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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깊이 읽기>현대철학사상 분야 :『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 (리저호우 지음, 김형종 옮김)
<중국깊이 읽기>현대철학사상 분야 :『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 (리저호우 지음, 김형종 옮김)
  • 조경란 성공회대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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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신유학에 대한 고찰 돋보여

중국이 다시 제국의 면모를 되찾고 있다. 냉전의 한 축으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말이다. 중국이란 후진국을 발판 삼아 무역수지 흑자를 누리다가, 이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그 공룡에게 잘못하면 잡아먹힐 지도 모르는 게 한국의 현실. 이런 불안감이 현재 중국 알기 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선정주의와 개론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요동치고 있는 욕망, 동요, 긴장, 갈등 같은 것을 남김없이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들의 사상적, 정치경제적 변천사를 먼저 들여다보는 이유다. 앞으로 교수신문 서평면은 이번의 ‘중국특집’처럼 하나의 테마를 잡아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하는 기획을 늘려나갈 계획이다.<편집자>

중국의 현대사상을 5·4운동(신문화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데엔 별 이론이 없을 듯하다. 중국 사회의 강고한 봉건성에 대해 평등과 자유, 정의 등 민주주의의 문제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기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현대사상은 민주주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등장하고 얼마 안돼 반제 민족주의가 함께 급부상하면서 복잡하게 전개된다. 과학과 민주를 표방하면서 반봉건을 타겟으로 연대했던 신문화운동 진영은 5·4를 기점으로 아나키즘을 포함한 서양 근대사상의 다양한 사조들이 자유주의(또는 무정부주의) 대 사회주의(민족주의)로 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이 두 사조는 이후 상호 교차하면서 중국 현대사상의 양대 흐름을 이룬다.

중국은 서구적 의미의 계몽 원한다

물론 서양 근대 사조에 의한 중국의 전통사상 비판에 위기의식을 갖게 되면서 중국 문화의 가치를 역설하려 했던 현대 신유가의 문화민족주의 사조도 중국 현대 사상의 전체 맥락에서 빠질 수 없다. 특히 타이완에서 그 맥통을 이어갔던 자유주의와 문화민족주의도 사회주의와 공히 연구 대상의 반열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는 물론 두 사상 자체의 성격 규명을 위해서도 중요하겠지만 중국 사회주의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중국사회주의의 성격은 어떤 면에서는 사상적 카운터파트로서의 자유주의, 문화민족주의와 상호 각축 속에서 형성된 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반제 반봉건의 사회적 상황에서 자유주의가 갖는 유약성 때문에 민주주의 문제조차도 사회주의 진영이 떠맡아야 되는 등의 사례가 빈번했다. 사실 중국 현대사상의 이런 세 흐름은 5·4로부터 분기하게 되지만 이미 동서 문화간의 충돌이 시작된 19세기 말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세기 말 새롭게 형성된 세계 체제와 그 속에서 중국이 갖는 힘의 열세를 인정해야 된다는 객관적인 인식은 중국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중국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미래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고심하게 만들었고 이 세 사상은 각각 그 진단의 결과인 셈이다. 

국내에 나온 책 중에는 이런 중국 현대사상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은 존재하지 않지만 두세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선 우리에게 미학사상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리저호우의 ‘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1992)에 대한 일독을 권한다.

이 책에 실린 ‘후스, 천두슈, 루쉰’은 중국현대사와 결부시킨 나름의 인물평이다. 자유주의를 견지한 후스와 맑스주의를 표방한 천두슈의 중국 역 사에 대한 낙관주의에 비해 계몽의 제창과 초월을 동시에 외쳤던 루쉰의 비관주의를, 구체적인 역사 내용을 갖기 때문에 강인한 힘을 갖는다고 평가한 대목은 리저호우가 중국 현대사의 본질을 꿰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계몽과 救亡의 이중변주’는 중국 근현대사의 제국주의적 질곡 때문에 애국주의적 구망이 문화적 계몽을 압도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이것으로 그는 중국에 필요한 것은 아직도 못다 이룬 서구적 의미의 계몽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1980년대 중국 사상계에 던지고자 했다. 또 장문의 ‘중국의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의 초기 수용과정부터 그 전개과정을 비교적 총체적이면서도 가감없이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실패를 전제하고 기술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그것을 단정한다 하더라도 그 역사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의 전 역사과정을 다시 새롭게 인식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리저호우의 책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완해줄 내용을 갖춘 것으로 천성림의 ‘근대중국 사상세계의 한 흐름’(2002)을 권할 만하다. 리저호우의 책에서는 빠졌지만 중국 현대사상의 문제에서 도저히 누락돼서는 안 되는 아나키즘의 문제와 신유학의 문제를 각각 류스페이, 량수밍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나름의 성숙된 고민이 담겨있는 좋은 책이기 때문에 보완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자체로도 훌륭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키즘·신유학에 대한 고찰 돋보여

현대 신유학을 1대에서 3대까지 총괄해서 읽고 싶다면 지금으로선 정지아둥의 ‘현대신유학’(예문서원 刊, 1993)이 독보적이다. 또한 사회진화론,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 앞에서 말한 계몽기의 압축된 30년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졸저 ‘중국근현대사상 탐색’(삼인 刊, 2003)도 참고할만하다. 부끄럽지만 이 책은 동과 서, 전통과 근대의 결절점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 개혁개방 이후의 현대성 문제까지 1백년의 사상적 역정을 일관되게 해석해내려는 내 작은 고민의 응축이다.

좀더 전문적인 이해를 구한다면 쉬지린이 엮은 ‘二十世紀中國思想史論’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20세기 사상 전반의 문제를 다룬 논문집으로 상권은 5·4부터 관념, 논쟁 사조로, 하권은 자유주의, 문화보수주의, 급진주의로 구성돼 있어 중국 현대사상의 주요문제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 중국 사상계의 중심 이슈들까지 알고 싶다면 각각 ‘신좌파’와 ‘신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왕후이의 ‘死火重溫’과 친후이의 ‘問題與主義’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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