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추동하는 건 호기심 … 한국 학자들, 자부심 없고 새로운 도전 하지 않는다”
“학문 추동하는 건 호기심 … 한국 학자들, 자부심 없고 새로운 도전 하지 않는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9.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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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나폴리동양학대학에서 ‘한국학’ 지피는 마우리찌오 리오또 교수

1959년생이니까 우리식으로 말하면 ‘돼지띠’다. 1990년부터 나폴리동양학대(공식 개교는 1732년)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두루 가르쳐왔다. 마우리찌오 리오또(Maurizio Riotto) 교수다. 1988년 로마국립대에서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한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 고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서울대, 서강대, 성균관대, 고려대, 인하대, 이화여대 등에서 ‘방문 교수’로 활동하면서 한국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소속 ‘아시아, 아프리카, 地中海學科’, 한국어-한국문학 교수로 국학문 혼용으로 인쇄돼 있었다. 특수학교인 ‘고전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일찍부터 ‘한국학’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몸담고 있는 나폴리동양학대는 전문적인 동양학 연구를 수행해온, 서구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물론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한국학 강좌를 개설한 곳이다. 

한국학을 주제로 한 그의 저술은 170여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고전문학 작품에서 현대문학 작품까지 다양하게 번역했는데, 『춘향전』에서 이문열의 『시인』,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등의 소설작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같은 불교 고전까지 막힘이 없다. 벽안의 이 남자는 어째서 이렇게 ‘한국학’에 매료돼 여기까지 온 걸까. 

“한국, 고전 고등학교 설립해 고전인재 양성하라”

7월 초에 한국에 들어온 그를 8월 23일 인사동에서 만났다. 매년 저술 작업을 위해 방한하는 그는 무엇보다 한국어에 능통하다. 리오또 교수는 아내와 함께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마침 인사동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있었다. 그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타고난 재질 탓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 아내의 역할도 컸던 듯하다. 이탈리아어 가정교사로 들어가기로 한 친구가 일이 생겨 리오또 교수를 소개한 게 인연이다. 그는 한 마디로 서로 ‘눈이 맞았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탈리아 한국학의 첫 기수인 리오또 교수가 ‘한국학’의 사건지평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마냥 한국학을 좋게 보는 것만은 아니다. 인터뷰 첫 마디가 “이래선 안 돼” 였을 정도로, 기존 한국학 풍토에 ‘쓴소리’ 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한국학 연구자’다. 일단 그는 원론적이다. “좋은 논문, 좋은 책을 쓰면 세계 학계에도 통한다.” 연구자, 학자라면 이것저것 눈치 살피면서 ‘정치’하지 말고, 수준 높은 논문 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학이 죽으면 나라도 사라진다”고 말하면서, 한국도 ‘古典’을 특화해 가르치는 3%만 뽑는 ‘고전 고등학교’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자신이 ‘고전 고등학교’ 출신이라,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공부해 고문헌 연구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전 문헌이 축적돼 있는 한국도 동아시아 고전 텍스트를 좀더 깊게 연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때가 됐다는 그의 조언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이문열의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시인』을 비롯해 김승옥의 「무진기행」, 조정래의 『유형의 땅』 등 빛나는 한국 현대문학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직접 번역하면서도, 한국 고전 텍스트인 『춘향전』을 번역, 이탈리아어에서 18세기 한글 텍스트를 연구할 수 있게 만든 것은 그의 큰 업적이다. 그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남북한 역사를 아우른 『한국통사』도 직접 집필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의 아내는, 그가 쓴 『한국어 입문』이나 『한국문학사』, 『한국통사』 등은 이탈리아 곳곳에서 교재로 쓰인다고 귀띔해줬다. 요즘은 한국 현대문학 작품은 제자들에게 맡기고 그 자신은 주로 ‘연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의 왕성한 한국학 연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여기에는 그의 지적 호기심, 서구의 외부에 존재하는 타자에 대한 관심이 작용한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까지 진출했다. 우리가 배운 세계는 딱 거기까지다. 그 너머 세계에 대해선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그 너머에는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 걸까. 로마국립대에서 박사학위 주제를 고대 한국 쪽으로 잡은 것도 그런 지적 호기심의 연장에서였다.” 

동서비교학적 관점에서 한국학 연구

이런 지적 호기심에서 형성된 동서비교학적 관점은 그에게 풍부한 시각을 열어주기에 충분했다. 예컨대 2016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출판된 <호라이즌(Horizons)>(7-1)에 ‘바리데기 설화’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발표했는데, 그는 ‘바리’의 어원이 기존 학계의 주장처럼 ‘버리다, 바리다’에서 온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바리데기 설화’의 ‘바리’는 페르시아 동화에 등장하는 ‘PA RI’ 즉, ‘FAIRY’(요정)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전승 문화에는 이렇게 동아시아문명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저 너머 세계와의 교섭이 스며있다. 『삼국유사』 는 동서 실크로드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대표적 저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은 중국 문명의 일부가 아니라 더 넓게 ‘유라시아 문명의 일원’이었다”고 문명사적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봤다. 

