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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내부 비판 빈곤…‘정상적 과정’ 주장도
과학계 내부 비판 빈곤…‘정상적 과정’ 주장도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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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진단 : 이공계 위기설을 되돌아본다

이공계 위기론이 무성하다 다시 주춤해졌다. 인문학 위기론도 흔적 없이 사라지더니, 이공계 위기설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이공계의 위기였는지 아니면, 한순간에 불어닥친 유행의 한 자락이었는지 새삼 의구심이 든다. 위기의 원인과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은 위기론이 부각되기 이전과 그 이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공계 위기론이 세인들 사이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초반부터였다. ‘인문학의 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 이공계 위기론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대학입시. 몇년 전까지만 해도 40% 가량 유지되던 자연계열 응시자 비율이 2001학년도에는 29.5%, 2002학년엔 27% 정도로 집계돼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위기설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에서 대중화 사업의 강조, 학문후속세대의 처우 개선 문제와 외국박사 선호 현상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과학기반 전반에 관련한 문제제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뜨겁던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대응이나 변화는 없었다.

과학교육에 문제는 없는가

올해 초 과학기술인총연합회가 과학기술 64개 학회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기피현상과 과학기술인 냉대현상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의 1 순위는 ‘제대로 대우받지 못함’(67.5%)이었다. 다른 원인으로는 ‘문과 우대 정책의 영향’(15%), ‘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적 풍조’(10%)와 ‘진정한 과학 교육의 부재’(7.5%)가 꼽혔다. 새정부의 최대 과제로 지적된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40%), ‘종합계획’(35%), ‘인력양성’(22%)의 필요성이 지적된 것에 반해, 교육혁신은 3%에 불과했다. 즉 과학계가 진단하는 위기론의 책임과 해결방안은 학계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위기를 진단하는 시각

가운데, 내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과학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매일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기술인들의 입장에서는 외부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없을뿐더러, 최선을 다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는 달리 이공계 대학의 커리큘럼이 적극적으로 바뀌지도 않았고, 이공계 학생들에게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드물었다. 과학을 전문가 집단의 영역으로 남겨두며 공고한 성을 쌓은 혐의도 있다. 연구를 위해서는 굳이 국내 대학을 고집할 필요도 없는 터라 우수한 인력이 외국으로 빠져나갔지만, 이들을 잡기 위해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개발하는 움직임도 찾기 힘들었다.

담론 역시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있다. 이공계의 위기가 관연 이공계‘만’의 위기인지, 아니면 문화전반이 갖는 문제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불투명한 전망과 빈곤한 처우 문제는 이공계 출신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1997년 외환 위기는 국내 학계의 풍토를 상당부분 뒤바꿔 놨다. 의·약대와 사범대 등 몇몇 인기 있는 학과를 제외하고 나면 이공계뿐만 아니라 기초학문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이공계 기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돈 되는 쪽으로만 달려가는 시장 숭배적 행태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의 지적처럼 본질 규명이 뚜렷하지 못했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국가의 과학지원정책에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또 정부부처에 이공계 출신이 인력이 없기 때문에 위기가 가중됐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그 동안 과학기술인력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개진했던가를 되물어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전공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공계’만’의 위기인가

김윤수 전남대 교수(임산공학과)는 “이공계 기피는 사회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 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구의 경우 이공계대학으로의 진학률이 30% 내외가 되면 이를 정상으로 생각한다는 것. 현재 30대 과학기술인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보면, 전체적인 인력수급의 균형을 맞춰가는 단계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는 “과학기술을 위기로 내몬 것은 과학기술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학을 성장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정부와 언론의 주도에 동조해왔기 때문에, 대중과의 거리감이 깊어지고 과학문화를 조성하지 못한 책임이 분명하다는 것.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위기담론을 촉발시켰지만, 사실 이공계가 처한 문제는 그 이전부터 안고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이공계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위기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설정하는 과정이 불분명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부로 눈을 돌려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것이 어떨까.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고, 분석해 내는 과정 속에서 또 다른 해법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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