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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재해석 작업 문전성시 이뤄
번역과 재해석 작업 문전성시 이뤄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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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 총서들

옛날 책을 알아보는 눈이 소비자층까지는 못갔지만 생산자층에는 부쩍 다가간 듯하다. 고전을 번역하고 평가하려는 문화가 총서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카넷의 ‘대우고전총서’, 책세상의 문고인 ‘고전의 세계’, 현대실학사의 ‘현실총서’, 한길사의 ‘학술명저번역총서’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고전에 대한 원전번역과 철저한 주석, 해박한 해제를 표방하는 명저번역의 새장을 열어가고 있다.

두 마리의 토끼를 겨냥하다


이들은 다시 두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대우고전총서’는 대우학술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는 학술진흥재단의 지원 아래 이뤄진다. 반면 ‘고전의 세계’와 ‘현실총서’는 출판사 자력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리즈들이다. ‘대우고전총서’는 희망자가 번역계획을 응모하면 대우학술재단이 선정하고, 번역물을 한국학술협의회가 심사하고, 출판사가 펴내는 시스템을 밟고 있다. 여기엔 몇가지 장점이 있는데, 첫째 지원금 규모가 크다는 것, 객관적인 심사와 평가절차가 있다는 것, 연구자의 작업환경 및 번역에 대한 시간투자가 상당하다는 것 등이다. 게다가 요즘은 번역이 이상하면 곧바로 인터넷에 뜨는 세상이라 더 조심스레 작업이 이뤄진다고 아카넷의 정연재 팀장은 밝힌다. 반면 지원금이 없는 고전번역은 아이디어의 승부다. ‘고전의 세계’는 유명한 명저의 ‘서문’만으로 책 한권을 뚝딱 만들어낸다.

 

가령 헤겔의 ‘형이상학에 대하여’의 경우 서문을 옮겨 독자에게 그 책의 전반에 대한 헤겔의 초록을 읽게 하고, 역자가 저자의 생애와 사상, 텍스트의 정치사회적 배경, 사회에 미친 영향과 계승의 계보, 텍스트의 현재적 의미 등을 꼼꼼히 짚어주는 해제를 써 나름대로 충실하고 아기자기한 고전 읽기를 연출한다. ‘고전의 세계’는 사회를 바꾼 유명한 선언문이나 전단, 사상가들 사이의 서한문을 번역하는 획기적인 시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책세상의 문선휘 과장은 “다이제스트란 오해가 세간에 퍼져있는데, 축약번역은 해본 적도, 해볼 생각도 없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현대실학사 정해렴 대표의 경우는 출판사 대표, 번역자, 편집자의 세 역할을 해냄으로써 ‘현실총서’를 이어나가는 노익장으로 유명하다.

 

 현재까지 25권이 나온 ‘현실총서’는 초기에는 개화기 전후의 국학 성과들을 주로 펴내다가, 요즘은 다산 정약용의 1표2서(경세유표, 흠흠신서·목민심서)를 완역판·발췌번역판으로 소화하는 등 다산저술만 총 10여권의 목록을 이뤄 ‘다산총서’의 면모를 띠고 있다. 정 대표는 “다산의 경전주석에 얽매이는 학계의 연구방식은 잘못됐다. 다산의 현재적 의미는 그의 경세학에 있다”라고 하면서, 학계에 불만을 드러냈다.

해체적 독해로 현대적 전유 시도


고전번역은 그 내용의 현대적 전유를 통한 전통의 재창출에 최종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사계절의 ‘오늘고전을읽는다’와 그린비의 ‘고전리라이팅’ 총서는 번역에서 한걸음 나아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소장학자들이 각 분야의 명저들을 대상으로 분석적·해체적 읽기를 시도한다. ‘오늘고전을읽는다’는 四書의 하나인 ‘大學’을 동아시아적 진보의 원천지로 조명한 첫 작품을 내놨고, ‘고전리라이팅’은 최근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통해 연암을 실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중세와 근세를 넘나든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게다가 대단히 유머러스한 교양을 쌓은 인물로 읽어낸 책을 펴냈다. 그린비의 편집자는 “사회학자 이진경씨의 ‘자본론’ 다시 읽기가 기다리고 있다. 노동가치론을 비판하면서 ‘자본론’을 재구성할 예정이다”라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런 고전에 대한 학술출판이 과거 삼중당이나 을유문화사 시절의 문고판처럼 시장을 형성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머리로는 중요하지만, 몸으로는 꺼려지는 이 거대한 전통과의 단절현상에 틈새를 내는 일이 관건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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