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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처리 없는 미완의 프로젝트에도 ‘별말없는’ 시스템?
영수증 처리 없는 미완의 프로젝트에도 ‘별말없는’ 시스템?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3.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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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 : 독자제보로 확인된 학진의 허술한 연구비 관리

매년 학진이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다 보니, 모든 예산 집행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제시하는 의견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수많은 연구과제에 비해 지원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뒤늦게 연구비 관리가 소홀한 사례가 밝혀져, 대학과 학진의 연구비 관리 문제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연구비, 연구소발전기금으로 사용했다”

1996년에 있었던 학진의 중점연구소지원사업 프로젝트 중의 하나인 ‘대학영어교육의 개선방안 연구’가 바로 그 사례이다. 서울의 K대 교수인 A교수가 총괄 책임자였고, B교수와 C교수, D교수가 함께 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 학진에 서류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완성된 연구 결과로 등록돼 있다. A교수는 1998년에도 중점연구소지원사업으로 2차 지원을 받았으며, 이 연구에는 C교수와 E교수가 참가했다.
현재 B교수만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나머지 교수들은 같은 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B교수는 “연구비 2천만원 중에 8백만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영수증은 받은 금액만 처리했지요. 쓰지도 않은 돈을 어떻게 가짜 영수증을 만듭니까”라고 말했다. 학진에서 지원한 연구비는 개별 연구자에게 다 지급되지도 않았고, 영수증을 처리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 1차로 시행된 프로젝트는 4명이 한 팀이 돼 공동으로 연구비를 신청했지만, 각자의 소주제를 가지고 개별연구를 하는 형식이었다. 이때 각 연구자들이 신청한 연구비는 1천5백만원에서 2천만원 가량으로 총 연구비는 7천만원 가량이었다.

각 연구자들이 개별 주제를 진행했기 때문에 학진에서 대학으로 넘어간 연구비는 대학이 4인의 연구자에게 각각 지급하는 것이 원칙. 그러나 A교수가 연구비를 일괄 지급받았고, A교수는 다른 3인의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나눠줬다. 그 과정에 B교수는 연구비의 40%, 8백만원을 받지 못했다.

D교수는 “이미 다 끝난 연구”라며 말하기를 꺼렸고 “연구비를 다 받은 걸로 해 두죠”라며 애매한 답변을 남겼다. A교수는 이것에 대해 “각 연구과제의 예산을 조금씩 갹출해 연구소의 발전기금으로 조성했다”라고 밝히면서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연구소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다른 연구자들과 합의해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연구비와 다른 3명의 연구자들의 연구비에서 일정금액을 떼어냈다는 것. A 교수는 이 발전기금으로 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 개최, 연구소의 자체 연구비 등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연구에 쓰지 않은 예산들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연구비를 관리하는 K대 연구산학협력처에 확인해 본 결과, 이 프로젝트의 연구비 정산은 그야말로 ‘애매한’ 상태에 있었다. B교수의 프로젝트는 5백만원 가량의 영수증이 제출되지 않은 상태였고, C교수의 프로젝트는 인건비에 해당하는 부분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벌써 6년이 지났건만 연구비 정산이 빠진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아있었다.

‘1천5백만원’ 모자란 정산내용

취재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또 드러났다. 1, 2차로 나눠진 프로젝트에서 B교수는 1차 프로젝트만 시행하고 다른 학교로 떠났다. 원칙적으로는 다른 학교로 떠나도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B교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지 않았다.
결국 1차 프로젝트는 4명이 진행한 데 반해, 2차 프로젝트는 연구자 3명이 진행했다. A교수는 “2차 프로젝트 때 B교수에게 지급했어야 할 연구비 1천만원 가량 역시 연구소 발전기금으로 사용했다”라고 밝혔다. 즉 1, 2차 합쳐서 1억원이 넘는 연구비 중 상당량의 금액이 연구소발전기금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학진이 지급한 연구비가 남으면 다시 학진으로 반납해야 한다.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더라도, 연구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유용이다.

K대 연구산업협력처 담당자는 규칙적으로 연구비 정산 공문을 해당 교수에게 보낸다고 말을 했지만, A교수는 “연구처에서 지금까지 별말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또 문제가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학의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학진 역시 관리를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연구비 집행에 대한 ‘실사’ 전담반이 없다보니 각 연구지원팀에서 인원을 갹출해 실사를 나가고 있다. 실사를 통해 연구비 유용 사례가 밝혀졌는지 또 그 사후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대체 누가 이런 상황을 책임져야하는가.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

학진이 매년 연구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투명한 연구비 운영은 연구자와 대학, 학진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도는 이 부분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이번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연구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또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조속한 조치와 함께 이런 과정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를 재점검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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