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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비 의존도 높지만 내도 그만 안 내도 그만?
학회비 의존도 높지만 내도 그만 안 내도 그만?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3.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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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동향 :갈수록 빠듯한 학회 살림, 학회들 운영 어떻게 하나
손에 꼽히는 굵직한 학회의 정기총회. 작년에는 행사장 내에 있는 연회장에서 최소한 2만5천원짜리 점심을 ‘대접’했지만, 올해는 근처 식당을 예약했다. 1인당 점심식사 가격은 5천5백원. 불필요한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회장단이 외부지원을 끌어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에 변화를 주고 학회내실화를 꾸리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학회가 내린 최후처방은 5년 이상 학회비를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회원 자격을 박탈하는 것. 다시 회비를 납부하면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 정지’와 다름없는 처방이지만, 적어도 회비 미납에 대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지는 분명한 듯 했다. 이 학회는 바로 한국정치학회였다.

한국정치학회가 이런 선언을 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학회원의 2천명 중 50%만이 회비를 내고, 그 금액은 전체 예산의 10%에 불과하다. 연회비는 5만원. 외부 프로젝트를 따와야 하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학회의 경제적 자립도 고려할 시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전체 예산 중 학회비 비율이 낮은 학회들은 한국정치학회 뿐만이 아니다. 한국경제학회(회장 정창영 연세대 교수)의 경우, 지난 한해에 보고된 수입은 정기이월금을 포함해 2억8천만원 정도. 담당자는 “지난해에는 국제학술대회와 50주년기념행사 등 큰 행사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해 보다 많은 지출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 중에서 기관·도서관 등 단체회원이 낸 회비는 6천5백70만원. 개인회원이 낸 회비는 총 1천4백30만원에 불과하다. 개인회원의 1년 회비는 6만원이다. 종신회원을 제외한 개인회원 2천여 명 중 12%에 해당하는 2백40명 정도만이 회비를 냈다. 국제대회 개최와 학술지 발간 지원비로 2천5백만원을 지원 받았지만, 그래도 1억이 넘는 돈이 더 필요하다. 부족한 부분은 기부나 기업 협찬을 통해 충당됐다. 비교적 입김이 센 학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담자의 말을 빌리면 “지속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들 일부를 제외하면, 처음 가입할 때 회비를 내고 난 후에는 회비를 내지 않는다”는 것.

한국언론학회(회장 김민환 고려대 교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경비를 메우고 있다. 개인회원의 연회비는 5만5천원. 8백여명에 이르는 회원 중 70%만이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학회비는 총 3천만원 정도인 셈. 그러나 김광수 총무이사(고려대 언론학부)는 “이것으로 운영은 어림도 없다”라고 말한다. 한번 발행할 때마다 1천만원씩 드는 학회지를 6번 발행하고, 춘계추계학술대회에도 각각 1천만원씩 든다. 게다가 학회사무실을 운영하는데 드는 운영비와 인건비도 1년에 3천만원. 국제행사 등을 제외한 기본적인 운영에만 1억 이상이 들고 있다. 그래서 김민환 회장은 “외부 프로젝트를 통해 학회를 운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즉 각종 방송국이나 언론사가 의뢰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그 연구비의 15%를 학회운영비로 돌리고 있는 것. 5억원 이상의 프로젝트를 따와야 7천5백만원의 예산이 확보되는 것이다.

인문학 관련 학회의 경우 전체 예산 중에 학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비교적 높다. 그러나 전체 예산이 적다는 뜻도 된다. 당연히 회비 납부율도 높은 편이다. 국어국문학회(회장 서대석 서울대 교수) 심우장 간사의 말에 따르면 회원 2천5백명 중 평생회원 5백여 명을 제외하면 4~5백명의 회원이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평생회원 포함해 약 50%의 회원이 회비를 납부하고 있으며, 이 금액은 전체 예산의 40%에 이른다. 1년 회비는 4만원. 영어영문학회(회장 이영옥 성균관대 교수)의 상황은 좀더 나은 편이다. 역시 1년 회비는 4만원이지만, 2천명 가량되는 회원들 중 80%가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전체 예산의 50%를 넘어서는 드문 케이스이다. 한편 영어영문학회는 인문학관련 학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학회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두 학회 다 학진에서 지원하는 학술대회 개최 및 학술지 발행비가 예산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일반적인 운영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지만, 큰 행사가 있을 때는 힘에 부친다는 것도 공통적인 답이었다.

학계는 예산 규모가 큰 편이다. 회원 수 2만3천여명을 자랑하는 대한전자공학회는 1년 예산이 9억원에 이른다. 이공학 관련 학회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현재 등록된 회원은 2만 3천명이지만 이중에서 연회비를 내고 활동하는 회원은 4천명에 불과하다. 정회원의 연회비는 5만5천원. 결국 예산 중 회비의 비율은 15~16% 정도이다. 이안순 과정은 “점차 미납자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요즘은 1년 회비를 내지 않아도 회원자격을 중지하고 있다. 물가 상승뿐만 아니라 기업 협찬과 광고 수주도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기업협찬이나 동종 업계의 광고 수주로 편성된다. “임원진의 인맥과 무관치 않다”라는 것이 이 과장의 귀뜸.

학회가 재정적인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현재 학계의 풍토 속에서는 이것은 요원한 일이다.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예산을 충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정작 중요한 학회의 역할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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