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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의 권력 구조 분석…서양언어에 갇힌 사유 반성
커리큘럼의 권력 구조 분석…서양언어에 갇힌 사유 반성
  • 김혜숙 이화여대
  • 승인 2003.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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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대회를 다녀와서 : 스페인 세빌리아대에서 열린 ‘상호문화성의 철학’ 국제학술대회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지난 3월 초 흥미로운 한 학술대회에 초대를 받아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이 학술대회는 독일 아헨에 위치한 미씨오 선교학 연구소에서 주최하고 스페인의 세빌리아 대학이 주관해 1주일 간 열린 국제 학술대회였다. 장소는 스페인의 세빌리아에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카르모나라는 유서 깊은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은 철학적으로도 매우 의미 깊은 역사를 지닌 곳으로서, 아랍문화로 넘어갔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번역해 유럽에 소개시킨 아베로에스가 살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2년마다 열리는 학술대회는 이번이 5회이니 10년째 ‘상호문화성의 철학’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학술대회를 갖는 셈이다. 올해의 세부 주제는 ‘젠더와 교육’이었다. 상호문화성을 젠더의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대학 안에서 철학이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지, 커리큘럼이 어떤 권력 구조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보자는 의도로 정해진 주제였다.

주변문화와 소수문화에 대한 관심들
상호문화성이 하나의 분과적 학문 영역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비엔나에는 ‘상호문화성의 철학’ 학회가 구성돼 있고 회원들은 전 유럽에 걸쳐있다) 지구화와 세계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소위 주변문화와 소수문화들이 처하게 된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 때문이었다. 서구 제국주의의 확장은 이미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했을’ 때부터 있어왔던 것이지만, 오늘날 총칼을 들이밀지도 않고 우리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구미의 문화와 시장의 논리는 이전 제국주의 시대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토착문화와 소수 민족의 문화 및 그 문화 안에서 통용되던 가치와 규범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탈식민주의에 관한 논의들은 식상할 정도로 많이 이뤄져 왔지만,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듣게 된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또는 인도와 같은 나라들이 처한 문화 환경은 이들 문화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에게는 하나의 지적인 개안을 가져다줬다.

한국에서 철학, 특히 서양철학을 공부하면서 갈수록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철학이 얼마나 강하게 서양의 문화, 특히 기독교 문화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 철학의 문제들의 주요 의제를 정하고 있는 근대 철학을 들여다보노라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며, 서양 언어의 족쇄 안에 갇혀 사유를 확장하지 못한 채(왜냐하면 모국어를 통해서 나의 상상력은 작동하고 그에 따라 사유도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뱅뱅 돌다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자신을 돌아보면 또한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서양과 동양의 어정쩡한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학생들 앞에서 뿌리 없는 서양철학에 관한 짧은 지식을 우쭐거리는 것만 같아 때로는 몹시 부끄럽기도 하다. 이러한 종류의 자괴감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위로를 삼아보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 학문 안의 답답한 상황에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나로서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많은 힘을 얻을 수가 있었다.

슬픈 현실과 철학의 토착화
상호문화성의 철학이란 일종의 토착화된 철학을 모색함을 말한다. 하나의 잣대로 우열을 가리고, 내편과 네편을 가르고 남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철학적 논의의 아젠더 자체를 대화를 통해 다시 정해보자는 것이다. 이제껏 서양철학을 규정해온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 이름만 들어도 열등감이 생겨나는 철학자들이 설정한 문제들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철학의 원초적인 (혹은 보편적인) 문제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해진 철학의 문제들이란 없는 것이다. 각각의 특수한 삶의 경험 안에서 배태된 독특한 사유의 양태와 합리성의 틀 안에서 설정된 문제들 또한 철학의 높은 담 안으로 이제는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성철학도 철학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고, 아프리카의 투박한 이야기들도 철학적 사유로서 이야기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슬픈 현실은 이제 ‘아프리카’ 혹은 ‘라틴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쓰는 언어들은 불어나 스페인어와 같은 고급 유럽언어들이고 그런 한 아프리카 철학, 라틴 아메리카 철학의 가능성은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아프리카란 서구인이 만들어낸 허구다”라는 아프리카 학자의 말은 아직도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우리는 정말 미국과 유럽이 아닌 타문화와 다양한 인간 삶의 조건에 얼마나 무지한가. 내가 그들에 무지하듯 그들은 또한 얼마나 한국 문화와 철학에 대해 무지할 것인가. 내가 처한 구체적인 문맥 안에서 철학적 물음을 제기하고 사유틀을 가다듬으면서도 타자에 열려있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철학을 해야 할 것인가. 보름간의 긴 여행은 피곤한 몸만큼 무거운 물음을 내게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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