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3:20 (토)
존경심보다는 우정을 갖고 써라
존경심보다는 우정을 갖고 써라
  • 박홍규 영남대
  • 승인 2003.04.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왜 평전을 쓰는가

우리나라에서는 평전과 전기를 구별하는 듯 하나, 나는 어떻게 구별되는지 잘 모른다. 이하 평전과 전기를 구별하지 않고 말하되, 편의상 평전이라고 한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평전을 썼다. 즉 우리에게 소개될 필요가 있는 인물인데 전혀 소개되지 못하거나, 많이 소개됐지만 달리 소개될 필요가 있는 탓이다. 전자의 경우는 윌리엄 모리스나 오노레 도미에이고, 후자의 경우는 반 고흐나 고야 그리고 베토벤이다. 그러나 이는 평전의 경우만이 아니라, 내 글쓰기의 기본 태도다. 전혀 소개가 없으나 소개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발티코스나 유네스코, 일리히, 사이드, 푸코의 어떤 책들을 처음으로 번역했다. 또한 기존 학설과 달리 법, 특히 헌법이나 노동법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자 몇 권의 책을 썼다.

존경심보다는 우정을 갖고 쓰다

나는 번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계는 번역을 지극히 소홀하게 취급하나, 나는 우리에게는 더욱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번역이 필요하다고 본다. 같은 문학작품이 수없이 번역되는 경향에 반해, 중요한 학문적 연구서는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사이드나 푸코의 책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소개되기를 학수고대했고, 그런 분들에게 적극 권유하기도 했으나, 내 기대가 이뤄지지 못해 몇 년을 기다리다 못해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몇 년을 두고 힘들게 번역했다. 나의 번역은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교수로서의 업적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어 만족하고, 앞으로도 필요한 번역을 할 계획이다. 물론 평전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번역보다 못한 평가를 받으리라.

평전을 쓰면서 어느 책에서나 밝힌 이야기지만, 나는 내가 읽을 수 있는 외국의 평전을 모두 참조하고 적당한 것을 번역하고자 했으나, 우리 독자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 스스로 썼다. 물론 우리 전문가가 쓴 적이 없는 탓이기도 했다. 가령 반 고흐나 고야, 또는 베토벤 평전은 이제 우리 자신에 의해서도 쓰여짐직 한데, 여전히 번역만이 많다. 나는 제발 우리 전문가들이 우리 독자를 위해 우리 상황에 맞게 이제는 많은 평전을 쓰기를 권유한다.

그러나 나는 위대한 인물의 위인전 쓰기는 애초부터 거부하고, 특히 그 신비화나 영웅화를 거부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친구라는 입장에서 썼다. 나는 반 고흐 평전의 제목을 ‘내 친구 빈센트’라고 붙였다. 나는 친구라는 입장에서만 그들의 예술이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내가 쓴 인물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이었고 보통 사람들을 위해 살며 예술과 학문을 했다. 특히 그들은 권력이나 권위에 철저히 저항했다. 나는 그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여질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사 넘어 당대인의 複數 평전으로

나에게 평전은 역사, 지리, 정치, 사회, 문화다. 나는 한 인물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 시대나 나라를 이해하고자 한다. 나의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로서는 그런 배경과 요소의 이해 없는 평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평전은 형식이 한 인물사이나, 사실은 그 시대사고 사회사며 당대인의 복수 평전이다. 나는 평전을 쓰기 전에 반드시 내가 구할 수 있는 그 인물을 둘러싼 모든 자료를 섭렵하고 내가 찾을 수 있는 한 열심히 내 발로 찾아본다. 그들이 산 곳을 가보면 우선 신비화가 없어져서 나름의 성과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서양 사람들의 평전만을 썼다. 앞으로는 허균, 박지원, 신채호 등 내가 좋아하는 우리 선조들도 친구로 삼아 쓸 생각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후손들과의 갈등이 걱정된다. 반면 서양의 이른바 위인들은 마음대로 분석하고 평가해도 무방하니 아직은 편하다. 나는 나의 그런 다양하고 자유로운 평전 쓰기가 과도한 서양 신비화나 우상화 파괴에도 도움이 되길 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나 작품이 우리에게 피부로 느껴져 친구처럼 다정한 벗이 돼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평전 쓰기는 여전히 나에게 매력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