사실 그의 한국학 연구가 눈길 끄는 것은, 벽안의 외국 학자가 ‘한국 문화와 한국 고전 텍스트’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춘향전』 번역을 보자. 그는 다양한 저본을 갖고 있는 이 고전 텍스트의 번역을 18세기 한글본에서 출발했다. 리오또 교수의 작업을 눈여겨보고 있는 한 학자는 “판본 전승이 복잡한 『춘향전』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면서 번역의 저본을 밝히고 그 저본을 이탈리아어 번역의 뒷부분에 실어 놓았다”고 소개하면서, 중요한 미덕 두 가지를 이렇게 평가했다. “하나는 ‘비판정본’의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 번역을 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 현대 한글 번역이 아닌 18세기 한글 판본을 제공함으로써, 당시의 한글과 원문을 직접적으로 읽고 즐기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학과 관련된 리오또 교수의 학술적 기여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해외에서 수행되고 있는 한국학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점. 한류 붐에 편승해서 초급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한국학에 도전하고자 할 때 마땅한 책들이 없어서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한문 고전에서부터 현대 소설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들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그의 노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로 좋은 모범 사례다. 

또한, 리오또 교수의 연구에 나타나는 학문적 특징에 주목할 수 있는데, 이 점이 꽤나 중요하다. 그는 한국학을 민족주의(Nationalism)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관점에 접근하고 있다. 이 관점은 이후 한국학을 국제화하고 세계로 알리는 데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셋째로 리오또 교수의 ‘동서교류사’에 대한 연구의 무게다. 그는 실크로드 연구를 로마―중국(長安) 사이에서 일어난 교류의 역사에서 로마―한국(경주)으로 확장시켰다. 철저한 문헌 고증과 실크로드에 위치한 수많은 종족과 도시들의 언어와 고고학적 유물 분석에 기초한 연구라는 점에서 그의 연구 방법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많다. 그래서 국내 학계에서는 그런 그를 가리켜 “이 분야의 선구자로 칭해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잘 알려져 있듯, 이탈리아는 국립대 체제다. 한국 대학처럼 서울, 수도권, 지방 이렇게 위계가 없다. 교수면 다 같은 교수다. 한국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은 건 아니지만, 대학에 진학하면 일단 졸업은 30% 정도만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빡세게’ 공부하는 곳이 대학이다. 그런 곳에서 뼈가 굵은 리오또 교수가 보기에 한국학 혹은 인문학은 기초가 부실하고 기본이 허약하다. 1985년 서울대 ‘리서치 팰로우’로 한국과 연대한 이래 그가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이다.

최치원에게 매료된 이탈리아 학자의 쓴소리

한국 고전, 특히 신라 최치원에게 깊이 매료된 그는 최치원이 굉장히 자유롭고 넓은 몸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옛 학자들, 특히 최치원은 오늘날로 말하면 세계적 학자였다. 언어적으로도 뛰어났고, 유불선 모두 통달했다. 그가 축적한 지식은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몸과 지식이 다 같이 넓은 최치원과 같은 학자가 오늘날 한국 학계에도 있어야 한다. 그런 학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게 안타깝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연구를 하려면 문헌 추적을 하든 유물 발굴을 하든 구체적이고 기본적인 실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초를 중시하지 않는 탓에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시장의 논리에 너무 충실하다. 돈에 인문학자의 자존심을 팔아서는 안 되는데, 너무 쉽게 돈의 힘에 굴복하는 것 같다. 검증도 되지 않은 ‘융합’ 혹은 ‘통섭’ 따위의 유행어에 편승하고. 한마디로 한국 인문학은 돈과 권력 앞에서는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것 아니냐. 학문을 추동하는 것은 호기심인데, 이것도 약하다. 이런 것들이 한국 인문학을 위기로 모는 원인들 아닐까?” 

한국 대학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빠뜨리지 않는다. “대학의 교양 교육이나 학과도 너무 쉽게 바뀐다. 전통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또한 인문학에 대한 사랑도 없다. 이게 뭐냐면, 자신이 연구하는 인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는 소리다. 오랜 전통을 지닌 나라의 대학들이 자신의 인문학에 대해 큰소리를 못 친다는 건 난센스 아닌가. 대학이 자존심을 지녀야 한다.” 그는 또 한국 대학이 유연하게 외국 학자들과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에서도 1년 있다가 떠난다. 개인문제로 떠난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 괴롭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외국 교수들이 이렇게 도망치듯 떠나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물론 그의 비판이 구구절절 다 맞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동양학 대학’에 몸담고 거기서 학문적 훈련을 거친 그의 ‘쓴소리’는 돈으로 쉽게 살 수 없는 귀중한 조언임에 틀림없다. 마침 인터뷰를 하던 날로부터 이틀 뒤인 8월 25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열세 지역의 한국학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안을 놓고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국민 세금’으로 조언을 구하는 판인데, 리오또 교수의 쓴소리는 그야말로 ‘값도 없이’ 주는 조언 아닌가. 그는 오는 10일 한국인 아내와 함께 다시 나폴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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