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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 표방하는 형사법의 성차별에 관하여
성중립 표방하는 형사법의 성차별에 관하여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4.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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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형사법의 성편향』(조국 지음, 박영사 刊)

강간처럼 치욕을 강요하는 단어는 없다. 남녀 모두에게 그렇다. 우리나라의 법 현실은 남성들이 이런 치욕감을 갖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지독히 성편향적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말하길 꺼리는 이 예민한 문제를 한 남성 소장법학자가 고발하고 나섰다.

최근 ‘형사법의 성편향’을 펴낸 조국 서울대 교수는 책의 마지막을 “성중립을 표방하는 형사법의 이론과 실무 뒤에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검토작업은 이제 형사법학의 주변적 과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비장하게 장식했다.

과연 형사법의 성범죄 부분은 어떤 모양인가. 법을 보면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간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저항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한 정도가 아니면, 또한 질 삽입이 아니면 강간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돼 있다. 이럴 경우 한국은 “강제추행”으로 보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강간”으로 규정한다. 그 외 성전환자의 경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아내강간 또한 강간이 아니라고 돼 있다.

남성편향에 대해 그 동안 사회문화적으로 높아져온 인식들이 법의 영역에서는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런 경직된 조항들은 저자의 합리적인 접근을 통해 대부분 그 정당성을 잃고 있어, 읽다보면 속시원한 대목도 많다. 이를테면 “현재의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모순된다”는 것이나 “아내강간의 불인정은 남성편향의 과소범죄화”이며, “강간죄의 친고죄 규정은 범죄인에 대한 과보호이며 피해자 보호라는 원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라는 지적들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내 책이 주류 형사법학계로부터 ‘여성편향’이라 비판받을지도 모르고, 여성주의 진영 일부에서는 여전히 ‘남성편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라며 우려했다. 하지만 이어서 “어떠한 방향에서든 많은 질정을 고대”한다고 덧붙이고 있어 학자들의 관심이 형사법의 성편향을 고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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