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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亞流’의 유혹
세계적 ‘亞流’의 유혹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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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줄이은 해외 유명공연

名品 바람이 공연계에도 불기 시작했다. 해외 유명 공연들이 대거 수입되면서 이른바 高價 ‘명품 공연’이 국내 공연예술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신호탄은 2001년 문화계의 화제가 됐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국내 뮤지컬 사상 최초로 관객 10만 명을 불러모았던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은 이후 ‘캣츠’, ‘레미제라블’로까지 이어졌다. 뮤지컬 분야의 성공에 힘입어 ‘델라구아다’, ‘스피릿 오브 더 댄스’가 수입됐으며 이번 달에는 국내 제작비 사상 최고액인 70억원을 들인 푸치니의 대형 오페라 ‘투란도트’가 막을 올리고,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도 한국 무대에 설 예정이다.

일단 대형 공연들이 흥행에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현상에 대해 공연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격이 다소 비싸도 작품만 좋으면 보러간다는 관객들이 늘어난 것은 국내 관객층의 질적 향상”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작품이 좋은가’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공연 전부터 예매율 80%를 기록했던 ‘캣츠’를 공연한 팀은 호주와 남아공 배우들로 구성된 인터내셔널 투어팀이었다. 해외 공연에서 투어팀은 불가피하다 해도 각 고양이들의 개성을 살리지 못한 캐스팅, 엉성한 작품 해석은 ‘국내 공연팀보다 못하다’는 혹평을 받기 충분했다. 명품치고는 흠이 너무 많아 같은 제목의 ‘아류작’으로 전락해버린 셈.

편향된 홍보도 작품을 고르는 관객들의 눈가리개가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스피릿 오브 더 댄스’도 실상은 이번 여름에 공연되는 ‘로드 오브 더 댄스’보다는 규모와 역량 면에서 작은 공연팀이었으나 국내 홍보에서는 ‘아이리쉬 댄스의 결정판’이라는 광고 문구만 내걸었을 뿐이다.

‘名品不敗’라는 신화가 쌓이기 시작하자, 수익을 노리고 명품 공연 모시기에 급급해 하는 기획사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만은 않다. 너도나도 명품 공연 모시기에 합류해 명품공연 유치부터 과열된 경쟁을 벌인 결과 개런티만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4대 뮤지컬 중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미스 사이공’이 단적인 예. 물론 과열 경쟁 이면에는, 작품에 대한 뚜렷한 기준 없이 맹목적으로 명품 공연에 몰리는 관객들의 공연 심리도 한 몫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작년 우리 나라는 한바탕 프랑스 와인 ‘보졸레 누보’ 열풍에 시달린 적이 있다. 프랑스 와인 족보에서는 그다지 쳐주지 않는 보졸레 누보가 우리 나라에서 유독 인기를 끌었던 것은 수입사의 뛰어난 마케팅 전략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명품’이란 그 이름만으로도 가치를 발산하는 것이지만, 아직 국내에서의 명품 공연은 관람객의 허황된 문화향유 심리를 이용한 기획사들의 과열 경쟁이 불러온 붐이라는 냄새를 지울 수 없다. 안치운 호서대 교수(연극학)는 “국내 공연계의 역량이 향상되고 있다는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고가의 가격이 반드시 그 만큼의 문화적 가치를 담보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명품 공연을 옥석을 고르듯 ‘名品’으로 골라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마인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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