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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정치는 지식인의 존재론적 번민 … 어떤 고민 필요한가?”
“글과 정치는 지식인의 존재론적 번민 … 어떤 고민 필요한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6.05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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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아산서평모임이 주목한 책_ 『위대한 정치: 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응하다』 서병훈 지음, 책세상, 404쪽, 17,000원

‘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응하다’라는 부제를 단 『위대한 정치』가 지난 24일(수) 제14회 아산서평모임 무대에 올랐다. 저자는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연세대를 졸업한 뒤 미국 라이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서 교수는 1989년 이래 숭실대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쳐 왔다.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다룬 『다시 시작하는 혁명』,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사상을 분석한 『자유의 본질과 유토피아』와 『자유의 미학』, 민주주의의 병리적 현상을 규명한 『포퓰리즘』 등을 발표했다. 2018년에는 밀의 『자유론』, 『공리주의』, 『여성의 종속』, 『대의정부론』, 『종교론』, 『사회주의론』을 우리말로 옮긴 ‘존 스튜어트 밀 선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위대한 정치』는 밀과 토크빌이라는 정치사상사의 걸출한 두 인물이 평생 동안 ‘정치’를 놓고 벌인 사상적·실천적 분투를 소개하고 있지만, 책의 무게추는 인간과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가의 덕목은 무엇인지, 격동하는 역사의 결정적 국면에서 대한민국 시민들이 구현해야 할 ‘위대한 정치’의 길은 무엇인지에 놓여져 있다. 무엇보다 ‘참여가 사람을 만든다’고 강조했던 두 사람의 통찰은, 2016년~2917년 광장에서 무수히 촛불을 밝혔던 한국의 시민들이 ‘탄핵 이후’ 내딛는 발걸음에도 시사적이다. 

이날 서평모임에는 이재원 연세대 교수(사학과)와 이영환 이화여대 교수(철학과)가 서평자로 참석했다. 저자인 서병훈 교수와 서평자 이재원, 이영훈 교수가 내놓은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저자 서병훈 숭실대 교수
이 책은 두 가지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했다. 첫째, 나는 밀과 토크빌의 삶, 특히 인생행로를 깊이 알고 싶었다. 나는 줄곧 밀의 사상을 공부하고 글을 썼다. 책도 여러 권 냈다. 10여 년 전부터는 토크빌도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2011년 여름에 프랑스 아비뇽에 있는 밀의 무덤을 찾아갔고, 이어 그해 겨울에 토크빌의 안식처도 다녀왔다. 두 사람의 무덤을 쓰다듬으며 묘한 ‘동일시’를 느꼈다. 그 이후로 밀과 토크빌의 평전을 열심히 읽으며 그들의 내면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밀과 토크빌이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화두를 놓고 의미심장한 공분모를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의 사적인 삶도 그렇다. 사소한 차이점을 걷어내고 나면 한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간 두 거장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밀과 토크빌의 삶은 그들의 사상과 혼연일체가 되어 빛이 났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밀과 토크빌의 삶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좀 더 명료하게 보여주는 책을 준비하게 됐다. 

둘째,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관한 고민이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막스 베버의 경고는 아무리 귀담아들어도 부족하다. 한 길을 깊이 파고들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융합이 시대의 대세인 것처럼 군림하고 ‘르네상스형 지식인’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베버의 생각은 달랐다. 엄격한 전문화가 아니면 ‘진실로 아주 탁월한 것’을 성취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베버와 같은 생각이다. 뿌리를 내릴 학문적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박학과 융합부터 기웃거린다면 그것은 전문가의 길이 아니다. 선진 외국에서 학문을 수입해서 연명하는 한국 지식 사회의 실상은 더더욱 전문가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학문 세계에서 ‘아마추어’를 자랑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내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는 처지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교수 생활을 30년 가까이 해오면서 비교적 그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베버의 경구를 가슴 깊이 새겼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상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학문의 길과도 부합될 수 없는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부담, 플라톤의 분노가 내 가슴에도 살아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학문의 길과 지식인의 길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버의 충고를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빚은 뒤로 밀리게 된다. 플라톤의 분노만 쫓아다니면 또 다른 사이비가 될 수 있다. 나는 양쪽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두 곳에서 똑같이 아픔을 느꼈다. 지식인의 존재론적 번민이라고나 할까. 그런 까닭에 밀과 토크빌의 인생 행적이 흥미로웠다. 글과 정치, 두 선택지를 앞에 놓고 그들이 어떤 길을 갔는지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의 역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유기적으로 비교함으로써 학문의 길과 지식인의 길을 가로지르는 교차점을 찾고 싶었다. 

서평자-이재원 연세대 교수
프랑스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는 2차 대전 당시 53세의 나이에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면서 ‘연구실의 정적 속에 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학자)들’을 비판했다. 국가가 소위 위기상황이고, 지식인들에게 현실 참여가 요구될 때 침묵하는 것이 과연 지식인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식(글)과 정치, 이론과 현실 사이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조화할 수 있겠는가. 지식인의 ‘바람직한’ 모습은 학문의 영역으로만 한정해야 되는지? 아니면 현실 정치 혹은 현실 참여를 통해 구현될 수 있는지?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어떤 식의 고민이 필요한가.

토크빌은 줄기차게 ‘위대한 정치’를 외쳤다고 저자는 말했다. 위대함이라는 개념은 그의 새로운 자유주의의 중추가 됐다고 언급했다. 밀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토크빌은 새로운 자유주의를 지향했는데, 둘은 이런 이념의 푯대를 ‘위대한 정치’를 통해 구축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대한 정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와 닫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대중을 상대로 직접 위대한 정치를 실천하려 했다고 말하고, 시대의 아픔을 정치 참여로 갚아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실패했던 이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가 ‘위대한 정치’인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의사당 안에서 심각하고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 토크빌이 꿈꾸는 위대한 정치의 본령이었다면, 지식인은 역시 글을 써서 역사에 보답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해준 토크빌과 밀의 정치 참여를 위대한 정치라고 얘기하는 것은 모순적이지 않은지? 저자가 생각하는 토크빌이 혹은 범위를 넓혀 밀 역시 강조했던 ‘위대한 정치’란 한국사회에서 무엇이라고, 무엇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서평자 이영환 이화여대 교수
제국주의에 대한 밀과 토크빌의 태도에 대해 묻고 싶다. 잘 알려진 노예와 여성의 해방에 대한 밀의 입장은 진정한 자유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감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자메이카와 아일랜드와 관련한 밀의 의정활동도 시대를 앞서나간 선구자로서의 밀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영국의 민족주의 정서에 부딪혀 현실적으로는 실패했다고 하지만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의의 심판을 추구하는 영국인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런 밀의 모습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한에서 말이다. 

하지만 인도와 관련한 제국주의에 대한 밀의 태도는 실망스럽니다. 그리고 그 면에 있어서는 토크빌도 별반 나아 보이지 않는다. 밀의 ‘선의의 제국주의’가 위선적이라는 토크빌의 비판은 옳아 보이지만 또한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자국(자국의 ‘명예와 정의’?)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토크빌의 입장도 제국주의라는 면에서는 하등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 질문은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는 일차적으로 영국의 인도 착취를 목적으로 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만약 이러한 전제가 틀리지 않은 것이라면 동인도회사에 반평생을 몸담아 일하면서 ‘선의의 제국주의’를 운운한 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책에서 좀 더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4부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밀과 토크빌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생각이 세밀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인데 주 46에서 학술논문의 서지사항만 제공할 것이 아니라 조그맣게라도 독립된 장으로 설명을 덧붙여 주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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