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눈빛이 맑은 이유는?
칠순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눈빛이 맑은 이유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1.24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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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창립 10주년 맞은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 이끄는 이인용 협회장
이인용 전국음악치료사협회장. 사진 제공=(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
이인용 전국음악치료사협회장. 사진 제공=(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구약성경 사무엘상 16:23)

음악치료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2010년부터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인용 협회장은 음악치료의 기원에 대해 기독교인이든 그렇지 않든 많은 이들이 성경의 이 구절을 인용한다고 말한다. 물론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든지 다른 사례를 찾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협회장은 음악치료가 학문적으로 정립된 건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라고 설명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가진 군인을 대상으로 음악치료가 행해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나라에서도 음악치료의 학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1946년 미국 캔사스대에 학위과정이 생기면서 음악치료는 학문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숙명여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한 후 학생상담 자원봉사자로 오랫동안 봉사했다. 당시 문교부에서는 대학졸업자들에게 55시간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면 학교에 소그룹집단상담을 할 수 있도록 파견하는 제도를 운영했는데, 그는 이를 통해 마음을 다친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날수록 단기간에 구조화된 프로그램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처럼 제일병원에서 찬양봉사를 하던 중에 수술 후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가 노랫소리에 이끌려 복도 밖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목도했다. 늘 음악 안에서 살던 그에게 음악이 치료적 효과가 있다는 것을 각인시킨 강렬한 경험이었다. 1998년. 그는 이화여대 음악치료학과 대학원 과정에 등록했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국내에서 음악치료학위과정이 시작된 건 1997년이다. 숙명여대가 처음 개설했고 한 학기 차이를 두고 이화여대에서도 개설됐다. 이후 10년 사이에 각 대학에 음악치료학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음악치료가 국내에 안착하면서 몇몇 기관에서 음악치료사 단기양성과정이 생겨났다. 이론과 임상으로 오랜 시간 음악치료를 배워 좋은 음악치료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그는 고민에 빠졌다. “음악이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더 나아가서 영적인 세계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단기간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내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우려가 됐어요.”

다행히도 음악치료사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각 대학의 음악치료학과 현직 교수들이 모여 공청회를 개최했고, 2007년,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가 탄생했다. 음악치료사들이 모여 현안과 고민을 함께 나눌 장이 마련된 것이다. 김경숙 초대회장(한세대 교수) 이후 2대 회장으로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학술대회 및 행사를 통해 음악치료사들의 목소리를 모아 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를 이끌면서 그가 가장 공을 쏟은 부분이 자격증 일원화로 귀결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협회가 발급하는 자격증을 받으려면 음악치료의 필수전공과목은 물론 심리학, 상담학, 정신병리, 신경심리 등 인접학문도 두루 배워야할 뿐만 아니라 1,040시간의 임상실습 및 인턴십을 이수한 후 자격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또한 음악치료사 자격증을 유지하기 위해 매 5년마다 80시간의 보수교육을 받거나 시험을 쳐야 한다.

음악치료의 질과 공신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원화된 자격제도를 추진한 것은 여러 대학들의 지지를 받았다. 가천대, 고신대, 명지대, 성신여대, 수원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주대, 침례신학대, 평택대, 한세대 등 12개교가 전국음악치료사협회와 MOU를 맺은 것이다. 협약체결을 위해 전공 필수·심화 과목을 공유했다.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의 자격증 일원화 제도는 인접학문분야에서도 귀감이 됐다. 이인용 협회장은 “타 예술치료 분야 선생님들이 찾아와요. 체계적으로 관리 되는 전국음악치료사협회를 중심으로 여러 예술치료분야 학회들을 하나로 통합해달라는 제안도 많아요”고 귀띔했다. (사)전국음악치료사협회는 오는 26일 창립10주년 총회를 개최한다.

이인용 협회장은 후학양성에도 관심이 많다. 이화여대에서는 지난 2014년 정년을 맞아 겸임교수직을  내려놨지만 현재 가천대 초빙교수, 침례신학대 특임교수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봉사활동에도 여전히 열심이다. 저소득층과 결손가정 자녀들에게 주1회 개인세션을 하는 조이벨 무료음악치료는 2006년부터 계속하고 있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교사 자녀들도 만나고 있다. 크리스챤인 그는 이런 봉사활동이 음악치료사로서 십일조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음악입니다. 이것이 바로 음악치료의 힘이죠.” 음악 안에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칠순을 바라보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악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연주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총기를 잃지 않은 그의 눈동자 그리고  몸짓과 미소에서 음악이 리듬을 타고 있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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