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의시간] 講義와 講意
[나의 강의시간] 講義와 講意
  • 김민호 성균관대
  • 승인 2003.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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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성균관대·법학

지금도 1998년 모교의 강단에서 첫 강의를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전해오던 흥분은 어느새 나의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앉아 있던 그 자리는 나의 후배들로 채워지고 나를 가르치던 은사님들의 자리에 내가 서있는 것뿐인데 우리의 대학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학생들은 사법시험의 중압감 때문에 힘들어하고 이를 이겨내지 못한 학생들은 희망을 잃고 있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교수에게 사법시험의 답안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인지라 나 역시 최신의 판례를 찾고 사법시험의 신경향을 분석하고 최근에 학계에서의 다수 견해를 연구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김민호 교수의 강의가 사법시험에 도움이 되니 들을만 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강의를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오면 표현할 수 없는 허탈감을 느꼈다.

무엇이 문제일까. 방학이 모두 끝나갈 때 비로소 그 해답을 깨달았다.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교수가 되기 위해 교수로서 요구되는 형식적 요건을 채우는 데 급급했었다. 유학을 가고 학위를 취득하고 논문 편수를 채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정작 교수가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요건인 ‘학생지도 철학’ 좁게는 ‘강의철학’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 문제를 ‘행정법을 잘 가르쳐야 한다’라는 것으로 아주 쉽게 이해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講義’가 아니라 ‘講意’에 불과했던 것이다.
감히 ‘강의철학’이라고까지 할 수 없는 나의 소박한 ‘강의 방법론’은 ‘따뜻한 가슴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가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뜻’이 아닌 ‘열정과 사랑’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의 강의를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가슴으로 이해해달라고 매 시간마다 부탁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마음이 쉽사리 열리는 것은 아니다. 나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나의 연애시절도 이야기하고 미팅에서 딱지를 맞은 일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강의 내용을 어려워하면 나 역시 처음에는 이 문제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이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고백하면서 또 다시 반복해서 설명한다. 학생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오히려 자신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나른한 봄날에 조는 학생들을 꾸짖기보다는 서있는 나도 졸린데 재미없는 행정법을 앉아서 듣고 있는 여러분은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서로를 격려하면서 또 다시 강의를 진지하게 듣는다. 어느새 한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학생들과 나는 모두 가슴을 열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허탈감 대신 뿌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내 자랑만을 잔뜩 늘어놓았다.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작정하고 이 글을 쓴 이유가 있다. 오늘날 대학의 풍토는 교수들에게 개인연구 중심의 계량화된 실적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열심히 강의하느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자기 연구나 충실히 하라는 자조 섞인 충고를 몇몇 교수님들이 나에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의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교수는 학생이 있어야 한다. 학생이 없는 교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교수의 임무 중에서 가장 으뜸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식’만이 아니라 ‘의로움’을 따뜻한 가슴으로 전달하는 곳이 바로 ‘교수의 강의실’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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