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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를 읽는다 : 폭넓은 해설과 꼼꼼한 분석의 거리감
하이데거를 읽는다 : 폭넓은 해설과 꼼꼼한 분석의 거리감
  • 배상식 경북대
  • 승인 2003.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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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를 읽는다

국내에 하이데거 전공자는 많다. 그렇지만 하이데거는 여전히 어려운 대상으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데거의 철학 자체가 난해한 것인가,
아니면 그걸 해석하는 한국의 학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최근 국내의 대표적인 하이데거 해석자들이 ‘존재와 시간’을 해설한 두권의 저술을 펴냈다. 과연 하이데거의 철학에 오늘날을 건널 수 있는 사유의 씨앗이 숨어있는지, 그리고 국내 하이데거 연구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비교읽기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소광희 지음, 문예출판사 刊)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이기상 지음, 서광사 刊)

최근 국내 하이데거 연구의 대표주자인 소광희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각각 하이데거와 관련된 새로운 저서를 上梓했다. 하이데거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소광희 교수는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에 대한 해설서인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를, 그리고 이기상 교수는 최근 몇 년동안 발표했던 논문들을 정리하고 묶어서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을 출간했다.

소광희 교수의 저서는 자신이 밝힌 바와 같이 1995년에 번역해 출판했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경문사 刊)에 대한 해설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용어와 문장이 난해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으로, 소 교수도 10년 동안의 노력 끝에 이 번역서를 간행하게 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다시 8년만에 이 번역서에 대한 해설서를 출간함으로써, ‘존재와 시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공유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존재와 시간’의 원문 목차에 따라 비교적 평이하고 간단명료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기상 교수의 저서는 하이데거의 후기사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가이드와 애널리스트
하이데거 연구와 관련해 소 교수와 이 교수가 보여준 노력과 연구성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소 교수는 ‘존재와 시간’, ‘시와 철학’ 등을 번역한 것을 비롯해 하이데거와 관련된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특히 1992년 ‘한국하이데거학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하이데거 연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이 교수도 ‘존재와 시간’,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등 명실공히 국내에서 가장 많은 하이데거와 관련된 저서 및 역서 그리고 논문을 발표하면서, 국내 하이데거 연구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과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교수의 연구 경향을 비교해 보면 다소 차이가 있다. 먼저 소광희 교수의 연구는 주로 시간, 역사, 인간, 자아, 타자 등과 같이 특정 개념이나 주제를 폭넓은 철학사적 관점에서 진행시켜온 경향이 있다.
그가 2001년에 출판한 ‘시간의 철학적 성찰’이라는 방대한 저서는 바로 ‘시간’ 개념을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사적 흐름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책이다. 하이데거의 시간개념도 이 책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연구범위는 하이데거에 국한돼 있지 않고 철학사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후학들에게 철학적 개념규정이나 탐구방향을 제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하이데거 해석은 주로 특정 개념이나 주제 중심으로 다뤄져 온 경향이 없지 않기 때문에, 하이데거 사상을 전체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보려는 연구자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 있다.

이에 반해 이기상 교수는 신학을 전공하다가 철학으로 연구방향을 바꾼 것이 그 이유인지는 몰라도, 마치 성서해석을 하듯 하이데거의 텍스트에 충실, 그 의미를 철저하게 분석·해명하려고 시도한다. 특히 하이데거의 철학적 용어나 개념을 순수 우리말로 번역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사실로 인해, 두 교수의 동일한 번역서인 ‘존재와 시간’에는 상이한 용어나 개념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 몇가지 예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컨대 독일어 ‘Zuhandenheit’와 ‘Vorhandenheit’에 대한 소 교수의 번역어는 ‘用在性’과 ‘前在性’이다. 이에 반해 이 교수는 각각 ‘손안에 있음’과 ‘눈앞에 있음’으로 번역한다. 이런 예에서 드러나듯, 소 교수는 대체로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이 교수는 가능한 우리말에서 번역어를 찾으려고 한다. 현재 이 교수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회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말 사용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말은 소리문자이기 때문에, 한자와 같이 뜻을 담아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과연 우리말만을 사용해 함축적인 철학적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무턱대고 우리말을 기피하고 한자만을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철학 용어에 있어서는 한자를 사용했을 때 그 의미전달이 용이한 개념들이 많이 있으며, 이 때는 한자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번역 ‘용어’의 이중 혼란
우리는 이런 용어사용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위의 용어를 각각 ‘도구존재성’과 ‘사물존재성’으로 번역한 바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용어는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transzendental’과 ‘a priori’에 대해, 소 교수는 ‘선험적’과 ‘아프리오리’로 번역했고, 이 교수는 각각 ‘초월론적’과 ‘선험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선험적’이라는 번역어의 원어가 완전히 다르게 되는 경우이다.

이 밖에 소 교수의 ‘심정성(Befindlichkeit)’과 ‘피투성(Geworfenheit)’은 이 교수에 있어서 각각 ‘처해있음’과 ‘내던져져 있음’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용어의 의미는 유사하지만 이와 같이 용어를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한 쪽 용어에 익숙한 사람에게 있어서 다른 쪽 용어는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번역’이라는 힘든 작업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어느 분의 용어 사용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학계의 원로나 중진교수들이 이런 용어사용에 있어서 다소간의 통일을 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국내에서 하이데거를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런 용어상의 고민과 혼란을 경험했을 것이다. 한국하이데거학회를 비롯한 여러 학회에서 통일된 용어를 모색하고 도출하는 데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의에 관계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걸 하이데거는 ‘피투성’이라 불렀다. 이런 피투성은 ‘왜 나는 여기 살고 있을까’란 불안을 내포한 질문을 유발시킨다. 그것이 바로 피투성을 ‘자각’하는 단계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자각된 존재로서의 인간이, 죽음과 불안으로 이뤄진 세계에 자신을 능동적으로 던지는 행위를 ‘기투’라 불렀다. 기투의 단계를 지난 주체적인 인간을 그는 ‘현존재’라고 명명한다.

인간에게는 ‘존재 그 자체’를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개시성’이다. 틈이라고도 설명되는 이 단어는 인간의 불완정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재 그 자체로 다가가는 구원의 실마리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지는 기투 혹은 결단성에 의해 자신이 죽음을 향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런 인간(현존재)의 삶의 방식 자체가 시간을 산출한다고 하이데거는 봤다.

 

배상식 / 경북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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