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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1903년, 근대 문인들의 탄생 1백년 맞이
[테마]1903년, 근대 문인들의 탄생 1백년 맞이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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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굴곡 속에 새겨진 글과 정신…功過 조명 기대
지금으로부터 1백년 전. 조선 왕조의 끝자락이자 개화기의 첫머리에 선 1900년대 초기는 그야말로 변화와 격랑의 시대였다. 그 가운데 1903년은 유난히도 많은 문인들이 태어난 해로 꼽힌다. 이들은 넘실거리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한국 현대 문학의 기틀을 잡는 초석이 됐던 인물들이라 그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은 1903년 전남 강진에서 출생했다. 1920년대 초반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시에서 1920년대 중반의 경향시를 거쳐 1930년 ‘시문학’ 잡지 간행을 계기로 인간 내면의 순수성을 자연으로 표출하는 등 순수서정의 세계를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게 서정을 노래한 김영랑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이러한 면에서 뚜렷한 차를 보이고 있다.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국문학)는 “지금 순수시를 창작하는 이들에게 있어 김영랑 시인은 순수성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모범적 사례로, 현실적 발언에 무게를 두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현재 김영랑 시인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이은상의 호는 鷺山. 1903년 경남 마산서 출생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조 시인이다. ‘성불사의 밤‘, ‘장안사’, ‘사랑’ 등 가곡으로 많이 애창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은상의 시조는 운율미가 빼어나다. 문학박사로서 이화여자전문학교, 청구대학, 서울대, 영남대 등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우리 나라의 산수를 아끼기도 해 해방 후에는 국토애, 조국애를 불러일으키는 시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일적 색채가 진한 잡지사의 주간으로 근무하는 등의 행적으로 친일 시비가 불거져 나온 바 있어 과거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반달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동요작가 윤극영도 1903년에 태어났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하는 ‘반달’을 비롯해 ‘따오기’ 등의 동요를 만든 윤극영은 동요 안에 일제 시대에 겪어야만 했던 망국의 한을 담기도 했다. ‘까치 까치 설날은’, ‘꾀꼬리’, ‘고기잡이’ 등의 동요는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불려지는 베스트셀러다.

지난 2월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이 달의 인물’로 뽑히기도 했던 无涯 양주동 역시 1903년생. 1937년 ‘향가의 해독, 특히 원왕생가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 일본 학계의 아성을 극복하고 향가 연구분야에 독보적 위치를 확보한 그는 1942년 ‘조선고가연구’, 1947년 ‘여요전주’ 등을 통해 신라 향가와 고려가요연구의 기초를 확립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생예찬’의 작가 김진섭, 평론가 박영희와 벌인 ‘소설 건축설 논쟁’으로 유명한 김기진, 월북 문인 송영과 윤기정, 이상과 버금가는 심리주의 소설로 인정받은 ‘심문’의 최명익 모두 1903년이 배출한 걸출한 문인들이다.

한편 이러한 문인들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4월 24일, 25일에는 대산문화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직무대행 이시영)의 공동 주최로 ‘탄생 1백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세종문화회관 및 서울 일대에서 개최된다. 이번 해에는 ‘논쟁, 이야기 그리고 노래’라는 주제로 1903년 출생 문인들의 업적과 생애, 문학세계 등을 조명할 예정이다.

●1903년 해외에서는

‘1984년’, ‘동물농장’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조지 오웰 역시 1903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경찰관 생활을 시작하나 곧 이 직업에 염증을 느끼고 1927년부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러시아 혁명을 바탕으로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으로 명성을 얻게 된 오웰은 1948년 빅 브라더가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1984년’을 써 암울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했다.
1백년 전 자신의 예술세계를 시작했던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예술세계를 마감했던 이도 있다. 1903년에 자신의 생을 정리했던 폴 고갱이 대표격. 1848년 생인 고갱은 원주민의 건강한 인간성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로 유명하다. 문명에 때묻지 않은 생활을 찾아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가게 되면서 고갱은 원시의 건강함에 매료되고 이는 그대로 그의 그림에 반영된다. 네덜란드의 화가 고흐와 함께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으나, 뜻이 맞지 않아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리는 사건으로 헤어지게 된 것은 고갱의 유명한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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