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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지원단체·기업 등 다양한 통일의 小路들이 하나의 터널이 될 때까지
대북 지원단체·기업 등 다양한 통일의 小路들이 하나의 터널이 될 때까지
  • 이용범 원광대 석좌교수·원예산업학과
  • 승인 2017.06.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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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33.농업 분야 남북교류 활성화의 필요성과 방안

북한의 식량 생산은 그 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세계식량계획(WFP) 조사 자료에 따르면 주민들의 영양 상태는 여전히 나빠서 적어도 70% 이상이 영양 부족을 겪고 있다. 특히 유엔은 북한 주민들이 곡물, 채소, 콩, 과일, 고기, 유제품, 식용유, 설탕 등으로 구성된 식품군 중에서 3~4개 식품군 밖에 주로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북한 주민들이 곡물, 김치, 기름, 된장 혹은 간장만으로 구성된 일상적인 식사만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채소와 과일 같은 비타민과 무기질 영양 공급이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콩과 고기 같은 단백질 공급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 남북 농업협력사업 당시 필자의 모습

북한 어린이들의 건강 상태에 관한 2012년 세계은행 조사에 의하면, 영양실조로 저체중인 유아 비율이 전체의 19%에 이른다. 5살 이하 북한 어린이 다섯 명 중 1명이 영양실조 상태에 있고, 주민 3명중 한 명은 건강 유지에 필용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5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유아의 수는 2012년 기준으로 1천 명당 29명으로 3년 전 33명보다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중국의 2배, 한국의 7배가 넘는 상황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양학자들은 출생 후 2년간의 영양 공급이 어린이의 생장과 평생 건강을 결정짓는다고 지적한다. 물론 지난 10년간 북한 아동의 영양 상태는 꾸준히 호전돼 왔지만, 발육부진율은 국제 기준에서 보자면 여전히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점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남북이 정치적 긴장 없이 접근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농림축산 분야의 교류와 협력일 것이다. 한반도 위기를 가져올 북한 내부의 돌발적인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농업 분야의 상호 교류 및 협력에 대한 준비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그 동안의 남북 농업협력이 가져 온 성과와 한계들을 검토하고 현재 북한 농업 각 분야의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해 이를 근거로 한 향후 교류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물론 이 준비 과정은 중앙정부나 각 행정기관만의 부담이 아니라 지방정부, 학계, NGO 등이 모두 상호 협력하면서 각 분야에 적합한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남북 농업협력의 활성화 방안      
    
1) 대북 지원단체(NGO)의 활동
대북 지원 초기 민간단체들은 긴급구호 차원에서 식량과 생필품 등 인도적 지원을 진행했으나 정부의 제도적·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2000년 전후로는 농업개발 협력을 추진하는 단체들도 많아졌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정부의 규제가 조금씩 풀리면서 농업 각 분야를 비롯한 민간단체와 학계의 대북지원은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부터는 경색된 남북관계로 원활히 진행되던 대부분의 농업개발 협력 사업들이 중단됐고, 관련 조직이 해체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맞아 이제 남북 농업협력은 북쪽이 절실히 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량난을 완화시키고 분단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므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추진해 나가야 할 분야다.

정부로서는 일부 단체를 제외하고는 재정이 취약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농업협력 관련 민간단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북한농업 관련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최신 농업기술을 보유한 단체 및 연구소들의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체계적인 점검을 진행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져 가고 있다. 또한 현재 북한 농업의 제반조건에 대해서도 가능한 수단을 통해 민간과 학계의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과 협조도 요구된다. 농업협력 사업이 일정한 성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북쪽에 대한 물자 지원이 중단된 이후에도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농업 전반을 육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 당국이 정치적·군사적 사안과 농업협력은 별개로 분리해 후자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초 여건의 조성을 향후 남북대화의 의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2) 지자체 및 기업의 협력사업 강화 및 지원
이른바 5·24조치 이후 드러난 피해는 국내 기업들이 거의 다 입고 있지만, 대부분의 반사이익은 중국 기업들이 가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남북당국의 대화 이전에 지자체 중심의 ‘작은 대화’의 시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쪽의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많은 통일 小路를 만들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거대한 물줄기를 가져 올 통일 大路가 생겨 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 경제교류 및 기초생활 분야의 협력 증대는 사회문화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의 소통으로 확산될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성과들은 평화통일의 기반으로 활용될 것이다. 따라서 남북의 농업교류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자체, 민간단체, 기업의 다양한 관심과 협력 노력은 수많은 통일의 소로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 많은 통로들이 언젠가 하나의 터널로 합쳐질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정부 지원이 이뤄질 때 북쪽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한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이다.

