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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에 매료된 이방인…“한국은 그 문화에 자부심을 가져도 돼요”
‘한강 다리’에 매료된 이방인…“한국은 그 문화에 자부심을 가져도 돼요”
  • 윤상민
  • 승인 2017.12.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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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 한국여행기_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한국지사장

지구촌, 글로벌 시대, 해외취업, 교환학생, 유학생, 국제결혼, 이민…. 21세기 한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들이다. 21세기에 접어든지 두 20여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며 이 단어들에서는 더 이상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개인의 의식이 변화하는 동안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도 많이 변화됐다. 외국인이 출현하는 TV 프로그램들이 「미녀들의 수다」(KBS), 「외국인 장기자랑」(KBS)과 같은 평면적인 한국에 사는 외국인 소개에서 「비정상회담」(JTBC),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MBC)와 같은 입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화한 것에서 체감할 수 있다.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은 외부인들에게 덜 알려진 존재였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이 한국에 대해 ‘서구에 늦게 온 나라’라고 말하기도 했듯이.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은 아직 섬 같은 나라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은 증가추세에 있다. 관광객 수치만 단순 증가한 것이 아니라 한류 바람을 타고 캐나다, 프랑스, 미국에는 한국어 관련 학과가 생겨나고 있고, 교환학생을 넘어 한국에 정착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외국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구인의 한국여행기’ 코너에서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의 특이한 시선을 통해 한국인이 정작 잊고 지낸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을 되돌아본다(이 기사는 <대나무>33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한국지사장. 사진 제공=인티그라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한국지사장. 사진 제공=인티그라

첫 번째 지구여행자는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한국지사장이다. 지난 2015년 11월 한국지사장으로 임명된 이후 만 2년이 넘게 한국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지만 매일이 도전적인 날이라고 말하는 마누엘 알바레즈 한국지사장. 사진작가, 단편영화감독이기도 한 그는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 갔다가 한국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결국 전주명예시민증까지 받은 마누엘 알바레즈 한국지사장. 햇살이 좋은 10월의 어느 날, 광화문에 위치한 영국항공 사무실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매우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 살게 된 게 벌써 2년째네요. 하루 일과를 간단히 이야기해보죠. 경복궁 근처에 살고 있는데 사무실까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요. 도시를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매우 소중한 시간입니다. 근처 베이커리에 들러 빵을 사서 하루를 시작하죠. 이후 사무실에서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바쁘게 일을 합니다. 퇴근 후부터는 온전히 내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죠. 이 시간에 한국문화를 느낄 수 있는 서울의 여러 장소들, 여기저기를 다녀요. 아참, 비빔밥을 너무 좋아해서 거의 매일 먹지만 꼬막비빔밥, 회덮밥도 정기적으로 먹고 있어요.”

△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라니! 같은 한국에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부럽네요. 주말은 보통 뭐 하면서 보내세요?
“출퇴근에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않아요. 항상 걷죠. 유러피안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매일 주변, 이웃 동네를 걸어다니니까 차가 필요 없어요. 도시를 경험하는 겁니다. 영화도 많이 봐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영어 자막이 있거나 오리지널 영화를 주로 보지만 한국영화도 영화제에 가서나 대학에 가서 영어 자막 있는 작품들 위주로 봐요.  이게 일이랑 잘 융합이 됐죠. 전주영화제의 정취에 흠뻑 빠져서 영국항공과 전주국제영화제가 MOU를 맺게 됐거든요. 영국항공 전 국제선 라인에서 한 달 간 한국단편들을 틀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또 주말은 제게 한국을 발견하는 시간이에요. 자전거 여행을 많이 다닙니다. 한번은 대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어요. 수원에서 하루 자고 아산, 천안, 거쳐서 대전까지 갔죠. KTX도 애용하는 편이에요. 부산은 몇 번이나 다녀왔고요, 목포, 포항, 울산, 동해 등등 매주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려고 노력해요. 작은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매우 좋은 기분이거든요. 또 제가 사진을 좋아해서 여행한 곳은 사진으로 남기고 전시회도 열곤 합니다.”

△ 전주국제영화제에 푹 빠지셨다가 전주 명예시민증도 받으셨죠? 앞으로 전주와 어떤 교류가 더 확장될 계획인가요?
“너무 좋은 경험이어요. 전주 다녀온 이후로 매일 비빔밥을 먹을 정도라니까요. 영국항공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면 비빔밥을 먹으면서 전주영화제에 출품됐던 한국단편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어요. 전주시와의 이 아름다운 협업체제가 첫발을 잘 내딛었으니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더 키워갈지 고민해봐야죠.”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한국지사장이 찍은 한강 다리 사진. 사진 제공 = 마누엘 알바레즈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한국지사장이 찍은 한강 다리 사진. 사진 제공 = 마누엘 알바레즈

△ 영화감독, 사진작가로도 활동하신다고 들었는데, 한국의 어떤 곳을 사진으로 남기셨는지 궁금하네요.
“여러 매거진에 사진이 실렸어요. 한국에 와서는 음, 27개의 한강 다리 아래를 다니며 다 사진으로 남겼어요. 다리가 거대한 구조물인데 밑에서 사진을 찍으니 마치 성당처럼 성스러운 느낌을 주기까지 하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사진이라기보다는 사진예술 쪽에 가깝게 작업하는 편이고요. 뉴타운 건설현장도 자주 찾았어요. 예술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요. 서울의 여러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느낀 건 서울은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개성이 정말 많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발견하려면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해요. 서울은 지금도 자라고 있어요. 너무 빨라요. 잘 안 보면 똑같이 보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봐야 해요. 서울에 발견할 곳이 너무 많은데, 이번 주말에는 또 어디를 발견할지 궁금하네요.”

