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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계질서에 적극 개입할 수 없으면 공황 계속된다”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적극 개입할 수 없으면 공황 계속된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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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 서울사회경제연구소 10주년 심포지엄 ‘신정부의 경제개혁과제’

코스닥지수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국내경제가 연일 바닥을 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2차례에 걸쳐 다수 대기업의 분식회계 가능성을 추론, 제2의 IMF설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경제정국은 위기를 맞았는가, 아니면 일부세력의 과장된 흔들기인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경험적이고 분석적인 경제학 논문들은 이런 급박한 현실에서 일견 너무 여유로와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온갖 음모론이 횡행하는 상황에서는 냉철하게 구조적인 측면을 뜯어보는 작업 역시 절실히 필요한 법. 도올의 말마따나 “국제정세의 華嚴적 구조” 속에 맞물린 한국호의 톱니바퀴적 현실은 무엇인가. 지난 14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공동학술심포지엄 ‘신정부의 경제개혁과제’에서 기대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정부에서도 관심 보인 학술대회

재정, 조세, 기업, 노동, 사회복지 등 경제관련 5개 분야에서 김대중 정부의 성과와 과실을 짚고, 신정부가 해야할 일들과 방향을 제시한 이날 학술대회에는 정부측 관심이 대단했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김대환 전 인수위 간사 등 관련인사들이 참석해 학계의 중론을 경청하고자 했고, 5시간 동안 적잖은 내용과 합리적인 지적들이 오갔다.

다소 차분하게 진행된 토론에서 충격파를 던지는 주장이 터져나온 건 오후 느즈막해서였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종합토론 발제문에서 1997년 12월의 공황이 도덕적 해이와 정경유착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에 고유한 단계적 현상이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특수상황은 그 공황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요인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동안의 경제낙관론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었다.

국내에서 아무리 잘해봐야, 해외시장에서 물건이 안 팔리면 과대투자 등 큰 덩치 때문에 심각한 부메랑 현상이 온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국 불안이 웅변하고 있듯, 대외변수의 국내영향에 대한 분석,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면 공황은 계속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었다.

물론 이날 토론이 이런 문제의식 위에 놓인 것은 아니었고, 세계표준 및 주주헤게모니를 강조하는 시장주의자와 평등에 우선권을 두는 시장불신론자 간의 입장 대립이 확연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그것은 ‘경제발전학회’와 ‘사회경제학회’ 회원들 간의 대립이기도 했는데, 이재은 경기대 교수는 ‘재정과 조세’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 특히 재정분권을 통한 평등주의를줄곧 강조한 반면, 강명헌 단국대 교수의 경우 김대중 정부 때 정부가 과도하게 나서는 바람에 시장이 원하는 자율적 구조조정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총액제한이나 계열분리 등 현정부의 의견이 관철되는 부분에서 결국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기업의 짝패인 금융기관의 내부경영에 정부가 개입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개입 반대론자로 나선 장세진 인하대 교수의 경우 정부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주는 것 이상으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반면, 찬성론자는 민간 은행이 외국에 헐값으로 팔려나간 사례들을 들며 은행을 포함한 민간화한 기업들을 다시 공기업화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유는 1조4천억이라는 SK글로벌의 부풀린 자산에서 드러나듯, 유사사태에 대비해 일정 비율은 정부가 확보해 투명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럭비공이 어디로 튈 것인지를 알아맞추는 시장 속성 분석에서는 통찰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이재은 경기대 교수의 발제문은 국가의 재정현황과 앞으로의 세수확대의 방향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한 노작이라 할 만하다.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조세부담 불공평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인 것이라 지적하며, “이것의 개선은 조세문제에 관한 노동계층의 인식과 정치적 역량의 성장여하”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들도 제기됐다.

시장론자와 시장불신론자 입장차 뚜렷

사회통합과 사회기본질서확립,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대 등이 시급하다는 점과 맞물리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는다. 어차피 세계시장에 잡아 먹힐지 아닐지의 여부가 불투명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국제표준화밖에 없다면, 민주주의의 가치라도 추진해나가는 게 맞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이 교수가 제기한, 세금을 중앙에서 거둬 밑으로 내려보내는 현재의 세수구조를 자치정부에서 자율적으로 거두게 바꾸자는 재정분권 문제제기는 새정부가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과 경제가 동반이동될 때 진정한 분권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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