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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그가 남긴 자리(3)] 송상용 한양대 석좌교수(철학)
[인터뷰 - 그가 남긴 자리(3)] 송상용 한양대 석좌교수(철학)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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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사학회 창립 큰 기여…“과학 기술의 본질 규명이 평생의 업이죠”

서울 시내의 산들이 두루 내려다보이는 구기동의 한 빌라를 찾아간 때는 지난 14일 늦은 오후였다. 지난 2월 한림대에서 정년퇴임하고, 3월부터 한양대 석좌교수로 강의를 하게 된 송상용 교수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초행길이라 굽은 골목을 걸어가면서 내내 잘 찾아가고 있는지 고민스러울 때쯤, 빌라 복도에 가득 쌓인 책을 싼 박스를 찾을 수 있었다. 복도뿐만 아니라 집안 가득 쌓인 책들과 인쇄물들은 그 집의 주인이 ‘학자’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듯 했다.

△퇴임 후 근황이 궁금합니다.

“2월말에 퇴임하고, 춘천에 있던 책을 서울로 가져왔다. 정리를 해야하는데, 책이든 신문이든 잘 안 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쉽지 않다. 한림대에서 일주일에 한번 강의하고, 한양대에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목을 두 강좌 맡고 있다. 생활 자체가 퇴임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강의하고 학회일을 보고 있다. 그래도 오랜 세월 있던 학교를 떠나고, 또 임시직 교수로 바뀌었으니 달라졌다면 달라진 셈이다. 이전에는 사학과 소속이었는데, 이번에는 철학과 소속 교수가 됐다. 철학과로 소속되기는 처음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과학사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과학사학회의 토대를 닦는 것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과학사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고 활동을 했지만, 매스컴에서 주목하는 인기를 끈 스타학자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글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잡지에 주로 쓴 것 같다.(웃음) ‘과학대중화’라는 말이 근래에 와서야 많이 알려졌지만,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주장해 왔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점차 가속화되는 데 그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는 예전보다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처음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만 해도 과학사학회는 창립 이후 휴면 상태였다. 과학사학회 뿐만 아니라, 당시 대학에 과학사 관련 교과목이 개설된 학교도 거의 없었다. 강의 다니면서 개설을 건의했다. 전문학자들이 몇 되지 않았고 일반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행사를 꾸며 많이 알리는 것이 주력했다. 그때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일반인들의 인식도 부쩍 높아졌다. 과학사학회 간사로만 20년을 활동했는데, 나중에 회장도 지냈지만, 그 때 심부름하면서 발로 뛰던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지금도 과학사·과학철학을 하는 젊은 학자들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퇴임행사는 따로 하지 않았고, 과학사·과학철학 분야의 제자와 후배들에게는 따로 술 한 잔 샀다. 모두 몰라보게 성장했고 또 활동도 잘 하고 있어 고맙다.”

△화학과 철학 그리고 과학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까닭에, 과학과 철학, 역사학에 두루 관계 맺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화학과에 입학했다. 애초부터 생명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까닭에 생화학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시절에 문학부의 강의를 다양하게 들었는데, 그 때문에 생각이 복잡해져 실험실에서 평생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시 철학과로 학사편입 하면서 과학과 인문학 둘을 매개할 수 있는 학문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두 학문 다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과로 편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대한화학회 회원으로 가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런 관심을 소화해줄 과정이 개설되지 않아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시절에 많은 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 반대, 인종차별 반대와 함께 대학투쟁, 반문화운동이 겹친 격동기였다. 네이팜탄, 고엽제 등의 무기가 다 대학 실험실에서 개발됐다는 사실과 인종 차별의 근저에 깔려있는 것이 우생학의 관점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그전까지는 무조건 믿었던 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과학기술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내가 여러 가지를 집적거린다고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관심은 흩어진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 내 평생의 과제이다. ‘과학기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그 참 모습이 드러난다는 확신만은 갖고 있다. 그래서 내 과학철학 강의는 논리적 접근뿐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접근도 다룬다. 나는 과학사·과학철학은 과학기술학(STS)의 시각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직 이런 입장이 주류인 것은 아니다. 근년에 내가 열을 올린 생명윤리도 철학, 의학, 과학, 법학 등이 어우러진 종합분야이다. 내가 관심가지는 많은 영역들은 사실 하나의 문제로 집약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각 영역을 자유롭게 오갔다.”

△학자로서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이 시점에서 학자로서 나를 평가한다면 실패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학들에게도 열심히 연구하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지나고 보니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니 할 일이 많다. 진화론, 과학혁명의 역사서술, 쿤을 비롯한 역사적 과학철학 등을 계속 연구해 매듭을 지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논문을 많이 발표하지 못했다. 많은 글을 쓰기는 했는데, 논문과 대중적인 글 사이에 있는 수준의 글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논문을 쓰는 것에 까다롭다. 논문을 쓰는 중 조금이라도 명료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논문으로 제출하지 않았다. 앞으로 미완으로 남겨진 논문들을 새롭게 정리하고 발표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평가 때문에 가볍게 쓴 글, 성의가 부족한 논문 등을 업적으로 제출하는 현 학계의 풍토가 우려스럽다.
학회활동은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학회만 해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한국과학철학회, 한국생명윤리학회 등이 있다. 이들 학회가 성장하고 좋은 학자들이 배출될 때 자부심을 느끼면서 지냈다. 또 철학연구회장으로 있었던 1990년대 초반부터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철학연구사 정리에 착수한 것과 또 북한 학자들과 교류해 주체철학 연구를 하게 한 것도 뜻깊었다. 특히 북한 철학 자료를 찾기 위해 10년 넘게 일본 조선대학교를 수시로 드나들고, 한민족철학자 대회에 북한학자를 초청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남북학술교류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러나 아직 남북학술교류는 미진하다. 정부와 학계의 적극적인 지원과 추진이 필요하다”

△현재의 대학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진단이 있습니다.
“우선 느끼는 것은 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인기가 없다는 이유도 있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의욕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강의에 대한 열의가 예전만 못하다. 1970년대에는 강의를 열심히 했고, 또 스스로도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의 질이 계속 내려가면서 강의를 하는 것이 부담일 때가 많다.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대단한 자부심이어야 하지 않는가. 대학을 졸업해야 교양인도 직업인도 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대학이다. 적어도 자기가 전공한 분야에 대해서만은 전문가가 돼야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복수전공과 부전공의 일반화, 학부제의 시행 등이 대학교육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궁금합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내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외부활동을 줄여나갈 때인 것 같다. 당장 해야할 일은 토마스 쿤의 ‘본질적 긴장’을 번역하는 것이다. 예정보다는 많이 늦어졌는데, 하루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 성격이 치밀한 편이다. 번역을 하면서 모르는 게 나와도 쿤이 죽어서 물어볼 수도 없고,(웃음) 독어판, 일어판 다 구해서 꼼꼼히 보고 있다. 이것이 끝나면 논문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학회는 과학사·과학철학을 과학기술학으로 확장·발전시키는 쪽에 힘을 실어 주고 싶다. 후배들 뒤를 봐주고, 또 동아시아 STS네트워크를 통해 일본, 중국학자들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남겨진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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