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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연출가가 그려낸 중요 원리들
전문 연출가가 그려낸 중요 원리들
  • 교수신문
  • 승인 2017.06.1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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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배우 훈련』 앨리슨 호지 편저, 김민채 옮김, 동인, 462쪽, 28,000원

‘배우(actor)’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배우가 된다는 것, 혹은 배우가 되는 훈련은 어떤 개념을 거쳐 구체화될까. 여기 흥미로운 답이 있다. 1982년 스토리텔링 극단인 시어터 알리바이를 공동 설립한 후 전문 연출가로 활동해오고 있는 앨래슨 호지가 엮은 『배우 훈련』은 단순한 ‘배우가 되는 실습’을 다룬 책이 아니다. 번역자인 김민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강사가 말한 것처럼, “다양한 미학이 공존하는 21세기 공연예술 환경에 놓인 배우들에게 문득 생기는 호기심과 질문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실험됐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우리 문화생활 깊이 들어와 있는 ‘공연현장’과 ‘배우’의 현존을 엿볼 수 있는 가이드북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우의 현존

실시간에서 관객과의 만남, 즉 배우의 현존은 라이브 공연에서 높이 평가되는 개념이다.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이에 대한 정의를 두 가지로 구분해 설명한 바 있는데, 첫째 배우에 의해 밖으로 방사되는 본질적, 신비적, 근본적인 내면의 힘으로써의 현존, 그리고 두 번째로 배우가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기량과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현존이 있다.

또한 피셔-리히테(Erika  Fischer-Lichte)는 배우의 현상적 신체(phenomenal body)의 타고난 ‘순수한 현존’과 ‘관객이 반응하는 특정한 기술과 실습의 숙달’을 통해 ‘공간과 관객의 주의를 지배하는’ 배우의 적극적 능력을 구별한다.

현존의 개념은 여러 연극인들의 훈련 메소드에서 관객과의 적극적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활성화됐다. 이 복잡한 과정의 열쇠는 에너지와 힘의 원천으로써 현재의 순간에 주목하는 배우의 집중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를 일찍이 연기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인식했다. 르콕은 놀이의 즉흥성을 통한 배우의 활동적인 반응을 장려했고 마이즈너는 ‘행위의 진실성’을 강조했으며, 그로토프스키는 ‘살아 있는 충동들의 싸이클’에 초점을 뒀으며, 브룩은 그가 ‘투명성(transparency)’이라고 칭한 배우의 ‘개방성과 직접성’의 상태를 추구했다.

현존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는 가운데, 배우 훈련의 대부분의 형태들이 배우의 몸/의식과 에너지 교류의 조합에 의해 실현 가능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안 왓슨(Ian Watson)은 현존에 관한 바르바의 연구를 그의 동양 테크닉에 관한 연극 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바르바는 주요한 원천에 대해 두 가지로 밝히고 있는데, ‘배우의 일상생활의 행위[모방이나 습관]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고안된 신체적으로 습득된 테크닉들의 사용, 그리고 공연 중의 에너지의 사용을 지배하는 원칙들의 기호화가 그것이다. 

도린다 헐튼(Dorinada Hulton)은 ‘현존’의 정의를 체이킨의 소리와 움직임을 위한 연습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녀는 배우의 현존이 자기 자신(self)의 존재에만 유일하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 속의 이미지를 신체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더 드러난다고 규정했다. 배우의 의식은 이 상호작용의 과제에 전적으로 몰입한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주어진 순간에 전적으로 집중했을 때, “마음속에 생겨난 형식과 이미지를 보고 들으면서 순간순간에 몸과 마음 사이의 특수한 균형의 전이 혹은 몸과 마음의 대화를 허용할 때에 비로소 하나의 논리적인 움직임이 생기고 (……) 관객은 [배우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시스템 또는 원칙들

20세기 서구 배우 훈련에 대한 방법론의 접근은 대략 두 개의 중요한 질문을 둘러싼 논쟁으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배우 훈련의 완전한 방법을 엮어 유일하고 보편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애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카르닉이 강조한 것처럼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배우에게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한다.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할 때 각각의 배우는 시스템을 재발명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스타니슬랍스키의 바람은 “시스템이 하나의 지침이자 안내일 뿐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의 연기 시스템에 있는 근본 테크닉들이 모든 연극 양식의 창조에 적용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이것 또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몇몇 연극인들은 특히 심리적 사실주의에 거리를 두고자 할 때나 기존의 텍스트를 해석할 경웨 그의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발견했다.

메이어홀드는 자연주의 연극의 심리학적 가정에 반대했다. 그 역시 자신의 생체역학 훈련 안에서 지속적이고 강렬한 신체 훈련을 토해 연극의 모든 스타일과 맞물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을 찾고하 했다. 그러면서 배우가 가진 신체적, 공간적, 음률적 용어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이고 명확한 표현법을 찾고자 했다. 이후의 연극인들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완전한 방법이라는 어떠한 개념도 거부했다. 예를 들면 체이킨은 생각하기를, “시스템은 기초적인 계획으로써 동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규칙들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실마리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서로를 발견하고 그 과정을 모방하지 않는 한, 우리가 가진 문화와 감각과 미학이 우리를 전혀 새로운 표현으로 인도할 것이다. 미학이 시스템을 개조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연극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훈련의 영역 속에서 포괄적인 시스템이라는 개념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연기훈련의 근본적인 원칙만을 확인했다. 이러한 원칙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배우 훈련 테크닉을 통해 분명해졌으며, 그들이 가진 명확한 윤리적인 입장을 두시받침해주고 있으나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지는 않았다. 코포는 무대 위에서의 성실성을 추구하면서 ‘배우 자신 안의 연극적 원칙(dramatic principle in oneself)’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브레히트의 배우는 연극에서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사회현상의 움직임만을 관찰해서는 안 된다. 스트라스버그는 배우를 ‘자신으로부터 창작할 수 있는 개성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 배우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다가갈 수 있도록’ 준비돼져야 한다고 말한다. 므누슈킨은 ‘집단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와 지역사회로의 헌신’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훈련 원리들이 발전해오는 동안에도 원칙들이 가진 독자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은 계속해서 후대의 작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이러한 원칙의 어떤 부분은 그 뿌리를 초월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것으로서, 현대 배우 훈련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의 모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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