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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쪼아내는 청각장애인 교수의 새 학기
편견을 쪼아내는 청각장애인 교수의 새 학기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3.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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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수 서울시립대 비정규직 교수(석조조각)

“안면이 있던 후배들이라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서야 긴장이 풀리네요. 아직 야외수업 전 이론 수업이 필요해 강의실 수업을 했어요. 그래도 할 만 한데요.”

첫 강의를 마친 오후, 인터넷 메신저에서 만난 신일수 서울시립대 강사(석조조각)는 환한 표정이었다. 아니,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화면에 부지런히 올라오는 한 글자 한 글자에는 첫 강의에 대한 벅참이 서려있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청각장애 때문에 강단에 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편견일 뿐, 장애인도 기회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잘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청각장애인 신일수 강사가 이번 학기부터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 강단에 선다. 그가 맡은 수업은 4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석조수업. 석조조각은 그가 제일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가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교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의사소통이 안되는데 강의가 되겠냐는 것. 하지만 신 강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실력과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학동안 틈틈이 강의에 필요한 설명, 자료 등을 파워포인트 파일로 만들어 놓았다. 일일이 직접 공을 들여 만들자니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아니다. 이론 공부도 빼먹지 않는다. 수업 중 겪을 수 있는 의사소통상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강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흐르고 있다.

신 강사와 같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운보 김기창 화백은 그가 미술의 길을 걷게 된 커다란 터닝포인트였다. 어렸을 적 신문에 실린 장애를 딛고 선 운보 선생의 기사는 그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준 것. 중학생일 적 어머니와 함께 충북 보은까지 내려가 운보 선생과 만났던 사건은 아직도 그의 기억에서 생생하다. 소탈하게 웃으며 손을 잡아주던 운보 선생은 이미 고인이 됐지만 아직도 자신의 마음 안에서는 살아있다고 말할 정도.

장애 그 자체보다 무서웠던 사람들의 ‘색안경’은 더욱 날카로운 독이 돼 가슴에 꽂혔다. 청각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아 입시의 고배를 연거푸 4번이나 마셔야 하는 등 장애인을 향한 편견과 배제의 독들은 켜켜이 쌓이고 사무쳐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석조작업을 좋아한다. 무거운 돌을 쪼아내면서 그 동안 가슴에 담고 있었던 한도 하나 둘 털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서정미를 담은 따뜻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신 강사. 학생들과 ‘실력’으로 더 깊고 따뜻한 예술적 교감을 일궈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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