△ 사진가로 한국에서 가장 관심 가는 도시가 서울이라는 게 한국인으로서는 좀 아이러니하네요.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서울의 어떤 면이 당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요.
“그럼 한강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역사적으로 한강은 엔지니어들이 경제적으로 빨리 성장하기 위해 건설한 거죠. 지금은 매우 재미있는 게 사람들이 다시 도시를 만들고 싶어 해요. 사람들이 좀 더 강 가까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하죠.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한강변 40km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즐겨요. 이런 게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다이나믹한 경험인 것 같아요. 경제개발의 산물 옆에서 사람들이 다시 가족·자연·문화·스포츠 친화적인 한강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위로 차가 다니는데 그 아래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다는 것, 강을 깨끗이 치우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걸 만든 경우는 세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요.

△ 당신은 스페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죠. 졸업 후 항공계로 발을 들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신 영향이 커요. 여러분도 열심히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해요. 언어는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가장 쉽고 저렴한 수단이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미국은 공부하러 가야하는 곳이었거든요. 동생과 함께 L.A.로 갔어요. 테니스 치기 아주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4년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스톤대에서 미술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서부를 벗어나 동부로 간 거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마닐라로 갔다가 프랑스 파리를 가서 불어를 배웠죠. 이후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중국문화센터에서 일을 잠깐 했고요. 이후 뉴욕으로 갔어요. 그때 너무 좋았어요. 여행이라는 게. 그래서 생각했죠. 젊은데 왜? 여행하는 회사에서 일을 해보자고요. 이베리아항공에 취업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레바논의 베이루트, 알제리아를 갔고, 모로코 카사블랑카, 이집트까지 4년을 일했어요. 아랍 혁명도 겪었네요. 그러다가 영국항공이랑 이베리아항공이 손을 잡으면서 런던으로 옮겨서 4년을 더 일했어요.”

청라국제도시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지사장. 사진 제공=마누엘 알바레즈
청라국제도시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마누엘 알바레즈 영국항공 지사장. 사진 제공=마누엘 알바레즈

△ 이베리아항공에서 레바논, 알제리아 지사장도 했고, 중동지역 총괄담당도 하셨다고요. 태어난 곳은 유럽, 공부는 미국, 일은 유럽과 중동, 이제 극동아시아까지 오셨는데요, 전 지구를 무대로 사는 열정적인 당신의 에너지의 원천이 뭔지 궁금합니다.
“모든 장소가 달라요. 오래 있으면 지루해져요. 저한테 어떤 장소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는 것, 혹은 편안해지기 시작한다는 건 뭔가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신호에요. 3~4년이 최고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모든 경험이 배우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아시아로 가는 건 최고의 경험이었어요. 한국으로 가는 건 모험이었거든요.”

△ 영국항공에서는 한국행을 자원하신건가요, 우연한 계기로 오신 건가요?
“당연히 자원한 거죠. 그리고 성공했고요! 처음 한국 왔을 때, 무조건 로컬 무조건 로컬 푸드 먹고, 한국 안에만 여행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어요. 저는 UPP에요. Ultra Positive Person이란 이야기죠. 하하. 저에게 즐거운 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문화를 경험하는 거예요.”

△ 한국에 온 첫 인상이 궁금하네요. 그리고 만 2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에 대해 생각이 바뀌셨나요??
“미국에 살 때부터 한국 문화를 공부했어요. L.A.나 뉴욕에 있을 때 매우 큰 한인단체가 있었거든요. 한국에 직접 간 것은 아니지만 항상 한국인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죠. 한국 음식도 접하게 됐고요. 무엇보다도 한국이 정말 매력적이었던 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는 점이었어요. 마치 다리(Bridge) 국가라고 할까요?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매우 강력한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죠. 한국 사람들은 그 정체성에 대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돼요. 한국은 자본주의의 극단에 가 있는 나라인 한편, 엄청난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라에요. 매우 훌륭한 영화 감독, 좋은 예술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죠. 저도 단편영화를 찍지만 외국인들에게 한국 영화라고 하면 「괴물」이나 「올드보이」만 떠오르거든요. 그런 면에서 전주에서 만난 단편영화들은 매우 놀라웠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단편들은 처음이었거든요. 게다가 젊은 감독들의 작품이라니! 이게 바로 한국이 가진 강점이에요.”

부산항 전경. 사진 제공=마누엘 알바레즈
부산항 전경. 사진 제공=마누엘 알바레즈

△ 많은 나라를 경험하셨죠. 한국만이 가지는 독특한 문화나 매력은 무어라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람들은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페인, 영국은 물론이고 새로운 곳에 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죠. 한국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려는 욕구가 굉장히 크다는 거예요. 그게 한국 사람에 대해 제가 느끼는 흥미로운 점이에요.”

△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을 두고 반도 국가인지, 대륙 국가인지 설전을 벌이죠. 하지만 현실로 놓고 보면 섬이나 마찬가지에요.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비행기뿐이거든요. 패키지를 비롯해 비슷한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여행방법을 추천해줄 수 있을까요?
“제 추천법은 이거예요. 어떤 여행지를 정했다면 그곳에 가기 전에 그곳에 대한 문화를 먼저 경험해 보고 가는 것이 더 흡족하고 깊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문학 작품 속 소설을 읽을 수도 있고, 그 지역에 나온 신문을 읽어볼 수도 있어요. 그 지역을 먼저 여행했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더 알 수 있고 음식을 통해 미리 알 수도 있어요. 문화를 통해 먼저 접하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거예요. 만약 시간이 부족하다면 비행기 안에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비행기 안에서 제공하는 영상을 통해 여행할 나라나 도시의 예술, 학술, 역사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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