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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해에 부쳐 : 임오년은 간다
가는 해에 부쳐 : 임오년은 간다
  • 교수신문
  • 승인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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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이화여대·심리학

1966년 6월 어느 날 미국 뉴욕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내 버스 기사 한 사람이 자기가 운전하던 버스를 몰고 혼자서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경찰에게 잡혔다. 무슨 일로 혼자서 버스를 몰고 가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매일 꼭 같은 노선, 꼭 같은 일만 되풀이하는 무료함과 권태감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사람은 누구라도 위의 뉴욕 버스 기사와 같은 생각을 한다. 같은 일, 특히 단순한 일을 되풀이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 것, 다른 것을 찾아서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길에 나서지 않는가.

우리가 정서나 감정이라 부르는 것도 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본 사람이면 남의 나라에서 방관자로 산다는 것, 감정의 높낮이가 별로 없는 생활이 주는 권태감이랄까 짜증 같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뒷짐 진 구경꾼이니 모든 것이 ‘나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일’,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는 그저 무덤덤한 생활의 연속’인 것이다. 이런 생활을 오래 되풀이하다 보면 생기가 줄어들고 심하면 모든 일에 무감각해진다.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기쁨도 있어야 하지만 가끔 슬픔도 있어야 한다. 슬픔은 곧 기쁨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구름도 天路가 다하면 내려앉을 땅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34년을 바다 밖에서 떠돌다가 꼭 3년 전에 제 2의 삶을 찾아 한국에 정착했다(물론 그 나라에서 방관자로서 보낸 34년이었다). 내가 살던 나라에 비해 한국은 우선 시끌벅적한 일이 많아서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아 좋다. 매일 굵직굵직한 사건, 색다른 사건이 꼬리는 물고 일어난다. 어떤 날은 별 것도 아닌 일에 흥분을 하고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노여워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감정의 고저가 있어서 좋다는 말이다.

이 가운데 내가 한국에 온 3년 간, 내 평생 처음 가장 크고 가장 오랜 감정의 희열을 맛본 것은 지난 6월 월드컵 때였다. 그 6월 한 달은 나 뿐 아니라 온 겨레의 감정이 한 곳으로 몰리던 때였다. 단기 4335년 그 6월 한 달은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한 후 이 겨레의 피를 가장 뜨겁게 달군 한 달이었지 싶다. 가까운 1945년 해방만 하더라도 많은 동포들이 올 6월 같은 흥분을 경험했겠지마는 생각해보면 수많은 친일파들은 겉으로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도 속으로는 몹시 불안하고 떨떠름했을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에도 온겨레의 감정이 한 곳으로 모였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지난 6월 한 달은 이대로 가다가는 온 나라가 정녕 미쳐버리고 말 것 같은 그런 위험 수위에 이른 흥분이요, 감격이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리고 연변에서 도쿄, 리우데자네이루로, 또 거기에서 뉴욕으로 토론토로, 시드니에서 파리로, 단군의 핏줄이 단 한 방울이라도 섞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감격을 폭포수처럼 내리 쏟고 간 한 달이었다. 아, 그 감격의 유월을 품었던 임오년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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