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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 낙성대 경제 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국의 장기경제통계’
학술대회 : 낙성대 경제 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국의 장기경제통계’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3.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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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은 정체시기였다”…자본주의 맹아론 뒤집힐까?

“한국의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은 허상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제시하고 있어, 설득력을 더해 주목을 끌었다. 더군다나 이 두 이론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오던 이론인 까닭에, 학계 내부로 가해지는 비판이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낙성대경제연구소(소장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한국의 장기경제통계: 17~20세기’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수량경제학의 방법론에 입각한 통계수치를 제시하면서 ‘내재적 발전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을 뒤집고 있었다.

“19세기 조선의 경제는 위기였다”
내재적 발전론을 크게 압축해 본다면,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자생적으로 키우고 있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말살 당해 강요된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는 것. 그러나 이 와중에도 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와 故 박현채 교수 등은 민족경제를 형성하려고 했던 한국인의 투쟁을 중심으로 한국사의 전개를 서술해 왔다. 비록 내재적 발전론이 학문적 엄밀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각종 국정 교과서 및 한국사 서술이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 맹아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는 것은 기존의 국사학계의 통설을 과감히 뒤집는 셈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이런 통설을 과감히 뒤집었다.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지난 수년 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인 17세기 이래 20세기 초반에 걸친 각종 경제학적 수치를 토대로 연구한 결과는 19세기 조선의 경제는 정체와 위기에 빠졌다는 것. 자본주의로의 발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발표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차명수 영남대 교수(경제학)와 박희진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이 ‘족보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인구변동’을, 박인택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조선후기 서울의 숙련 및 미숙련노동자의 임금’을, 김재호 전남대 교수(경제학)가 ‘농촌이자율의 장기변동’을, 박기주 서울대 강사(경제학)가 ‘재화가격의 장기추이’, 이헌창 고려대 교수(경제학)가 ‘우리나라의 논 가격과 생산성’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다시피 이들의 작업은 임금, 이자율, 재화가격 등 경제 각 분야의 변동을 고찰한 것이다.
연구 내용을 정리해 보면, 18세기는 인구와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조선은 이 시기에 일본과 중국간 무역을 중계함으로 많은 양의 은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반면 19세기에는 인구와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경제는 정체를 거듭하고 결국 위기에 빠졌다. 이는 수량경제적의 접근으로 밝혀졌다. 조선은 이미 19세기에 삼림황폐화가 진행돼 전국 도처의 산야가 헐벗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농업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다. 전라도 지역의 농촌 장시 횟수는 1770년부터 1830년 사이에 2백15회에서 1백88회로 적지 않게 감소해 불황의 도래를 알리는 지표가 됐으며, 1853년부터 1095년까지 하층민의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노동생산성의 하락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1810년경부터 출생률은 그대로인 반면 성인남자의 사망률이 증가해 인구감소 추세가 뚜렷해진다. 사망률 증가로 인한 인구 감소는 경제사정의 악화라는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영양과 위생 상태의 악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간 자본주의 맹아론이 실질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방대한 양의 실질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비판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촌경제의 정체는 당연한 역사적 사실
이번 연구를 이끌어 온 이영훈 교수는 “조선경제는 개항(1876년) 이후 외래자본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자신의 체제모순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그 원인으로 대일본 무역중단과 대중국 무역적자 심화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농촌사회의 정체현상은 세계곳곳에서 살필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이라며, “객관적인 연구 분석 없이 이해돼 왔던 관념적인 믿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3년간의 계획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17~19세기 사이의 경제변화 추이를 보충해서 진행하는 한편, 내년에는 1905~1945년 동안의 수량경제사를, 내후년에는 1945년 이후의 수량경제사를 점검할 예정이다. 4세기에 걸쳐 거시적인 안목으로 경제사를 아우르는 관점을 수립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학계의 지배적인 이론으로 논의돼 왔던 ‘자본주의 맹아론’이 실질적인 생활에 근거해 접근해 본 결과, 19세기 조선에서는 자본주의의 태동을 살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들의 연구에 대해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지키고 있는 기존의 연구자들의 어떤 반론을 제기하고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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