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본 2002년 교수사회, 대학가
되돌아 본 2002년 교수사회, 대학가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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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하지 않은 길, 그러나 희망을 찾아나선 이들

壬午年 새해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전 여성교육정책담당관·사진 11)는 3년 동안 몸으로 체험한 교육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교육부개혁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 뒤를 이어 교수노조가 1주년 기념 세미나에서도 “교육개혁은 교육부부터”라고 지목했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교육부 폐지가 공식적인 공약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자 또한 교육부의 권한 이양과 기능을 대체할 기구를 내놓은 상태에서 교육현장의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새해에 지켜볼 일.

또 스스로 자리를 물러난 이창훈 한라대 총장(사진 10)은 사립학교법개정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이창훈 총장은 “현행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을 바엔 차라리 대학 설립자나 가족이 총장 노릇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며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대학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해 대학가에 화제를 불러왔다. 지난해 제출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된 채 두해를 넘기고 있다.

올해를 기록하는 것은 산 자만의 일이 아니다. 73년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억울하게 사망한 최종길 서울대 교수(사진 9)가 30년만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했다”고 인정받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최 교수가 “중앙정보부의 각종 불법수사에도 불구하고 강요된 진술을 하지 않음으로써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에 저항했다”고 밝힘으로써 암울했던 시기 양심의 촛불을 밝힌 지식인의 저항을 확인했다. 그러나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동국대 교수·사진 14)는 이 과정에서 우리사회에 잔존해 있는 ‘보이지 않는 검은 세력’들과 싸워야 했고 유야무야 될 뻔한 위원회 활동도 다행히 활동기간이 연장됐다.

형식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해도 사회민주화를 위한 교수사회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황상익 교수노조 위원장(서울대 의학과·사진 2)은 올 한해 교육개혁과 사회개혁을 외치는 현장을 지켰다. 교수노조는 법외노조로 출발한지 1년 동안 대학민주화와 사회의 진보를 요구하는 교수단체들의 중심으로, 사회 시민단체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자리잡았다.

분단 반세기.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았던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학자들의 방북도 이어졌다. 이 가운데에서도 한양대 오희국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사진 1)와 차재혁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7·8월 두 달 동안 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보통신 강의를 했다. 북·미 갈등으로 남북관계마저 잠시 주춤하고 있으나, 남한의 교수와 북한의 학생들은 과학기술분야에서 남·북 교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분단의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잊고 있었던 인권과 소수자 보호 문제에 대해 되돌아보게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출간해 이들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을 제시한 안경환, 한인섭(사진 12), 조국(사진 13) 등 서울대 법과대 교수들. 이들은 소수자의 권리 보호 문제를 전격적으로 다룸으로써 민주화의 질적인 성숙이라는 것이 무엇이지를 고민할 수 있게 했다.

한편, 모두들 높은 곳만 바라보는 세태에서 명지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박성수 전 전주대 총장(사진 3)은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박 교장은 “사람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이 중요한 것, 조직의 관리자는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라며 ‘자리’를 누리는 것으로 보는 속인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반면,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사진 15)의 국회인준 부결은 사회 지도층인사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도덕적 기준이 더욱 엄격하다는 것을 되새겼다. 학자이자 교육자로 대학총장을 역임했고 경영마인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내각을 효율적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장남의 국적, 학력 오기, 부동산 위장 전입 등의 문제로 좌절하면서 첫 여성총리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사회적 물의를 빚고 물러난 이기준 총장의 뒤를 이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사진 5)은 지역할당제로 대학개혁에 신선한 관심을 불러냈다. 평등권 위배, 지역 대학고사 등 논의할 부분은 많지만 ‘상업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우리 교육 현실에서 서울대가 먼저 나서서 ‘교육기회의 형평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고, 앞으로 대학가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교육개혁을 위해 정년도 포기하고 실험의 현장으로 뀌어든 교수도 있다.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과·사진 4)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되는 대안대학, 녹색대학의 총장을 맡았다. ‘대학’이라고 해서 우람한 건물들이 권위를 지키는 그러한 곳이 아니다. 경남 함양군 백전면 일대의 3만 명의 부지와 폐교된 중학교를 리모델링 했다. 성적으로 학생을 뽑지도 않고, 정해진 교육과정도 없으며, 50여명의 학생과 교수가 한솥밥을 먹으며 대학교육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겠다는 이들의 시도가 어떠한 열매를 맺을지 기대된다.

한편, 대학교육의 사각지대에 노인 강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0대 노 강사가 외로운 투쟁을 벌여왔다. 김동애 전 한성대 대우교수(사진 6)는 지난 10월 9일 동안 “대학강사의 법적 지위 보장”과 “강사에 대한 해고 예고제 도입”등을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올해 1년 동안 매주 화요일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무기한으로 1인 시위를 벌여온 김동애 강사의 투쟁은 언제쯤 결실을 맺을지.

대통령선거에 지식인 사회도 바쁜 한해였다. 특히 김영규 전 인하대 교수(사진 8)는 한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교수출신 대통령으로 이목을 끌었다. 비록 많은 표를 얻지는 못했지만 기존 정당들과 차별되는 ‘사회주의적 정책과 공약’을 내세움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대선에서는 김 교수 이외에도 정대화 상지대 교수(사진 7)등 교수단체 소속 교수들이 ‘대선 교수 네트워크’를 구성해 학생들의 선거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강단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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