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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走肖爲王’ 사건 진실 규명 …곤충섭식 여부 관찰해
500년 전 ‘走肖爲王’ 사건 진실 규명 …곤충섭식 여부 관찰해
  • 최성희 기자
  • 승인 2017.08.16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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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 인하대 교수팀 역사적 사건을 생명과학으로 분석

민경진 인하대 교수(생명과학과) 연구팀이 지난 14일 조선 중기 기묘사화 사건의 발단이 된 ‘주초위왕’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走’와 ‘肖’의 글자를 합치면 ‘趙’가 되는 한자의 파자원리를 이용한 일종의 역사 속 ‘풍문’은 실제 가능했을까. 민 교수팀은 500여 년 전의 정치적 사건이 과학적 사실인지 규명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동원했다. 

‘주초위왕’ 사건은 조선 중종시기인 약 500년 전에 발생한 기묘사화의 발단으로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에 기록돼있다. 당시 훈구파가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를 제거하기 위해 궁궐 나뭇잎에 꿀로 글자를 써 곤충이 파먹은 나뭇잎을 중종에게 바쳐 역모죄로 모함한 사건이다. 

민 교수팀은 역사 속 사건을 실제로도 재현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점에서 출발했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산벌레’가 갉아먹을 수 있도록 궁 안에 있는 ‘木葉에 감즙(甘汁)으로’ 글자를 새겼다고 나온다. 이에 민 교수팀은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2개월 간 관악산 일대의 나무들을 대상으로 나뭇잎 뒷면에 꿀을 바른 뒤 2주 간격으로 관찰했다. 

역사에 기록된 바에 충실하기 위해 연구 방법에도 신중을 기했다. 기록에는 어느 벌레가 어느 나뭇잎을 갉아 먹었는지가 나타나있지 않았다. 민 교수팀은 과학적인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40여 종의 수목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했으며, 우천 등 기후 상황에 대비해 나뭇잎 뒷면에 꿀을 바르고, 2주에 한 번 실험 대상 나무를 찾아 관찰 후 다시 실험을 재개했다. 

그 결과, 곤충의 섭식으로 나뭇잎에 글자가 새겨진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 교수는 이런 결과에 대해 △주초위왕의 한자 모양이 ‘爲’의 경우 12획으로 복잡한 모양이라는 점, △곤충이 유충으로 지내는 기간이 짧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민 교수는 “다양한 수목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기 때문에, 수목에 따라서는 꿀로 글씨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고 실험 과정에 대해 설명하며, 앞으로도 생물과학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역사적 사건이 있다면 연구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인하대 생명과학과 석·박사 과정생 서응, 최인수, 이보라 씨가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한국곤충학회가 발행하는 온라인 웹진 <곤충학연구(Entomological Research)>에 게재됐다(논문명: 「‘Validation of 走肖爲王: Can insects wrote letters on 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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