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인간 목적의 산물인가? 우연과 필연이 뒤엉킨 부산물인가?
그것은 인간 목적의 산물인가? 우연과 필연이 뒤엉킨 부산물인가?
  • 오한나 국민대 강사
  • 승인 2018.01.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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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문명은 부산물이다』 정예푸 지음 | 오한나 옮김 | 흐름출판 | 528쪽 | 22,000원

이 책의 저자인 정예푸(鄭也夫, 1950~ ) 교수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중국 지식인들의 문제를 연구한 사회학자다. 그는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농장에서 일하며 8년간 농부로 지내기도 했는데 작가 프로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보수적인 인문학계에서도 독특한 시각을 가진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항상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와 중국의 현실적 문제들을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냉철하게 관찰해 분석해왔고, 외부의 압박이나 시선에 관계없이 할 말은 하는 학자로 인식돼 왔다.

정예푸 교수는 베이징사범대에 입학해 사회과학원 대학원을 거쳐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 덴버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했다. 중국사회과학원, 런민대학(人民大學)을 거쳐 현재 베이징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代价論』, 『信任論』, 『吾國?育病理』,『走出囚徒困境』 등을 저술한 바 있다. 뒤이어 2015년 출판된 『문명은 부산물이다(文明是副産品)』는 이미 관련 학계에서는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등 학문적으로 공인된 바 있고, 독자들이 추천하는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자신의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기

기존의 이론이나 사상과는 다른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관련 토론회와 학회 또한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다음은 『문명은 부산물이다(文明是副産品)』 가 출간된 후 열린 여러 차례의 대담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인데 정예푸 교수가 학문을 대하는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 『문명은 부산물이다』를 왜 집필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농업과 조판인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찍이 다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학문적으로 성숙하고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이미 알려진 해석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지적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해석과 원인 분석’을 좋아합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갈 때도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면 저는 반드시 병이 걸린 이유와 약의 원리를 묻고 나서야 속이 시원해지고 맘이 편해집니다. ‘해석과 원인 분석’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게 되면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되죠. 저는 제가 쓴 글을 관련 영역의 다른 전문가들에게 보여줄 것이고, 그들이 문제를 제기해주길 기다립니다. 저는 의심 가득한 회의주의자로 닻을 내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사람이고. 영원히 정답이란 없는 사람입니다.”           

책의 매 장마다 첨부된 관련 논문과 저서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평가 또한 이런 정예푸 교수만의 대담함과 지적 욕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며 이 책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혹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정예푸 교수도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인문서 『총·균·쇠: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제러드 다이아몬드 지음, 1997. 국내에서는 문학사상사에서 2005년 번역본을 냈다. 이후 2013년, 2017년 개정증보판을 냈다)의 아류작 정도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지금까지 ‘목적론’과 서양 학자들의 관점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학습해왔던 한국 독자들에게는 해묵은 시각을 변화시킬 만한 신선하고 혁신적인 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책 제목인 ‘문명은 부산물이다’는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명확한 결론을 보여주는 것 같아 독자로 하여금 ‘정말 그럴까?’ 라는 도전적 의문을 동시에 가지게 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하나의 결론을 증명하기 위한 내용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고대그리스, 중세유럽과 아시아,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축적된 수많은 사료와 저명한 학자들의 문헌을 기반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묵직한 고찰을 통해 인류 문명의 5대 이정표라 대표되는 족외혼제, 농업, 문자, 제지술, 인쇄술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다각도로 보여주며 독자들을 이 책의 핵심 사상으로 이끌어 간다.

족외혼제 연구와 인문학

오늘날 인류의 능력은 그 어느 시기보다도 막강하다. 하지만 날로 커지는 인류의 능력이 만든 자신감은 이 세계의 많은 문명들이 목적적 행위의 산물이라고 오해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이런 터무니없고 비실제적인 생각을 뒤엎고, 문명은 곧 부산물이라는 이론으로 인류 문명사의 목적론적 해석을 대체한다. 문명은 계획된 것이 아니며 인류의 목적적 행위로 결정된 것도 아니다. 즉 본래의 목적이나 의도와는 달랐지만 그 결과인 ‘부산물’이 본의 아니게 문명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인류의 의지는 우리가 생존하는 세계,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문명, 우리 자신 등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며 새로운 시도와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이 목적들이 앞으로 어떤 ‘부산물’을 만들어 낼 것이며 문명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서 의미가 클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음성학 실험과 분석 작업만 하던 필자에게 이 책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인류학에서 생물학, 고고학과 역사학을 넘나드는 지식의 방대함에 놀라고 아시아인의 시각 또 중국인의 시각으로 문명의 탄생을 재해석하는 작가의 자신감과 그 논조에 놀라고 필자의 무지함에 다시 한 번 놀라는 경험을 반복하며 번역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작가가 던진 문제에 함께 공감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저자가 논증을 위해 제시한 다양한 이론과 학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만의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책 속에서 언급됐던 또 다른 역사서나 인류학 서적을 손에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족한 번역이지만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입된 서양의 시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문명의 탄생과 발전에 대한 다양한 논점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더 나아가 ‘문명은 부산물’이라는 명제를 둘러싼 논쟁을 포함 학자들 간의 다양하고 심도 있는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오한나 국민대 강사·중국어학
중국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문과 언어학 실험실에서 콩장핑(孔江平) 교수를 지도교수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중국어 교육 및 음성학과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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