의견을 보탰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원노조의 등장을 ‘기대반걱정반’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대학원생활을 했던 90년대와 대비해볼 때, 대학원생들의 처우문제가 공론화되는 현 상황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피교육자인 이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요구하게 만든 대학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통감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누구나 알고 있었던 대학원생들의 문제. 최소한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이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서 규정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일부 교수들의 우려는 현재 대학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대변해준다. 교수와 대학원생, 학교당국 그리고 교육부까지. 대학사회 당사자들 모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성희 기자 is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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