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7:30 (일)
[신년사] 공동체를 위하여
[신년사] 공동체를 위하여
  • 교수신문
  • 승인 2003.01.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大選은 지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민의에 따라 선출됐지만, 후유증은 여전합니다. 동서지역간의 감정적 앙금이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음을 거듭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세대간의 갈등으로 비쳐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통합 과제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계미년의 새날을 맞는 심정이 뜨겁고 서늘한 까닭은 공동체 즉 우리사회와 관련있습니다. 지난 1992년 등장한 문민정부 이래 10여년의 시간의 일관된 주제는 ‘개혁’이었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개혁이 가장 높이 올려진 기치였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두 정부의 황혼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러나 개혁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도 잘 압니다.

개혁이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그것이 언제나 늘 ‘공동체’의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세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첫째,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로, 넓게 가는 길이면서도 깊게 가는 동행의 즐거움과 나눔의 기쁨을 전제로 할 때 개혁으로 가는 길, 공동체의 선을 위한 거듭나기는 산고의 고통에 비유될 수 있겠지요.

둘째, 정보화사회가 더욱 난숙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변화의 물결’ 위에 존재합니다. 변화는 다양한 층위들을 가지고 있고, 이를 수용하는 측 역시 워낙 다양하기만 합니다. 하나의 획일적인 틀이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시대의 모퉁이를 돌아서는 전환의 시기에도 돌아서 가는 시간과 그 시간 속의 삶이 있으며, 이 삶이 반영하는 시대의 특질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는 인식의 문제, 삶과 행동의 문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운명적인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구성원인 우리는 어떤 인식과 삶과 행동이 지표가 될 수 있는 지의 물음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밤과 낮, 흑과 백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여명과 황혼을 보는 혜안입니다. 그것은 다양한 현상 그 자체이기도 하며, 사물을, 인간을, 세계를 더 넓게 보려는 존재의 고뇌이기도 합니다. 개혁은 구심점을 형성한 행위이지만 언제나 혜안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고 개혁적인 학자, 지식인들이 개혁의 총대를 앞서 매고 나아갈 때, 원숙하고 균형잡힌 세대는 죽비소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순수의 발로여야 하며, 함께 성숙할 수 있는 조화로운 언어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 공동체를 생각할 때 ‘열림’의 가치를 곱씹어야 한다고 봅니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으면서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념 중의 하나는 ‘열림’의 가치일 것입니다.

열린 사회란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즉 자신의 정체성과 특성을 유지하면서 타자를 향해 개방성을 지닌 개체들이 우리를 이뤘을 때 열린 사회는 그 결과로 온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우리의 연결고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너‘입니다. ‘너‘는 ‘나’의 또다른 얼굴입니다. ‘너‘를 거치지 않고서는 ‘우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계미년 새해에는 얼룩지고 상처난 지역감정, 계층간 위화감, 세대간의 갈등 이 모든 피로한 에너지들을 승화시키시길 바랍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결코 방향을 잃지 않는 물길의 자연으로 재생해내시길 바랍니다.

교수사회와 대학사회, 지식인 사회에게 던져진 과제가 어느때보다 무겁습니다. 마침 젊은 학자들이 새정부 만들기에 대거 참여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학자들의 고뇌와 결단, 행동이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 믿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분들에게, 나아가 새정부의 개혁을 위해 감히 청컨대,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변치않고 목적지를 향해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함께 가는 길의 의미를 권합니다.

새해 새아침 교수신문 발행인
이영수 올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