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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사’, 모호함 속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매력적인 분야
‘소비사’, 모호함 속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매력적인 분야
  • 교수신문
  • 승인 2017.09.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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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소비의 역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496쪽, 25,000원

지난 30여 년 동안 소비사 관련 연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해왔으며, 학자들은 그런 움직임이 “전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비사가 자리매김하는 데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소비의 정의를 둘러싼 문제를 들 수 있다. 소비사는 생산 위주의 접근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소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진지한 논의가 부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역사학뿐 아니라 문학, 사회학, 경영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소비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소비의 정의 및 연구의 초점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됐다. 경제학자들에게 소비는 흔히 총수요(aggregate demand)의 약사나 마찬가지였고, 전통적인 사회이론에서는 주로 근대성 논쟁의 연장선에서 다뤄졌다. 경영학에서 소비 연구는 결국 특정 상품을 얼마나 더 팔 것인가에 집중됐는가 하면 학문이 곧 현실 개혁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믿는 학자들은 ‘윤리적 소비’를 위한 방향성을 모색하는 데 열중한다. 한편, 정치학이나 언론학 분야는 소비 패턴을 정치 참여의 지형도와 일치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이제 소비사는 학문의 파편화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 돼버렸다.

이런 파편화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사만의 뚜렷한 방법론이나 메타이론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소비 연구는 언제나 학제적이었다”고 항변하며 이 문제는 학문 간 융합을 통해 점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실제로 소비사 영역은 학제적 접근이 비교적 활발한 분야여서 최근 사회학과 역사학, 문화비평 및 경제학은 그동안 각각 발전시켜온 방법론을 서로 차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학제적 시도들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낳게 됐는데, 그것은 소비가 지나치게 광범하게 정의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제 소비란 단순히 물건을 사거나 쓰는 행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재화를 둘러싼 욕망과 보이지 않는 문화자본의 향유를 포함하는가 하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넘나들며 수없이 많은 주제를 포괄하는 거대한 개념이 돼버린 것이다. 쇼핑 행위가 소비가 이루어지는 공간,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욕망의 창출에서 낭비나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사를 표방하면서도 사실은 본질적으로 생산에 대한 연구이거나, 소비와 생산을 모호하게 포괄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데는 소비사가 전통적인 경제사 분야가 도외시해온 수많은 주제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일종의 집합소가 돼버린 탓도 있다. 

이제 소비사는 실질적 소비와 이미지 소비라는 두 범주의 소비를 고려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터넷 같은 가상 공간에서 일어나는 쇼핑의 비중이 더욱 커져가는 지금, 향후 연구는 재화획득 공간의 이원화 양상을 포괄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전통적으로 민간 영역으로 분류돼온 소비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큰돈을 쓰면서 마치 소비자처럼 행동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소비를 규제하는 역할을 해 더 큰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연구자들에게는 시민의 소비와 정부의 소비 모두를 고찰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은 곧 소비사가 지닌 특성이자 잠재력이기도 하다. 다룰 수 있는 주제의 외연이 엄청나게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 실재적 영역과 가상의 공간을 모두 다룰 수 있다는 점, 민간 부분과 공적 부분을 함께 고려하는 폭넓은 분석틀의 도출 가능성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소비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아내거나 국가나 민족, 계급을 초월한 또 다른 형태의 연대와 네트워크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비라는 인간의 행위를 결정짓는 수많은 돌발 변수를 포착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트렌디하면서도 가장 현실 참여적인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사는 모호함 속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역사학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참으로 매력적인 분야다.   

저자 설혜심 연세대 교수(사학과)는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에서 그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소비의 일상생활사, 미시사를 발굴해 소비라는 행위에 담긴 역사를 다면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생산 행위에 집중돼 있던 접근에서 벗어나 다양한 범주로 나타나는 소비 행위에 주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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