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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동향 : 문학연구자들, ‘환경’에 주목하다
학계동향 : 문학연구자들, ‘환경’에 주목하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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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거대담론 경계

요즘 다시 문학과 환경이 밀접해지는 느낌이다. 문학과 환경이 한 지붕 아래 살림을 차린 문예지가 2종이나 생겨났다. 환경운동연합 부설출판사 도요새가 펴낸 학술성격이 강한 ‘문학과 환경’, 토지문화관과 예술인들이 결합해 출범시킨 창작 성격이 강한 ‘숨소리’(이룸 刊)가 그것이다.
문학과 환경의 연합이 사실 새로울 건 없다. 이는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온 김지하의 문예운동, 선시 경향, 기타 문학의 정신주의적 움직임과 함께 서구의 생태학적 문예이론이 나란히 지원자를 얻고, 연구인력이 쌓여온 당연한 결과다. 동시에 환경이나 생태의 압도적인 문제의식 아래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개별화돼있던 문학과 환경의 만남이 집단화, 체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은 문학의 입장에선 새로운 데가 있다. 거대담론이 실종된 1990년대 이후 계급과 민족을 대신한 문학의 집단화된 주체가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2001년 인문학자 60여명이 모여 창립한 ‘문학과환경학회’가 지난해 겨울에 펴낸 ‘문학과 환경’을 보면 문제의식이 다분히 외향적이고 참여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생태학적 사유를 비평 및 창작에 뿌리내리고 인접학문 및 시민운동단체들과 협력해 사회의 전반적인 생태의식을 높이겠다”라고 회장 정정호 중앙대 교수는 밝히고 있다. 그는 “문학연구에서 종족, 계급, 성별과 함께 생태라는 제4요소가 추가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창간호에는 ‘들뢰즈-가타리의 생태학적 사유의 영토들’ 등의 논문이 실렸다.
반면 ‘숨소리’는 생태를 전면에 새워놓긴 했지만, 생태운동과 문학은 그 길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잡지는 다만 환경이나 생명 문제를 주로 다루면서, 순수문학인들의 활동무대를 제공하려고 한다. 소설가 박경리를 위시한 문학인들을 주축으로 김영주(토지문화관 관장), 임금배(건축가), 김봉준(화가), 김용정 동국대 교수(철학),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등 생태에 관심 많은 각 분야의 인사들이 참가한다. 창간호에는 ‘자연과 예술’이란 특집, 경험이 풍부히 드러난 환경에세이, 시와 소설, 생태인물 전기, 생태논문 등이 실렸다.
주간을 맡은 최유찬 연세대 교수(국문학)는 “굳이 생태의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성실히 활동하는 문인들을 발굴할 것이며, 이를 통해 숨소리가 살아있는 순수문학이 발전했으면 한다. 그리고 토지문화관의 다양한 생태, 환경관련 세미나, 심포지엄, 강연회의 결과물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라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밝혔다.
이렇게 보니 묘한 대립 양상이 비친다. ‘문학과 환경’이 과거 참여문학처럼 집단성이 강한 반면, ‘숨소리’는 환경이라는 인류공영의 장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문학의 개별적 영토를 포기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강조된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불안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춘식 동국대 강사(문학평론가)는 “문학의 환경 끌어안기를, 문학을 사회참여의 도구나 구호로 사용하던 때와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제도화되고 거대화될수록 ‘저항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문학 본연의 자율성과 부딪히는 측면이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세계조류에 휩쓸리면서 현실과 맞지 않는 담론의 거품을 조장하거나, 혹은 사회의 급박한 문제에서 이탈된 탈역사적인 심미적 개인의 존재론적 변호로 사용되면서, 정작 가슴을 울리는 생명의 문학적 형상화는 요원한 상황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문제는 개인과 집단, 사회와 내면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해야할 문학의 운명적 차원으로 다시 불려 들어온다. 환경과 문학의 동시적 탐구는 이런 내부의 벽을 우선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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