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가 읽어낸 미국 문화의 저변 … 그들은 왜 ‘종말론’에 매달렸을까?
신학자가 읽어낸 미국 문화의 저변 … 그들은 왜 ‘종말론’에 매달렸을까?
  • 서보명 시카고신학대 교수
  • 승인 2017.11.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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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미국의 묵시록』, 서보명 지음, 아카넷, 264쪽, 12,800원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조건적인 지지만큼이나 미국 정치의 메시아주의를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세상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복귀해야만 계시록의 마지막 예언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미국 보수 개신교 종말론의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 때문에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 미국의 정책은 정치적 상식에서 벗어난 종말론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본문(「미국 정치의 메시아주의」) 중에서

 

 

미국처럼 많은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그저 하나의 국가일 뿐이라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것은 미국의 역사가 시작할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희망과 과거의 야만, 드림과 악몽, 자유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공간은 언제나 좁았다. 미국 안팎에서 벌어졌던 미국에 관한 이념적 논쟁의 역사는 그 자체로 미국의 역사다.

20세기에 들어와 미국에 대한 이념적 논쟁이 정치화되기 이전의 미국은 신학과 철학 그리그 자연사 논쟁의 대상이었다. 또 미국만큼 많은 저술과 담론의 주제가 된 나라도 없다. 미국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책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미국의 묵시록』도 결국 그런 책으로, 미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과 분석을 담고 있다. 이 책의 관점은 묵시록이라 불리는 종말론으로, 미국에 대한 이해는 미국인들의 독특한 정서를 이루는 종교적인 성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개인사적인 이유에서 출발한다.

오랜 시간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미국은 이념이나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실존적인 고민이었다. 미국은 나에게 무엇이고, 나는 미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특히 대학 시절 나의 화두였고 사색의 질문이었다. 실제 그 후 미국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미국론은 장르를 불문하고 나의 관심이었고, 내가 그동안 공부해온 것들은 거의 그 질문과 연관이 있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나의 미국론을 정리해보리라는 생각도 품고 있었다.

미국 문화에서 자라난 ‘묵시록’

나의 관심은 주로 에머슨과 소로의 사상이 담고 있는, 다분히 자연과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고 그 위에서 완성되는 초월적 자아에 있었다. 유럽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두고 벌인 논쟁의 담론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우연히 온라인 웹진에 글을 쓰란 제안을 받고 그 주제를 미국으로 정했다. 객관적인 주제치고는 나의 실존적 고민을 가장 잘 투영해낼 수 있는 소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쓸 수 있는 어떤 글이 독자들에게 의미 있을까 고민하다 묵시록을 떠올렸다. 평소 종말론이 미국의 역사와 사상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기에, 미국을 이해하는 개념으론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묵시록은 미국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 관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묵시록』은 그렇게 시작됐다.

책의 큰 줄거리는 이렇다. 미국의 역사는 몰락한 낡은 세상을 등지고 새로운 세상을 맞을 에덴동산을 건설하고자 하는 종말의 비전으로 시작했다. 미국이 세상 끝을 준비하기 위해 선택된 예외적인 운명을 타고났다는 인식은 미국 역사의 초기부터 뿌리내려진 무의식의 한 부분이다. 세상의 종말이 예수의 재림과 환란과 파괴와 고통을 수반한다는 믿음은 묵시록의 기초를 이룬다. 이 묵시록적인 종말론은 종교적인 세계관으로 시작됐지만, 20세기에선 대중이 열광하는 세상의 파괴와 재앙의 세속화된 세계관으로 변했다. 그 과정을 책에선 신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과 문학의 예를 들면서 서술하고자 했다.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은 연구의 성과를 담은 논문집이 아닌, 길을 나서지 않고 쓴 기행문 같은 것이었다. 토크빌, 베버, 헤겔, 벤저민 프랭클린, 케루악, 프랜시스 코폴라 등은 함께 어울리기 쉽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모두 나의 미국 이해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기에 이들과 묵시록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미국 사상의 단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에세이 형식의 글이었기에 그들과의 짧은 대화로 책의 주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책에선 그런 의도를 살리기 위해 내가 찍은 미국의 사진도 여러 장 실었다.

1장(묵시록의 현재)에선 미국의 종말론 문화가 어떻게 군사문화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는 총기문화로 이어졌는지 밝히고자 했다. 그리고 미국에 팽배해 있는 묵시록의 정서가 미국 자본주의의 내면에 자리 잡은 모습도 서술했다. 2장(묵시록의 신학)은 미국을 만든 청교도들의 종말론과 그와 연관된 선민의식과 예외주의가 미국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그렸다. 3장(묵시록의 시선)에선 미국의 지형학적이고 이념적인 본질에 대해 유럽의 지식인들이 벌인 논쟁을 다뤘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유럽의 미래로 소개한 프랑스의 토크빌을 묵시록이란 개념으로 이해하는 시도를 했고,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헤겔에게 미국의 존재가 어떻게 철학적인 문제가 됐는지를 종말론의 관점에서 짚어보았다. 마지막 4장(묵시록의 문화)은 20세기 미국의 예술과 문학에서 묵시록이 세속화되어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된 상황을 살폈다.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락과 비트세대의 잭 케루악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을 만든 프랜시스 코폴라를 묵시록을 내면화시키거나 이에 저항한 작가들로 소개했다.

 

종말론으로 본 토크빌과 베버, 그리고 프랭클린

이 책은 내가 살아오고 생각해온 미국을 담아내자는 의도로 썼기 때문에 여기서 다룬 인물이나 주제의 선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다소 불편한 선택과 연결고리가 저자에겐 만족스러운 면이 될 수 있다. 특히 3장에서 잠시 다룬 공룡에 대한 환상이 그렇다. 공룡에 대한 대중의 상상력이 과하고 이를 설명할 사상적 근거가 있다고 믿어왔는데, 책에서 이를 멸종이라는 종말론에 대한 집착으로 해석했다. 또 청교도들의 종말론을 다루면서 그들이 남긴 유산에 대한 역사의 해석이 매우 다양하고도 복잡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신앙이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님을 새삼 확인하고자 했다. 미국의 총기 문화는 미국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고민하게 되지만, 내가 글을 매개로 그 고민을 풀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토크빌과 베버 그리고 프랭클린을 종말론의 차원에서 읽은 나의 해석이 다소 낯설 수는 있겠지만, 개연성이 충분한 해석의 상상력을 발휘한 것으로 믿는다. 잭슨 폴락의 드립페인팅을 묵시록의 재현으로 해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묵시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니 사건과 역사로 펼쳐지고 있다고 해야 옳은지도 모른다. 책에선 트럼프와 사드라는 무기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묵시록이 세상과 함께 끝날지 아니면 미국이 슈퍼파워의 예외주의를 내려놓는 순간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에 대한 상상은 소설과 영화의 몫이다.

 

서보명 시카고신학대·신학

 

필자는 시카고신학대학(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이론과 미학 그리고 현상학 등에 관한 연구가 주된 관심사다. 지은 책으로 『대학의 몰락』이 있으며,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하몬 스미스), 『사람의 길』(아네스트 게인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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