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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 관리정책을 진단한다(2) : 재해관리정책
수자원 관리정책을 진단한다(2) : 재해관리정책
  • 심재현
  • 승인 2003.03.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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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道전담방식 홍수정책 개선, 국지성 집중호우 대책 세워야

지난 1959년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라호 태풍과 이세만 태풍이라는 역대 최대의 태풍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됐다. 이후 두 나라 모두 자연재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똑같이 상위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각각 풍수해대책법과 재해대책기본법이다.

같은 시기에 동일한 개념의 법을 제정했지만 두 가지 법의 근본적 패러다임이 상이했기 때문에 이후 완전히 다른 치수정책으로 고착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 당시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경제적 궁핍 때문에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직접적으로 무상지원을 할 수 있도록 재해구호의 원칙을 설정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은 40여년이 지나 경제적인 상황이 바뀐 지금도 통용 되고 있으며, 이제는 재해가 발생하게 되면 보상과 배상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국가 지원범위를 확대하라는 요구가 일상화되고 있다. 국민이 자주적으로 일선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조치조차 찾아보기 어렵고 사후의 보상에 관심을 가지게 한 원인중의 하나를 국가가 제공한 셈이다.

이에 따라 최근 풍수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피해의 원인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자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고 하고, 혹자는 1천년에 한번 올 정도의 이례적인 천재로 불가항력적인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국가의 무상지원범위가 가장 넓음에도 특별재해지역을 선포, 지원범위를 더욱 늘리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재해대책기본법을 최상위법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치산치수긴급조치법을 제정해 중장기적인 치수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당시 우리나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유사한 개념의 치산치수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치수목표를 설정, 단계적으로 실천하고 있으며, 연간 3조엔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현재는 제8차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국가는 지속적으로 치수예방사업에 예산을 투입하고 각종 관련법령을 정비해 국민의 불편이 없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국민은 이를 이해하고 조그만 불편은 감내하는 체계로 치수정책이 이뤄지고 있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와 같은 극적인 대비는 예방, 대응, 복구라는 일련의 재해대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데, 가장 커다란 이유는 지금까지의 재해대책은 중앙정부의 주도하에 일률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법적인 개념상의 문제점 이외에도 과학적인 수방정책의 근간이 되는 연구개발에 대한 미흡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과학기술에 투자한 예산은 총 5조1천억원이지만 방재과학기술을 위한 관련 예산은 이중 불과 0.1%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수해로부터 안전한 정책실현은 먼 나라의 일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하도전담방식의 홍수정책은 반드시 개선돼야 할 문제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처럼, 유역에서 홍수량을 일부 분담하도록 해 하천에서의 홍수량 부담을 경감시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빗물의 일부를 발생한 지역의 건물과 연못 등에 저류시키거나 지하로 침투될 수 있도록 하는 우수유출저감시설의 설치확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관계법령의 정비가 시급하다.

그러나 이런 세부 개선방안을 강구하기에 앞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치수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해마다 크고 작은 홍수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이재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나 공공시설의 복구위주 정책을 사전예방정책으로 전환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예산투자 우선 순위의 재조정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치수정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 전 미국 내셔널 아카데미 프레스에서 연재한 방재정책 시리즈는 매우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패러다임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주장처럼 근대화 속에 내재돼 있는 위험사회 속에서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길은 해마다 갱신되고 있는 국지성 집중호우에 대처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기술개발과 치수정책의 투자우선순위 조정 등 인간위주의 개발정책이 아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성찰적 개념으로의 방향전환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고 원인규명도 없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전문가는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그런 아쉬움은 20세기의 구태의연한 유물로 남겨뒀으면 하는 바램이다.

심재현/국립방재연구소,연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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