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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 내 한국어 연구, 기준은 무엇인가
영어학 내 한국어 연구, 기준은 무엇인가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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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쟁점]
“이번 ‘영어학’ 연구 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의 실적을 계산할 때, ‘한국어’관련 논문을 포함시켰는지요?”.

지난 3일 학술진흥재단(이사장 주자문, 이하 학진)의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이다. 질문자는 한학성 경희대 교수(영어학). 한 교수의 질문은 ‘한국어’를 분석한 논문이 ‘영어학’의 논문실적에 포함되는지, 국제 ‘한국어’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 국제학술대회의 발표논문으로 평가받는지 여부였다. 한 교수는 이와 더불어 “ICKL(국제한국어학회)이나 격년으로 열리는 하버드 한국어 워크샵 등은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인데, 국제학술대회의 대우를 받는다면 이것은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라며 담당자의 답변을 요구했다.

‘한국어’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 ‘영어학’ 교수들의 실적으로 평가된다? 얼핏 보기에도 어색한 구도다. 언어학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언어이론은 보편적인 형식을 가지기 때문에, 무엇을 분석하는지에 따라 영어학인지 한국어학인지 구별할 수 있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한국어를 분석한 논문은 한국어학에 포함돼야 한다.

전후 상황은 이렇다. 국내 영어학 분야 교수 대부분은 미국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학자들. 즉 한국어를 언어학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학자들 중 많은 수가 영어영문학과로 수용됐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들의 전공은 언어학이며, 세부전공은 ‘한국어’이지만, 국내에 언어학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한국어학자들이 영어영문학과에 소속된 채 영어학으로 분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어학이냐 국어학이냐 하는 기준을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교 언어학 등과 같이 두 언어에 걸쳐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이같은 학문 구분이 유의미한지 되물을 수 있다. 이찬규 중앙대 교수(국어학)는 “학문적으로 영어학과 국어학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둘 다 언어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고, 영어학자가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학성 교수는 “영어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를 바라는” 뜻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 문제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바로 학술지원사업의 평가에서 영어학 교수들의 한국어 연구가 인정된다면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혹자는 “한 교수가 학진의 학술지원사업에 탈락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관계자의 답변은? 학술진흥재단 연구지원1팀의 함윤돈 계장은 “한 교수가 문의했던 하버드 워크샵에서 발표한 논문을 업적으로 낸 학자는 없었다”라고 밝히면서, “이런 문제는 학계 내부에서 공론을 모아야 할 부분이지, 재단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한국어 관련 논문을 영어학의 부분으로 인정할 것인지,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의 수준을 매기고 그 업적을 인정할지의 구체적인 기준까지 재단에서 소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학진에서는 교수들의 업적 평가에 대해 세부적인 기준 없이 학술선정 기준을 몇몇의 패널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학진에서는 원칙적으로 최종심에 참여한 패널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선정기준에 어떤 항목이 포함됐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한학성 교수의 문제제기는 국내 영어학계에 본질적인 물음을 제기했다. 언어학의 분파에서 현재의 관행들이 어떻게 이해돼야 하는지, 관행에 대한 반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동시에 영어학에서 꼭 한국어학을 배제해야 하는지 역으로 되물어 연구의 평가 기준을 재정립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관행상 행해지던 학계의 풍토를 다시 돌아보고 기반을 다지려는 시도가 영어학계 내부에서 시작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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