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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 업그레이드 하려는 인간, 함정에 빠지다
신으로 업그레이드 하려는 인간, 함정에 빠지다
  • 김재호
  • 승인 2017.12.04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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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98. 『호모 데우스』

인류는 정말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했을까. 그리고 불멸, 행복, 신성에 도달할 만큼 충분한 능력을 확보한 것일까. 과학혁명과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적인 계시와 의미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경험을 보장해주는 것일까. 인류는 정말 신이 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호모 데우스』(유발 하라리, 김명주, 2017.05.19)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묘미는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가능성의 균형감을 절대 잃지 않으려는 저자 유발 하라리의 긴장감에 있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우선 인류의 새로운 의제가 도래한 점을 간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제 굶어서 죽는 사람들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이들이 더 많다고 지적한다. 17세기만 하더라도 유럽의 국가들은 기아 때문에 국민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 혹은 5분이 1이 사망했다. 2010년에 기아 혹은 영양실조로 죽은 이들은 총 100만 명이었는데, 비만으로 죽은 자들은 300만 명이었다. 2014년만 하더라도 전 세계 인구의 21억 명이 과체중인데 반해, 영양실조를 겪는 이들은 8억5,0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역병만 하더라도 눈부신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전 세계 아동사망률을 낮추었다. 또한 전염병, 심지어 에이즈까지 통제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동안 여러 유기체와 싸우면서 진화해온 미생물들은 이제 생체공학의 나노로봇을 맞이해 상대해야 할 판이다.

한편, 전쟁은 이제 사라지는 추세다. 2010년에 전 세계에서 테러로 죽은 사람이 총 7,697명이었다. 아날로그 방식의 전쟁은 여전히 물질 기반의 경제가 운영되는 중동이나 중앙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난다. 심지어 북한마저도 이젠 악성 소프트웨어 코드를 통해 정전이나 시스템 파괴 등을 도모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사망 원인의 약 15퍼센트가 인간의 폭력이었던 반면, 20세기는 그 비율이 5퍼센트에 불과했고, 21세기 초에는 약 1퍼센트로 줄었다”고 밝혔다.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한 호모 사피엔스

그렇다고 기존의 위협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제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합성이라는 과학기술의 도약으로 신으로 업그레이드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인류는 힘과 관능, 지혜와 광기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우선 유발 하라리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어떻게 정복했고(1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2부)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배력을 상실한 호모 사피엔스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3부)

인간은 동물을 지배하면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에게만 영혼과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 어떤 증거도 없다. 특히 인간은 농업계약을 맺으면서 유신론적 종교에 수많은 동물들을 제물을 바쳐야 했다. 인간은 신과 자연과 동물들에게 헌신함으로써 다른 동물들을 통제할 권리를 얻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호모 사피엔스인 인류는 상호주관적 의미망, 즉 이야기의 그물망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법과 질서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는 어쩌다 인본주의를 받들고 있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 교수는 과학과 종교가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과거에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인본주의는 역할을 뒤집어 인간의 경험이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면서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닐,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고 적었다. 이러한 인본주의에선 개인들이 더 많이 갖고 싶게 하고, 끊임없이 탐욕에 물들게 한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생태계 파괴 문제는 가난한 이들과 후손에게 떠넘긴다.

이제 유발 하라리 교수는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한다. 중세의 신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극대화 한 호모 사피엔스는 바로 그 인본주의로부터 역풍을 맞는다. 인본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인본주의 이념의 몰락을 초래한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불멸하고자 하고, 최대의 행복을 얻고자 하며, 신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현생 인류는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생명공학에 따라 개인이 지닌 자유의지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더 나아가 개인은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쓸모가 있게 된다. 특히 군사적·경제적으로 불필요한 존재가 되며, 그토록 갈구하던 인본주의는 위협에 직면한다. 심지어 시스템을 유지보수 하는, 업그레이드 된 일부 초인간들은 일반 사람들의 꼭대기에 올라서 불평등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본주의는 평등을 원하지만 말이다.

저자의 우려는 데이터에 기대면 기댈수록 알고리즘이 결국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그러면 권한 역시 인간의 손에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가고, 극단의 효율성을 원하는 속성상 인본주의 혹은 인본주의의 과제들은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고도의 알고리즘은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속속들이 알게 된다. 따라서 저자의 결론처럼 “인류는 그저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를 경계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주장들은 대담하면서도 정교하다. 또한 과학기술의 여러 가능성과 기원을 검토함으로써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그는 자유의지와 자아, 영혼과 마음의 증명 불가능성, 그리고 이들의 관계, 종교의 한계와 과학의 무한한 가능성 등을 논했다. 하지만 특수한 사례들이 정말 보편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예를 들어, 뇌의 좌우 대뇌반구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제시되는 사례들이 정말 단일한 자아의 불가능성의 근거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은 유발 하라리 교수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개인이 중요한 인본주의, 역풍을 맞다

반면, 『호모 데우스』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기 및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기 있다. 이로써 창의적 글쓰기란 과연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남북한을 비교하며 과학기술이 어떻게 야누스의 얼굴을 드러내는지 간파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의 가능성은 북한으로부터 발견한다. 현대 최첨단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자율주행이 가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도로 확보, 관련 법규 검토, 윤리 문제, 운전자 보호 등 사항들이 많다. 하지만 중앙집권화 된 저개발 독재국가에선 기술혁명의 한 시나리오로 제시된다.

더욱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을 통한 통제와 감시까지 가능하다. 남한의 국민들은 저항이 심하겠지만, 북한의 국민들에게 생체측정 기기를 심고 모든 말과 행동을 감시하고 혈압과 뇌 활성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맞춤 아기 생산만 하더라도 남한에선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하지만 북한은 그 기술로 특출한 능력을 지닌 인재나 전사를 길러낼 수 있다. 즉, 전체주의적 혁명이 필요한 북한에게 기술혁명은 주요 수단이다. 『호모 데우스』의 부제는 ‘미래의 역사’이다. 미래의 역사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다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신으로 업그레이드 된 인류가 인본주의가 내포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책이 관통하고 있는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역사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 자신부터 아는 것이 곧 인류를 아는 일이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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