향후 남북 농업협력 사업의 주안점

필자가 교류 사업이 중단되기 이전까지 15년 이상 농업협력 사업을 진행해 오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 농업협력의 주안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물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북한의 토양 상태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키고 건강하고 비옥한 땅을 만드는 협력 사업을 병행해야 한다.

둘째, 가뭄과 홍수에 대단히 취약한 북한의 치수 및 산림 상황을 반영해 이에 대한 대규모의 경제협력 사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북쪽의 수로 시설은 꾸준히 증가했으나 이렇게 확보된 물을 이용하기 위한 시설과 펌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향후 통일 준비 사업의 일환으로 하천 준설 및 삼림 회복과 같은 토목·임업 분야의 협력 사업도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북쪽은 1990년대 병해충 방제용 농약생산 시설의 가동이 대부분 중단된 이후 살균·살충제 생산이 대단히 낮은 상태여서 이들 농자재에 대한 지원과 생산기술에 대한 협력사업도 요구된다.

넷째, 비료 생산은 크게 늘어나지 않아 현재는 일부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다양한 경로를 통한 비료 생산기술의 협력사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섯째, 또 다른 필요 농자재로 PE필름과 육묘용 자재가 벼농사와 채소 농사에 절실히 요구되지만 남쪽의 지원 중단과 함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이에 대한 경제협력도 향후 검토 대상에 넣어야 한다.

여섯째, 북한은 수확된 농산물의 저장 및 가공 기술이 낙후돼 먹거리로 활용되기 전에 많이 소실되는 국가군에 속하는데, 이 분야에서의 기술협력도 역시 요구가 높을 것이다.

일곱째, 농업 각 분야별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한 협력사업의 대상이다. 북한은 이미 충분한 농업 연구 및 지도 인력을 갖고 있지만 최신 기술에 대한 경험이 적어 새로운 농작물이나 새로운 농사법에 대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남북 농업은 결국 하나의 식량 생산 체제를 갖춘 하나의 시장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농업사업은 통일 준비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여덟째, 농업기술의 혁신을 위해서는 많은 인력의 교류와 연구용 기자재 및 시설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각종 학술회의 개최와 농업인력 교육 과정 등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

마지막 아홉째,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한 농업협력 사업은 각 작물별로 재배 준비단계, 파종단계, 정식단계, 재배생산단계, 수확단계, 저장·유통단계 등으로 구분해 필요한 협력 사업을 선정하고 분석해 종합적인 기술 투입으로 협력사업을 창출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협동농장의 원활한 운영에 필요한 의료보건 활동 및 후속세대 교육 과정도 포함될 것이다.

남쪽은 1970년대 식량 자급을 위한 녹색혁명, 1980년대 우리 식탁의 먹거리를 확실하게 바꿔 놓은 백색혁명, 1990년대부터는 식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나타난 친환경농업을 이뤄 낸 경험을 갖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생명공학기술과 수경재배를 근간으로 하는 식물공장의 등장과 ICT융복합기술이 우리 농업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축적된 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 자산은 북한의 실정에 맞는 기술과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공유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더불어 농업협력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는 북쪽 사람들의 자존심을 배려하고 먼저 마음을 여는 ‘행동’으로 그들과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그 동안의 활동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존심 하나만은 남아 있는 북녘 동포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인간애와 민족애의 힘이라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교류협력의 핵심은 상호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며, 지속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용범 원광대 석좌교수·원예산업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명예교수, 월드비전 북한농업연구소장, (사)국제원예연구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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