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0:25 (금)
영국, ‘반세계화’ 보고서 화제
영국, ‘반세계화’ 보고서 화제
  • 교수신문
  • 승인 2002.12.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경만 목포대·새만금생명학회 대안분과위원장

최근 발간된 나오미 클라인의 ‘울타리와 창문: 세계화 논쟁의 최전선에서’가 세계화를 둘러싸고 팽팽한 논의를 펼쳐왔던 영국 학계에 신선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종래의 세계화 이론서와 달리, 생생하게 발로 뛰면서 쓴 반세계화 운동과 그 주체들에 대한 현장 보고서라는 점에서 세계화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왔던 영국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미 ‘로고는 없다’란 책으로 인지도를 획득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이 캐나다 국적의 여성 저널리스트는 일찍이 “몇 마디로 모든 것을 말할 줄 아는 재능”을 겸비한 글쟁이로 영국 학계에서도 호평을 받아왔다. 클라인의 신간은 단적으로 세계화에 맞서 전개되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다.
물론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글쟁이답게 클라인은 충실한 사실 보고와 더불어 적재 적소에 자신의 논평을 끼워 넣는 데 게으르지 않다.
전작 저술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발표됐던 논평과 보고문, 그리고 연설문들을 묶어 놓은 탓에 형식적으로 매끄러운 통일성을 이 책이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서 사실 전달과 논평의 생동감이 더욱 잘 전달되는 뜻하지 않은 효과를 누리게 됐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런 형식적 특징은 1999년 시애틀에서 개최된 반세계화 집회의 풍경을 잡아내는 한 자유주의적 저널리스트의 눈길에서 압권을 발휘한다. 클라인은 이런 조각글들을 통해서 세계화라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화의 담론 아래에서 충돌하는 현실적 세력들의 움직임을 숨가쁘게 그려낸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뿌리깊은 저항
클라인의 입장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운동을 ‘반세계화’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의 본질은 세계화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이 세계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파국과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운동은 자유교역 자체에 대한 반대 때문이 아니라 “구직과 투자를 바라는 실재적 요구가 체계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 말은 바로 세계화의 강화로 인해 식량이나 수자원 같은 공공자산들이 일부 독점적 자본가들과 기업들의 사적 이익을 충족시키는 사유물로 전락하고, 이런 사기업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반대로 평등권을 실현해야할 국가의 주권이 쇠퇴하는 현상에 대한 반발이 반세계화 운동의 불을 지피는 기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클라인의 말을 확대해서 본다면, 이런 반세계화 운동은 국가와 민족 단위로 운위돼왔던 지난 시절의 서구 민주주의와 복지제도가 이제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징후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클라인은 반세계화 운동에 동참하는 대중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사회민주주의당과 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말하자면, 더 이상 선거라는 ‘게임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단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뿐이다. 오히려 맑스가 말했던 그 자본주의적 양상에 작금의 자본주의가 더욱 근접해 있다는 주장은 이런 근거에서 운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반세계화 운동은 종래에 지속돼오던 인간화 운동에 그 사상적 혈맥을 대고 있음을 쉽게 알 수가 있다.
클라인은 이런 차원에서 오늘날 우리 앞에서 출현한 반세계화 운동이란 것이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연대해왔던 지난 국제주의적 인권투쟁의 귀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반세계화 운동이 과거 양상의 반복적 재연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클라인은 반세계화 투쟁의 주체들이 인터넷 세대들인 사실에 주목한다. 이들은 1960년대의 맑스주의 활동가들과 달리 “대안을 설명할 준비가 돼 있는 어떤 일사분란한 위계도 없고, 즉석 연설을 행할 공인된 지도자들도 없는 상태의 존재 "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활동가들”이다.

“운동, 조직된 역량이 보이지 않는다”
자유주의자인 클라인의 눈에도 이들은 전혀 전략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오합지졸들이다. 그는 담담하게 이 점을 지금 서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의 최대 약점으로 꼽는다. 말하자면, 조직된 역량이 이 운동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 클라인은 현장 보고를 통해,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그려 보인다. 워싱턴에서 세계 은행과 IMF 대표들의 회담을 방해하기 위해 인간사슬을 만들어 회담장을 둘러싸고 있었던 군중들에게, 그 투쟁의 조직자 중 한 사람이었던 케빈 대너험은 “좋습니다. 모두 잘 들어주세요. 인간사슬을 우리가 단단히 지킨다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원한다면 그냥 풀어도 좋습니다. 전적으로 이 문제는 여러분 자신들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라고 말해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투쟁의 의미를 무효로 돌려버렸다는 것이 클라인의 생각이다. 클라인의 입장에서 대너험의 말은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발언이었고, 그의 말대로 인간사슬을 유지하든 말든 결정하는 것은 그곳에 참여한 개인의 의사 문제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사슬을 짜고 있는 마당에 몇몇 사슬들이 풀어진다면, 결국 이는 회담 대표들에게 날개를 달아줘서 그들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마음껏 우경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꼴이 될 뿐이라는 것이 클라인의 지적이다. 물론 클라인은 빼놓지 않고, 이런 실패담에 대비되는 비서구권, 특히 세계은행을 상대로 성공적 투쟁을 펼쳤던 인도의 물리학자 밴대너 시바에 대한 일화도 들려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전지구화와 총체적 야만화는 이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반자본주의 세력의 결집을 초래하고 있다. 클라인의 책은 이런 세계적 규모의 투쟁이 어떤 지형도를 그려내면서 전개되고 있는지를 명쾌한 필치로서 전달해줌으로써, 전지구적 차원에서 오늘날 민주주의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