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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사물에 활력 불어넣던 영혼 추방시킨 기계론
자연 속 사물에 활력 불어넣던 영혼 추방시킨 기계론
  • 교수신문
  • 승인 2018.01.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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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제2강 김상환 서울대 교수의 「근대적 세계관의 탄생: 데카르트적 전회」

네이버 ‘열린연단’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진행됐다.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강연으로 2018년 총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1월에 열린 3개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  사진 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 사진 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데카르트는 수리자연학을 과격화하는 보편수리학에 만족하지 않았다. 보편수리학을 넘어 그것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탐구하는 데까지 나아가면서 수리자연학과 기독교를 화해시키고자 했다. 데카르트의 보편수리학은 물질 개념의 혁신을 가져왔고, 이것이 근대적 자연관이 형성되는 출발점이다. 반면 그의 형이상학은 사유 개념의 혁신으로 이어져 근대적 영혼관이 태어나는 모태가 됐다.

고대인에게 영혼은 인간만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영혼은 인간 내면에 있기 전에 먼저 외부 자연에 내재했다. 이때 자연이란 살아있는 자연이자 스스로 움직이는 자연이다. 영혼은 그런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역동성을 집약하는 용어였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은 자연(physis) 개념을 구성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자연을 숨 쉬게 만드는 생명의 원리이자 자발적 운동의 원리가 영혼이었던 것이다.

이런 고대인의 영혼관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영혼-신체 관계는 형상-질료 도식에 따라 정의된다. 자연적 사물이 형상과 질료의 복합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물(생명체)은 영혼과 신체의 복합체라는 것이며, 그래서 영혼-신체 관계는 형상-질료 관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혼이 신체의 활력적 힘의 원천이자 그것에 특정한 구조를 부여하고 조직하는 원리라는 것과 같다. 즉 영혼은 생명체의 작동 원리이자 기능에 해당하는 어떤 것이다. 그런데 생명체로는 크게 보아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이 세 가지 유형은 신체적 질료가 조직화되는 세 가지 연속적이되 위계적인 수준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런 조직화의 세 수준에 각각 서로 다른 영혼이 할당된다. 식물영혼, 동물영혼, 지성이 그것이다.

식물영혼은 식물이 지닌 영양 섭취와 성장의 능력을, 동물영혼은 동물이 지닌 감각 지각과 장소 이동 능력을 가리킨다. 신체적 질료는 연속적이고 위계적으로 조직되므로 동물은 식물영혼과 동물영혼을 동시에 소유한다. 식물처럼 신진대사를 하면서 식물과는 달리 장소를 이동하고 주변 사물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생물계의 정점에 있는 인간은 하위에 있는 영혼들 이외에도 추상적인 사고 능력인 정신(지성)을 소유한다. 신진대사, 장소 이동, 감각 지각 능력을 지니면서 초감성적인 대상을 생각하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영혼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복수적이다. 그리고 영혼은 인간 내면 못지않게 외부 자연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 근대인에게 영혼은 한 가지로 축소될 뿐만 아니라 오로지 인간 내면에만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된다.

이런 영혼의 단일화 및 내면화를 유도한 일차적 요인은 기계론적 자연관이다. 기계론에 따르면 인간 신체를 포함한 자연 내 모든 사물은 기계적 법칙에 따라 조직되고 기능한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자마자 생명체의 온갖 기능을 설명하던 식물영혼이나 동물영혼은 불필요한 범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천상계는 불멸의 세계요, 거기서 일어나는 운동은 완벽한 원환을 이룬다. 반면 지상계는 소멸의 세계요 거기서 일어나는 운동은 네 가지 원인(형상인,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에 따른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수리자연학에서 천상계의 물체는 지상계의 물체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 운동 법칙은 작용인에 의거한 기계적 법칙임에 불과하다.

데카르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식물과 동물, 나아가 인간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운동까지 철저히 기계적 법칙을 따른다고 간주했다. 천상계와 지상계의 경계는 물론 물체와 생체,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에 고유한 특성이란 것을 찾는 것은 이제 무의미한 일이 된다. 가령 살아있는 것만이 죽을 수 있는 것이라면, 데카르트는 죽은 신체를 고장 난 시계에 비교했다. 하나의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태엽이 망가져 시계가 멈추는 것처럼 신체 기관에 손상이 와서 기계적 작동을 멈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동물에서 볼 수 있다고 간주되는 심리적 불안이나 동요도 마찬가지다. 가령 늑대와 마주친 양이 기겁을 하고 도망치는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심리적 과정이나 영혼을 전제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늑대의 눈에서 발산되는 미세 물질이 양의 신경 체계에 일으킨 혼란이고, 그런 혼란이 발생하는 과정은 모두 기계적 법칙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기계를 모델로 자연을 설명코자 하는 기획에서 가장 먼저 폐기돼야 했던 것은 목적론적 관점이다. 우리는 이것을 갈릴레오에게서 볼 수 있다. 기계론적 자연관이 일반화되면서는 자연에 그토록 번성하던 영혼들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이것을 데카르트에게서 볼 수 있다. 기계론은 자연에 내재하면서 사물에 활력을 불어넣던 영혼을 모조리 추방했다. 그 결과는 자연의 사막화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자연은 이제 의미, 생명, 자발성, 내면성을 모두 잃어버린 타성적인 물질의 영역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것을 ‘순수물질의 탄생’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기계론은 물질 개념의 순화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기계론은 또한 정신적인 것을 오로지 인간 내면으로 수렴시키면서 영혼 개념의 순화를 가져왔다. 근대적 세계관은 기계론이 유도한 이런 이중적 순화 과정에 기원을 둔다. 즉 기계론에 의해 순화된 물질 개념이 근대적 물리 개념의 초석이라면, 기계론에 의해 순화된 영혼 개념은 근대적 심리 개념의 기초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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