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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여전히 유효한 담론”
“민족은 여전히 유효한 담론”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3.04.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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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염무웅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범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저항적 지식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지도 30년이 돼갑니다.

“해방 후 문인들이 집단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한 최초의 사건은 아마 1974년 1월 6일 ‘개헌청원지지 문인 62인 선언’일 것입니다. 박 정권이 ‘유신’이란 헌법파괴행위를 자행한 이듬해 초겨울부터 장준하 선생을 중심으로 유신 개정 운동을 전개했고 문인들은 이를 지지하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박 정권은 이에 긴급조치 제1호를 발동했고, 문학인들은 ‘자유실천문인 101인 선언’으로 맞대응했죠. 어느덧 세월이 30년 가까이 흘러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북핵문제라던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볼 때 지금의 평화도 여전히 언제 깨질지 모르는 취약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문학인 101인 선언’, 덕성여대 교수직 해직, 해직교수협의회 결성, 창작과비평사 발행인 역임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많이 겪으셨는데, 돌이켜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교수 재임용 제도가 생긴 뒤 첫 사례로 덕성여대 해직을 겪었습니다. 그 때부터 학교출입이 통제되고, 학생들 만나는 것이 금지됐습니다. 어느날 졸업반 학생 두 명이 ‘창작과 비평’ 사무실로 찾아왔기에 무심코 함께 저녁을 먹었지요. 후에 알고 보니 그날 사은회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사은회를 하면 여대생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서 큰절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지요. 학교를 떠나있던 그 4년 동안 고생스러운 점도 많았지만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을 사귀고 인생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가두시위를 벌이셨습니다. 

“50여년 전 6·25전쟁부터 베트남전,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모두 다르고 전개과정도 아주 상이하지만 나는 이 전쟁들이 모두 미 제국주의의 세계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침략학살행위라는 본질적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라크전쟁은 한국전쟁의 연장선 위에서 봐야 합니다. 이라크 민중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고통이고, 세계 민중의 고통입니다. 지구에서 제국주의가 영원히 종식될 때에만 항구적인 평화가 이룩될 텐데 지금 미국정부는 종말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월러스틴 같은 학자는 20세기적 질서의 붕괴가 이미 1968년에 시작됐다고 보지만요.
다양한 시민운동의 성장으로 오늘날 지식인의 사회적 참여는 얼마간 빛이 바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발빠른 대응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최대한 전문성을 발휘해 이론적 자원을 공급하는 것은 지식인의 업무입니다.”

△ ‘민족’이라는 개념이 도마에 오르거나 다른 화두에 밀려 점차 생기를 잃고 있는 가운데, ‘민족문학’의 의미와 작가회의가 재정립해야 할 정체성은 무엇이겠습니까.

“6·25전쟁이나 이라크전쟁이나 모두 민족문제의 세계사적 연관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소위 ‘세계화’ 담론이 지배하는 영역에서의 ‘민족’ 담론의 쇠퇴는 그 자체가 해결돼야 할 민족적 과제의 일부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민족’ 개념은 허다한 부정적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 유산들 중에는 봉건체제가 물려준 것도, 식민지시대가 남긴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치열한 극복과 청산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차원에서의 ‘민족’ 비판이 제국주의 외세의 반민족적 음모에 악용돼서는 안되지요. 우리의 민족문학은 ‘민족’ 개념의 이런 중층적 복합성을 늘 예민하게 의식하고 전세계 민중들과의 연대를 확고히 하는 가운데 고유한 전통의 아름다움 또한 지켜나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 20여년간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셨습니다. 지방과 서울간, 지방과 지방간 교류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의제로 채택된 지방분권이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실현돼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납니다. 서울 집중의 완화는 수십년 걸려서라도 이룩해야 할 민족사적 과업입니다. 물론 지역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각종 견제장치가 동시에 활성화돼야지요.”

△ 작가회의 이사장 외에, 창작과 비평 편집위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이사, 영남대 교수직까지 맡고 계신데,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건강에 늘 유의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거의 수도사 같은 절제생활을 합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재미있는 책들이 요즘 점점 더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걸 조금밖에 못 읽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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